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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Feb 21. 2023

왜 중국과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그렇게 싫어해?

아시아가 기억하는 동서양의 첫 만남

인류학 전공수업 외에 궁금한 학과들의 수업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학과의 수업. 필리핀에 살고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람들과 알게 되며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한 줄의 과목 이름만으로도 수많은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름의 과목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내 호기심을 자극한 이름의 수업은 바로 동서양의 만남이었다. 우리 과 수업이 아니었지만, 첫 학기인지라 호기심의 무게가 내 몸무게보다는 더 무거웠는지 무작정 교실을 찾아가 교수님께 청강을 여쭤봤다. 보통 인류학과 수업에서 외국인 학생은 나 혼자 뿐이었는데 아시아학과의 수업엔 주류인 필리핀 학생들 외에도 외국인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덕분에 조금 더 다양한 아시아 친구들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식민지배 시절의 역사를 탐방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세계사 세계지리였고 덕분에 지금 알고 있는 역사 정보는 거의 그때 이해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지금 문득 되돌아보니 나는 참 한쪽의 시선에서만 역사를 배워온 것도 같았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울 동남아시아들의 역사는 교과서에서 보면 크게 고대, 중세, 근대로 나뉜 연대별 역사 챕터 가장 마지막 장에 동남아시아는 물론 라틴아메리카까지 포개져 한 두장에 겨우 언급이 되고 넘어가던 분야였다. 그 안에 어떤 왕조는 이름이 한 번이라도 불리기라도 했지만, 다른 수많은 왕조들과 나라, 역사들은 그조차도 불리지 않고 지워지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 역시 거대하고 강한 나라들의 역사들을 채워 넣느라 숫자는 많으나 작은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수업을 듣고 있는 우리들은 인도나 중국, 일본을 제외하곤 아시아의 역사 과목에서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나라들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 모여서 그 부족했던 역사책 속의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우리는 개개인으로 보면 눈코입 사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모두 같은 인간으로 어느 하나 닮은 부분이 없는 각자가 특별한 사람 같았는데, 이렇게 역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를 보면 왠지 각자의 국가와 학교와 교과서가 찍어낸 거푸집의 산물처럼 개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유물 같은 느낌. 각자가 하나의 유물이 되어 이어가게 된 수업.


수업의 이름은 동서양의 만남이었는데, 서글프게도 동양의 시점에서 서양을 만나고 나서 직면하게 된 경험은 식민역사였다. 새삼 놀랍게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국가들 중 공식적 식민경험이 없는 나라는 태국 뿐이었다. 영국이 미얀마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를, 스페인이 필리핀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포르투갈이 동티모르를,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 나라들을 정말 빼곡하게 식민지를 점령했었다. 그렇게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식민관계를 시작으로 서서히 동쪽으로 옮겨온 우리는 드디어 내가 태어난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다.


"Kabo Reforms"


저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를 필리핀 학생의 발표를 들으며 겨우 떠올렸다.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던 '갑오개혁'을 영어로 쓰면 저렇게 적는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사실 이번 수업시간에 들었던 거의 모든 아시아의 나라들은 자기 나라들만의 언어가 있어 우리나라의 '갑오개혁'이라는 단어처럼 다른 나라들의 사건들 역시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진 이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느낌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다가 문득 'Kabo Reform'이라는 단어를 보고 나니 갑자기 뭔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 사건이 마치 다른 나라의 사건이었던 것처럼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느낌을 듣게 했다.


갑오개혁과 Kabo Reform이 전혀 같은 사건이 아닌 듯한 이 이상한 느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한국어의 옷을 입은 근현대사의 사건들이 필리핀 친구가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영어의 옷을 입고 설명되고 있는 그 순간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익숙한 한국어는 아니었지만 대학원 수업인 만큼 고등학교 때 들었던 역사선생님들 수준을 더해 그 당시 국제정세까지 더해져 외국의 전문가들은 그 당시의 우리나라를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싶은 새로운 시각도 더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필리핀 친구에 의해 까마득했던 근현대사 퍼즐들이 다시 살아났다. 운요호 사건, 김대건 신부님, 신미양요, 동학혁명, 임오군란, 강화도 조약, 치외법권, 갑오개혁,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등등. 분명 처음엔 아니었는데 사건들이 하나 둘 설명될 때마다 기분도 조금씩 나빠졌다. 또 다른 한국학 전공 학생은 중간중간 정말 명성황후가 칼에 찔려 살해당했는지, 불에 태워졌는지 혹은 정말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도망을 갔는지, 정말 네덜란드까지 이런 상황들을 알리려고 관리를 파견했는지를 물었는데, 수업에 있던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답을 하긴 해야 하는데 하나하나 정말 왜 그랬지, 왜 그래야 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픈 상황들이었다. 동시에 이렇게 디테일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 외국인들은 어떻게 알았지 싶은 놀라움도 있었다. 한류라는 케이팝과 한국드라마들로 우리나라의 화려함만 좋아하고 알고 싶을 것 같던 외국인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같은 교실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동등한 친구들로 변신한 느낌이었다.


더불어 내가 속한 역사가 아닌 타인의 역사로 배우면 예전에는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해석이 참 차갑고 냉철한 시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계략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정책이 삼자의 입장에선 전략이 될 수도 있구나. 아마 그리고 나 역시, 우리 역시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감정까진 읽어내지 못한 순간들도 많았을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역사를 바라보는 잣대와 남의 역사를 바라보는 잣대가 달리 되면 아무리 객관적인 해석이라도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새삼 객관적이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나오면 나도 몰래 가슴이 뜨거워지는 현상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분명 내가 모르는 시각까지 더해서 발표하는 외국인 친구의 톤에는 그 무언가는 빠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외국인이라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각이 더해진 친구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뭔가 너무 무미건조한 역사해석은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는 수업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현지인의 해석과 맥락을 더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도 있었는데 나는 자꾸 타이밍을 보게 되었다. 수업에는 일본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수업에서 분명 동양에 있음에도 자꾸 초창기 서양을 닮은 모습으로 다른 동양의 나라들을 접촉한 사례가 많아, 수업의 초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오는 동안에도 서양만큼이나 자주 이미 이름이 언급된 나라였는데 중국과 한국에 도착했을 땐 정점을 찍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일본 친구는 별 말이 없었다. 굳이 이 수업이 아니더라도 지금껏 수업 시간에 만난 일본 친구들은 대부분 수업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발언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물론 학교를 벗어나 현장이나 바깥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그리고 이 수업에서 만난 친구는 수업 내내 조용한 편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했지만, 이런 역사들을 들은 혹은 알게 된 일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나 역시 워낙 중립적으로 사건을 보는 학생들 사이에서 내 감정이 우선되는 것은 아닌가 한번 더 살펴보다 보니 말수가 적어진 것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고,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영어로 들어도 아픈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영어로 들으면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무슨 코멘트를 할까 발표를 들으면서도 생각을 했는데, 수업을 같이 들었던 인도에서 온 학생이 물었다.


"왜 한국과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일본사람들에게 예민해? 가끔은 역사 수업을 들으면 일본 친구들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해. 너무 잡아먹으려고 해서."


질문이 떨어진 순간, 수업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일본 친구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새삼 이 수업이 열명 안팎의 세미나 수업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다른 친구들의 눈을 보는데 정말 궁금한 눈치였다. 나는 그런 눈빛이 신기했다. 이런 질문을 학사도 아니고 대학원 수업에서 들을 줄이야. 정말 몰라서 묻는 질문인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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