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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an 03. 2023

인간들은 왜 해를 구분할까?

그러니까 왜 지난해와 올해, 해를 세기 시작했을까?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바깥의 풍경은 어제와 똑같았다. 물론 새해가 왔다는 것은 분명했다. 12월 31일이 지나고 1월 1일이 되던 자정부터, 거의 3년 동안 묵혀둔 폭죽을 모두 꺼내 놓고 터트리는 것처럼 보이던 베를린 사람들의 폭죽놀이 때문에 새해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이 그레이, 회색의 하늘색은 작년의 어제 하늘이나 오늘의 새해나 똑같았다. 새해라고 뭔가 마음이 들뜬 것 같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일상과 풍경을 보며 나는 문득 새해 점심 무렵부터 이런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간들은 언제부터 해를 구분한 걸까? 그러니까 왜 지난해와 올해, 그러니까 해를 세기 시작한 걸까? 그냥 매일매일 1일부터 쭈욱 일을 더해가도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어느 순간부턴 그 날짜들을 가리키는 숫자들이 너무 길어져 불편하겠지만, 아마 인간들은 아주 긴 숫자를 표현할 때 쓰는 e를 붙이든 어쩌든 간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해를 센다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는 한 바퀴의 루트로 구분이 되는 것 같았는데, 그건 사실 온대기후의 나라들 이야기이고 어떤 곳은 그런 구분들이 아주 명확하지 않은 곳들도 있으니 ‘해를 센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볼수록 인위적인 인간들의 행동 같았다.

그냥 계속 궁금하기만 하다가 올해부터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사색을 하다가 검색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해서, 하루 종일 각종 상상을 해보다 저녁 즈음 직접 검색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너무 자연스러워서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새해라는 개념이었는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뭔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은 않다 생각했는데, 정말 찾아보니 해를 세는 행위는 인류의 기나긴 시간에 대비해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중 내 시선을 잡은 문구가 있었다. 인간들이 해를 세던 초기의 이유는 어떤 사건, 그러니까 특별한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해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설명이었다. 예를 들면 예수나 모하메드가 세상에 오셨거나 사라지셨거나, 어떤 왕이 등극하거나, 혹은 어떤 나라가 세워지거나 합쳐진, 인간 세상 혹은 그 사회의 커다란 사건이 생겼을 때 말이다.

그렇게 세상의 해는 2022년에서 2023년으로 흘러갔다고, 또 더해졌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나의 해는, 나의 새해는 나의 이벤트를 기준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독일에 온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곤 하지만 나에게는 그 3년의 시간이 하나의 해인 것처럼 느껴졌다. 독일에 왔다는 하나의 사건이 그 삼 년의 시간을 가득 채웠고, 세 번의 해가 넘어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마치 한 해를 보낸 것처럼 독일이라는 나라에서의 첫 적응기를 보낸 것 같았다.

3년이라는 시간의 한 해를 돌아보면 나는 특별히 이룬 것도, 독일어를 배운 것도, 일을 찾은 것도 없는 듯했다. 뭔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성취한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그래서 이룬 것도 없는 느낌이었는데, 문득 새해란 무엇인가 사색을 하고 나니 나는 그냥 그렇게 남들보단 조금 느린 사람, 혹은 지금은 조금 느려진 사람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수많은 자연물 중 하나라 어떨 때는 매우 빠르다가도 어떨 때는 매우 느리기도 하고, 또 제법 빠른 사람이라도 어디에선 더 빨라지다가도 또 다른 어딘가에선 괜스레 느려지는 그런 변화들이 있지 않은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3년은 특별히 새해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올해는 토끼띠를 맞이하며 다시 다이어리를 사고 기록을 하고 생각을 기록하며 세상의 새해가 아니라 나의 새해가 다시 하나 시작되는 느낌이다. 물론 그 새해엔 어떤 사건들이 채워질진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의 정리까지 닿고 나니 그제야 아주 옛날에 적어놓은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말했다던 시간에 관한 단어들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의 시간을 크게 세 개의 시간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하나는, 크로노스. 단순히 흘러가는 일상적인 시간. 어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의 하루.


둘째는, 카이로스. 구체적인 사건이 있는 시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


셋째는, 플레루. 목표를 성취하고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상황을 반복하고 이를 극복한 사람이 얻는 평온의 시간.

살다 보면 어떤 해는 일 년을 삼 년처럼 살기도 하고, 또 어떤 해는 삼 년을 일 년처럼 살기도 한다. 그럴 수 있지. 이런 시간의 의미를 하나 더 깨닫고 나니 뭔가 시간의 톱니바퀴를 다시 한번 조금씩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을 삼 년처럼 살기도 했고, 또 삼 년을 일 년처럼 살기도 했으니 올해는 일 년을 일 년답게 살아보는 새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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