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문제의 문제
독일에 살게 된 지 4년이 훌쩍 넘어갔지만, 내가 아는 독일은 대부분이 베를린뿐이었다. 독일에 적응을 해볼까 싶던 참에 코로나가 터졌고, 코로나의 문이 닫힐 즈음엔 남편은 이직이라는 새로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4년을 넘어 5년이 다 되어 가는 베를린 생활이라면 어느 정도 독일생활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문제는 내가 사는 곳이 독일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것이었다. 베를린 사람들에게 물어도, 베를린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베를린은 베를린이라고 말한다. 베를린이 물론 독일에 있는 도시이며, 심지어는 독일의 수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 사람들에게 베를린이 독일이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어느 미사여구 필요 없이 베를린은 베를린이다라는 짧지만 강렬한 말로 답을 지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나에겐 그런 말이 맥락이 있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비교경험이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독일에 주소지 등록을 한 곳도 베를린이었고, 남편과 내가 동거를 하고 결혼을 해서 혼인신고를 한 곳도 베를린이었으며, 독일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살아온 곳이 바로 베를린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독일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독일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고 또 미래에 물어본다 해도 망설여질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누군가가 나에게 만약 그럼 당신은 베를리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베를리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시간이 들수록 쌓여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베를린밖에 모르던 나에게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남편에게 접했을 때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다. 갑자기 어둡고 더러워 보이는 베를린의 골목길들까지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없던 베를린에 대한 애착이 봄날의 새싹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안색이 베를린의 늦가을 회색 하늘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이직하는 것조차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매번 떨어지는 인터뷰를 지켜보며 경험하게 되니 어디라도 남편이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그곳에서도 남편을 받아들여준다면 한 번 떠나보자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문제는 남편을 받아주는 회사가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독일인 남편을 보며 한 가지 모르고 있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된 것은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은 외국인에게만 유난히 힘든 것이 아니라 현지인에게도 무척 고단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해외에 살다 보면 비자나 언어, 문화 및 법적인 차이 때문에 외국인이라서 더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잦다. 혼자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 때는 현지인의 삶에 대해 이 정도로 가깝게 경험한 적이 없어서 외국인으로서만 느끼는 버거움에 대해서만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한탄하곤 했었다. 그런데 외국인 남편과 결혼을 해서 24시간을 함께 살고 나니 이보다 더 깊숙한 질적 연구 대상이 있을 수가 없는 느낌.
물론 직업, 직종, 직책마다의 구직과 이직의 난이도는 상이하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에서 나오는 "행복한 가족은 거의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라는 말처럼, 외국인들이 현지에서 취업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들이 수백 개가 있듯이 현지인들에도 그들만의 어려운 이유가 수백 개가 있었다. 질적연구를 하면 없던 공감(Empathy)도 생겨나기 마련인데 하물며 이렇게 24시간, 4년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을 보자니 어느 순간부터 나도 어렵지만 너도 어렵구나라는 측은지심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직을 하더라도 베를린에 있는 회사들로 찾아보자고 했지만, 이직기간이 늘어나며 베를린이 굳이 아니더라도 남편이 원하는 조건을 가진 회사면 어디든 떠나보자라고 마음을 되네이게 되었다.
남편의 이직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세계지도를 자주 꺼내보았다. 아주 가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지역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독일이었다. 특히 독일 지역은 평소에는 잘 가리켜보지도 않았던 방향에,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만큼 줌인을 하기도 했다. 큰 도시들은 지도를 굳이 찾지 않아도 독일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주변에는 무엇이 있구나를 가늠할 수 있었지만, 작은 도시 심지어는 군, 읍 단위로 넘어갈 때면 줌인이 더 이상 되지 않을 때까지 지도를 확대해야 했다. 세상에는 이런 곳들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금까지의 해외생활에서 큰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겐 베를린도 쉽지 않았는데 독일의 시골 깡촌에서 외국인으로 어떻게 혼자 살아가지 두려움이 덮쳐왔다. 우선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지 싶은 마음으로 남편의 이직 장소들을 상상 속으로 오고 가며, 지도의 줌인과 줌아웃 사이에서 일비희비하던 나의 일상이 일 년이 훌쩍 넘어가던 어느 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남편의 최종 면접이 있던 날, 남편은 분명 독일 회사로 간다고 했는데 비행기는 취리히행을 끊었다.
"독일에 있는 회사라고 하지 않았어?"
"응. 그런데 공항은 취리히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깝거든."
독일인데 공항은 스위스 취리히가 더 가까운 곳. 물어봐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지도에 다시 찾아보니 이름이 "Singen"이다. 검색하면 자꾸 도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다"라는 독일어 동사 "singen"이 더 많이 나오는 곳. 발음대로 읽으면 "싱엔"같은데 한국어로는 "징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노래 잘 부르고 오라고 배웅을 했는데, 며칠 뒤 최종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베를린 다음의 나의 목적지는 Singen(싱엔/싱겐/징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