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시작되는 순간, 질문이 생기는 순간
그래서, 인류학이 정확히 뭐라고?
인류학을 공부하려고 마음먹기 전에는 나는 인류학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함께 현장에서 활동하던 필리핀 친구 한 명이 우연히 대화중에 나보고 인류학을 공부하면 무척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주던 때가 내가 처음 인류학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때였다. Anthropology. 그 영어 단어를 처음 들어봐서 나는 뜻을 몰랐고, 영어로 봐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어서 친구가 한국어로 다시 검색해보라고 했는데, 문제는 한국말로 번역된 ‘인류학’이라는 한국말도 무엇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라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인류학자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보통 극장에 가는 사람들은 연극을 보러 가지만, 극장에 가는 인류학자들은 연극은 보지 않고 연극을 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러 간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웃고 넘어가버릴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인류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던 내 본연의 습성 중 하나였다.
나는 어딘가로 떠나면 혹은 그냥 일상생활에서도 문득문득 주변을 관찰한다. 도서관에 가면 누가 오는지 사람들도 보고, 그들이 읽는 책도 보고 또 그 책은 누가 썼는지 보고, 또 왜 썼는지도 보고, 그럼 저 사람은 왜 이 책을 읽는 걸까, 이 책은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문다.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곳에 가면 나는 그곳에 있는 현지 사람들도 보고, 외부사람들도 보고, 그 사람들은 왜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무얼 하고 먹고 사는지도 보고, 음식의 재료는 무엇이고, 동물들도 식물들도 본다.
인류학적 연구방법론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은 시각, 청각, 미각, 촉각도 모자라 냄새와 육감을 사용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은 물론 그 옆에 지나가는 동물들까지 모두 관찰하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인류학을 배우고 난 뒤엔 눈과 귀와 코와 피부를 사용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질문을 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가장 호기심 있게 다가오는 존재는 바로 사람이었다.
이건 생물인류학 시간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인류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공부한다고 할 때 그 의미가 도대체 어떤 뜻인지에 대한 예시였다. 예를 들면, 강아지가 운다고 가정해보자. 강아지가 멍멍하고 우는지, 왈왈하고 우는지, 차우차우하고 우는지는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어딘지에 따라 알려준 대로 의성어를 배운다. 하지만 정작 그 강아지의 멍멍, 왈왈, 차우차우가 무슨 의미인지는 우리가 강아지가 아닌 이상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사람들의 언어는 이해할 수 있다. 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대신 인간은 적어도 우리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강아지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대화나 관찰, 혹은 그 맥락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은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무언가를 같이 혹은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직접 물어보고 생각을 나누며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것이 흥미롭다.
인류학에서 한 학기 정도 잠시 공부해보는 고고학은 기록도, 사람도 남지 않은 유물과 유적들을 살펴보며 선사시대를 가정해본다. 역사학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죽었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을 가지고 그 시대를 맞춰 본다. 그런데 인류학은 지금 같은 시공간 안에서 어디에 살고 누구인지에 따라 다양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어찌 보면 지금, 현재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인 느낌이다.
지금 내 눈 앞에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데 어떻게 물어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영원히 살아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에 의해 원래의 의도와 상관없는 오답과 추측이 무성하기보다 직접 당사자에게 그들이 원했던 의도를 들을 수 있으니까.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꼭 현지를 더 깊고 자세히 알아가는 현장조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나는 현지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들을 묻고 듣고 대화를 나누며, 특히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과정이 좋았다.
그리고 그건 마치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사랑에 대해 말했던,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마법 같은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세상에 마법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무언가를 함께하는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닐까.”
예전에는 순진무구하게 정말로 노력한다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졌더라면, 지금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적어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마음, 그 마음과 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나는 왠지 모르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