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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07. 2021

금요일도 좋고 월요일도 좋아

우리가 함께 살고 싶은 곳

나와 남자 친구가 함께 맞이하는 첫 번째 금요일 아침, 기분이 좋았다. 일어나자마자 제이래빗의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의 노래 가사처럼 상큼한 기분이 들었다.


"금요일~금요일~"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는 딱히 주말과 주중 상관없이 자가학습을 실행하다 보니 금요일, 불금, 월요병 등에 대한 영향은 적었지만, 나도 언젠가 그런 영향을 무시하지 못했던 일하는 사람이었다. 또 내가 학생일 때도 주변에 좋아하는 동생들, 친구들이 모두 금요일을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 금요일이었다.


그렇게 남자 친구를 깨울 때부터 나는 ‘금요일이야~ 금요일~ 즐거운 금요일~’을 외쳤고, 밥을 먹으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빵에 버터를 올리면서도 금요일로 노래를 만들었다. 내가 워낙 들떠 있으니 남자 친구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신기한 듯도 싶었다. 금요일 아침을 만끽하는 기분에 잔뜩 취해있다가 한참 뒤에서야 나는 그의 시선을 알아챘다.


“금요일이잖아. 금! 요! 일! 즐겁지 않아?”


이렇게 잔뜩 신이 나 있는 나를 보면 지금까지 내 친구들은 보통 모두 함께 신이 나 장단을 맞췄었다.


“Yeah!!! 금요일이야 금요일!! 행복한 금요일!”


원래는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남자 친구는 갸우뚱하며 물었다.


“금요일이 왜 좋은 거야?”

"응???"


순간 처음 들은 질문에 잠시 멍 때렸다. 그리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금요일을 좋아했더라?...


“몰라서 물어?; 오늘이 금요일이면 내일은 토요일, 그다음은 일요일! 일을 안 하잖아. 주말엔 더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남자 친구가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나는 일하는 거 좋은데?! 그래서 금요일도 좋고 주말도 좋고 월요일도 다 좋은데.”


'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사실 연인관계에 있어 한 사람이 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만 같아 섭섭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한 주간이었다. 남자 친구의 덤덤한 주말 소감에 뭔가 섭섭할뻔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단순히 주말이 다가오는 행복뿐만 아니라 사실은 살아가면서 생각해 봤어야 했는데 미처 잘 준비하지 못했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나는 급 조용해졌다.


그렇게 금요일도 좋고 토요일도 좋다는 남자 친구를 회사에 보내고 나서도 한참이나 나는 우리가 왜 이리 금요일을 무작정 사랑하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금요일도 하루고 토요일도 하루고 월요일도 모두 하루일 뿐이었는데 우리에겐 더 좋아하는 요일과 더 무거운 요일이 존재했다. 사실은 다 똑같은 하루였는데 말이다...


사실 최근 몇 년 간 주말이 상관없는 대학원생이었고, 지금도 별 다를 바 없는 백수이지만 나는 여전히 내 주변 사람들이 금요일이 되면 활기차고 한결 여유로워지는 것을 보며 나도 괜스레 기분이 함께 좋아지는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그건 나의 무의식이었다고, 생각해! 네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의식을 깨워주는 듯한 질문을 남자 친구가 던진 느낌이었다.


사실 우리나라가 예전처럼 눈에 띄게 독일보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였고, 또 전통적인 가부장제 시대처럼 남자가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국제결혼을 한다면 꼭 여자가 남자가 살고 있는 나라로 가겠거니 하는 시대는 지났다. 개개인의 차이와 국가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독일 사람들도 한국에서 일하기도 하며, 또 한국 사람들도 독일로 이민을 가는 세상이다. 한국과 독일, 둘 다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나라였다.


워낙 치안이 좋지 않거나 빈부격차가 심각한 나라에서 살다 온 나에겐 어느 정도 대중교통이 원활하게 제공되고, 밤에 여자 혼자 걸어 다닐 수도 있고, 공원이나 도서관처럼 공공시설이 잘 운영되는 나라면 괜찮은 나라였다. 독일도 나쁘지 않은 나라였지만 독일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처음부터 해야 하는 부담감과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기까지의 어려움과 아무래도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서 더 겪을 수밖에 없는 인종차별의 빈도를 생각하면 독일이 꼭 나에게 더 나은 선택지라는 판단이 서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자 친구에게도 한국에 와서 살아보는 건 어떻겠냐고까지 물었지만 내가 결국 한 발 물러서게 됐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두 나라의 노동조건이었다. 다른 자세한 내용은 직책과 분야와 업무마다 다를 테니 차치하더라도 가장 쉽게 드러나는 차이점이 있었다면 노동시간과 휴가였다.


그 두 가지만 보더라도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남자 친구는 이제 사회 초년생이라 초반부터 휴가를 쓰기엔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남자 친구는 대기업이 아닌데도 일 년에 30일 정도의 유급휴가에 더해 9일 공휴일까지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자신의 권리라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한국은 보통 휴가가 며칠인지를 묻는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또 한 주를 지내면서 지켜보니 우리에겐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이 있었다. 아침은 조금 이른 감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일찍 출근하는 것도 있는 듯했지만 보통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해가 떠있을 때가 많았다. 서울에서 일하던 삶을 떠올려봤다. 나는 출퇴근 시간만도 너무 멀어서 회사 일 시작은 여덟 시 반에 했지만 집을 나서는 시간은 아침 여섯 시였다. 퇴근 역시 재빨리 여섯 시에 한다고 해도 집에 도착하면 어느덧 여덟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침도 저녁도 없는 삶이었다.


반면 남자 친구는 일곱 시 반, 여덟 시 즈음에 집을 나서면 이르면 네시, 늦어도 여섯 시 전에는 돌아왔다. 내가 너무 잠이 와서 오전에 낮잠이라도 늘어지게 나고 나면 남자 친구는 네 시간 만에 집에 와있기도 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남자 친구가 집에 돌아오면 같이 요리를 해도 남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살 것도 없는데 마트로 매일 산책을 갔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같이 요가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일주일 동안 남자 친구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위의 활동을 모두 하고도 특별히 더 저녁에 같이 한 일만 해도 자전거를 수리하고, 기타도 쳐보고, 과일차를 담그고, 한참 떨어진 지하철 역까지 가서 교통권도 끊었다.


사실 지금은 베를린에서 함께 지내보기로 잠정 합의를 했지만 미래에는 한국에서 함께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강하게 주장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지에 대해서는 서로의 의견의 무게를 동등하게 만드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없는 건 내가 만약 한국에서 일을 먼저 잡아서 내가 베를린이 아니라 이 아이가 한국에 왔다면, 우리가 이렇게 여유롭게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까...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리 많은 수를 떠올려봐도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남자 친구가 처음 한국에 여행을 왔던 날, 밤길을 걸어가다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남자 친구에겐 생소한 그림 같았지만, 게다가 이렇게 어린 학생들이 그것도 파티가 아닌 공부를 하느라 찌들어 있는 모습으로 밤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그리 썩 달가운 모습으로 남지는 않았으리라. 맞벌이하는 부모님들도,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모두 바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 친구는 나에게 질문했었다.


"부모님들도 그렇게 오랫동안 일하고, 아이들도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면 가족들은 언제 같이 밥을 먹어?"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가족이라는 그림이 남자 친구에겐 무척이나 낯설게 보였던 것 같다.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도 있고, 학생들은 친구들이랑 먹을 때도 있지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가족이라는 말의 또 다른 말이 바로 식구,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정말 언제 같이 밥을 먹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친구에게 한국에서 같이 일을 하고 가족이 되자고 말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부정할 수 없게 나 역시 저녁이 있는 삶,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삶을 바라고 있었다.


그럼에도 궁금한 것은 있었다.

'세상에 금요일에 달가워하지 않을 직장인이 어디 있어. 독일인들은 다 이런 건가.'


저녁이 있는 삶이 있다면, 어렴풋이라도 직접 경험해보니 정말 이러다 보면 월요일, 금요일, 일요일 모두 비슷비슷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남자 친구는 그렇게 무덤덤해하던 금요일에 무려 4시도 채 되지 않을 무렵 집에 돌아왔다. 나는 하루 종일 궁금해하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독일 사람들은 저녁 시간이 많아서 금요일도 좋고 주말도 좋고 월요일도 좋아하는지, 너처럼 다 좋아하는지 물었다. 남자 친구는 아마 아닐 거라고 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 중에선 금요일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분명 사회문화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하겠지만, 또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기도 한 것이 맞나 보다도 싶은 것이 독일 사람들이라고 다들 남자 친구처럼 금요일을 무덤덤하게 느끼진 않는가 보다.


그런데 그래서 문득 이 아이는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보내는 주말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도 좋다는 말이 순간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이가 금요일이든 주말이든 월요일이든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이 자기의 일을 즐길 줄 알고 또 저녁을 잘 보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이 아이는 참 감사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본인도 언제까지 자신이 모든 요일을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 동생들, 엄마 아빠 세대들도 그렇게 금요일도 좋고 주말도 좋고 월요일도 좋아하게 되면 좋겠다고 기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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