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쉽게 죽이는 방법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by 따뜻한 선인장





한 해동안 식물을 키우며 스스로에게 자주 속삭이는 말이 하나 생겼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남편의 식물 키우는 방법



내가 처음 독일에 왔던 두해 전만 해도 나는 식물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나에겐 남편이 가지고 있던 화분 몇 개가 있었는데, 남편이 독립해서 나올 때 어머니께서 키우시던 화분이었다. 그렇게 처음엔 그 화분들을 관리하는 건 남편의 몫이었다.


화분을 관리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그가 참 쉽게 식물을 돌본다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 그는 평소엔 무심하리만큼 식물들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잘 살고 있는지, 뿌리는 괜찮은지 이파리는 괜찮은지 살펴보고 나름 할 것이 많을 것 같았는데 그는 그저 회사에 갈 때, 집에 돌아올 때 식물들과 눈인사 정도의 확인만 했다.


그러나 그는 주말이면 잊어버릴까 싶어 알람을 맞춰두고 꼭 한 번씩 너무 많지도 않지만 적지도 않은 적당량의 물을 식물들에게 주었다. 가끔 주말에 시내를 다녀오거나 친구들을 만나느라 잊어버릴만할 때에도 그는 용케 기억해내고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다. 지나친 관심은 주지 않되 꼭 필요한 만큼의 책임은 다하기. 나에겐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의 관심임에도 잘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남편이 말한 것처럼 딱 그만큼이 식물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나의 식물 키우는 방법


그러다가 유럽에도 코로나가 퍼졌다. 그렇게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나 역시 식물이라는 생명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 집 식물 구성원들엔 지각변동이 생겼다. 우선 개체수가 월등히 많아졌고 그에 따라 관리할 방법들도 다양해져서 어느 순간 남편이 하던 식물관리가 자연스레 나의 손으로 넘어왔다.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나에겐 식물이 좋아하고 싫어할만한 햇빛과 바람이 모두 보이고 느껴지는 듯했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식물들이 생각나고, 날씨가 흐리면 흐려서 또 걱정되는 아이들도 생겼다.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건조한 날씨 특성상 화분 속 흙들은 훨씬 더 빨리 마르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부지런히 이파리와 흙 표면에 분무기로 가벼운 수분들을 날려주었다.


이렇게 지극정성인데도 신기한 것은 남편이 키울 때보다 훨씬 더 식물들이 자주 아팠다는 것이다. 분명 흙이 말라 보여서 분무기로 챙겨줬는데 마른 표면 흙 아래로 숨겨져 보이지 않았던 떡진 속흙을 말리느라 몇 번이나 흙을 뒤집은 적도 많았고, 그 덕에 남들은 식물과 뿌리들도 새 흙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니 최대한 적게 한다는 분갈이도 나는 월별 행사처럼 했던 것 같다.


마치 커피 향이 피어오르듯 여유 있게 식물들을 관리하던 남편은 나에게 놀란 토끼, 바쁜 다람쥐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이 식물에 벌레가 생기면 호들갑을 떨며 님오일을 뿌리고 말리고, 또 저 식물 흙에 곰팡이가 피면 흙을 다 털고 씻고 새 흙으로 갈아주는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을 놀라고 당황한 모습을 지켜보면 내가 꼭 바쁜 토끼와 다람쥐 한 마리 같다고 했다.


남편에겐 그리 여유로워 보이던 식물 관리가 나에겐 왜 이리도 바쁘고 정신없는 일이 되었고, 이렇게 손이 가는 일은 많은데 식물들은 더 아파가는 상황이 되는 걸까.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며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되고 나니 매번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과연 지금 이만큼의 물을 주는 행위가 이 식물을 살리기 위한 일일까 아님 죽이는 일이 될까?'


그리고 떠오른 답은 엉뚱하게도 김광석 아저씨의 옛 노래 제목이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에’




부족하지도 않지만 과하지도 않을 관계



식물을 잘 죽이는 사람들은 보통 두 분류로 나뉘는 것 같았는데 하나는 정말 관심이 없어 관리를 하지 않아 죽이는 경우, 나머지 하나는 관심이 너무 많아, 사랑을 너무나 퍼주는 것이 식물에게는 물을 퍼주는 것으로 이어져 과습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나는 차라리 아예 모른 척하면 모른 척했지 관심을 조금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 더 쉬운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더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챙겨주고 싶은, 더 주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갖고, 그만큼 챙겨주고, 사랑을 주는데 왜 내 식물들은 죽는 걸까.’


내가 식물을 키우면서 하나 배워가는 것이 있다면 내가 정말 이 식물을 사랑한다면 내 사랑을 조금은 참는 법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 사랑의 표현이 이 작은 식물에겐 너무나 과해서 더 아프게 만들 수도 있으니, 내 성에는 차지 않더라도 이 식물, 화분에게 맞는 만큼의 사랑을, 물을 주는 연습을 하는 것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선 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처음에는 아무래도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내 기준이 되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건 관계다. 내 생각엔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만약 상대방에겐 필요한 것이 아니거나 원하는 만큼보다 더 크거나 작으면 그 관계에는 괜한 오해가 생겨날 수 있었다. 관심과 애정이 너무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너무 과해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사실 부족한 것보단 차라리 넘치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일어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상처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 부모님들의 과도한 관심과 애정이 아이에겐 부담과 의존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이만큼 해줬으니 당연히 그만큼은 나에게 돌려주겠지 하며 상대방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나 혼자서 키워온 기대에 스스로 실망하던 순간들은 꽃이 피고 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식물에게 물을 주는데 그동안 내가 저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식물을 키우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래서 지금 내가 식물에 물을 주며 하는 마음 연습은 바로 내 마음, 내 과한 마음, 욕심을 참는 것과 상대방의 필요,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노력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물을 주고 싶은지를 표현하기보다 이 식물이 얼마만큼의 물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를 더 알고 싶어 졌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한 해가 지나가는 즈음엔 어떤 식물들은 정말 남편처럼 드문 드문, 무관심한 듯하지만 꾸준히 가끔씩이지만 물을 꼬박꼬박 챙겨줘야 잘 사는 아이들도 있었고, 정말로 손이 많이 가서 남편처럼 물을 줬다가는 삼일 만에 이파리가 다 쪼그라드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아주 조금은 일반적인 결론도 하나 얻게 된 것도 있었다. 나처럼 물을 조금 주는 것이 아쉬운 사람들이라면, 아예 수경재배가 수월해서 물속에 담가 둬야 하는 식물들 외에는 웬만한 식물들에겐 물을 많이 주는 것보단 조금 아쉬운 듯 덜 주는 것이 식물들이 훨씬 더 건강하게 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보단 식물들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특정 위치에서 내리쬐는 햇살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적정한 거리를 두고 가끔은 관심의 스위치를 꺼두는 것이 식물과 식물 집사의 관계도 건강해지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사람 간의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식물에게 물을 듬뿍 자주 주고 싶은 분들, 그런데 그래서 식물들이 자주 시들해지는 분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자꾸 무언가를 더 주고 싶은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이야기 한편을 전하고 싶다. 제목은 ‘뱀에게 신발신기기’라는 짤막한 이야기다.


“우리들은 자녀의 삶, 아내 혹은 남편의 삶, 형제, 부모, 친구의 삶을 간섭합니다. 자신이 간섭을 함으로써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다 간 선인들은 말합니다. 그것이 뱀에게 신발을 신기는 일이라고. 우리 인간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험난하고 가시밭길과도 같으니 뱀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들에게 신발을 신겨 그 고통을 덜게 하자.'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뱀은 죽고 말 것입니다. 뱀은 배로 기어 다닙니다. 또한 그것이 자연입니다. 이웃에게 빛을, 이웃과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정녕 아름답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찾아야만 합니다.”


식물을 키우다 보니 내가 키우는 식물이 어떤 식물인지만을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함께 알아가는 듯하다. 나는 무언가에 과하게 쏟아주는 사람인지 혹은 부족하리만큼 무심한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키우는 식물들에게 이러한 나의 관심은 너무 아픈 사랑인지 혹은 너무 부족한 사랑인지. 이렇게 식물과 보내는 시간들이 한 해, 두 해 늘어가면서 나도 식물도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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