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싫지만 식물은 키우고 싶어

키우던 식물을 그냥 포기하고 싶을 때

by 따뜻한 선인장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찾아온 손님


올해는 눈이 무척 자주 온다. 가을과 겨울, 어둠이 긴 독일은 아침이 되어도 창밖이 깜깜한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눈이 오는 날이면 눈을 뜨기 전부터 주변이 무언가 환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눈이 무척 내리던 어느 날, 무언가 방안에 휙 들어와 날아다녔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가만히 살펴보니 무당벌레 한 마리. 하필이면 플라스틱 봉지 위에 앉아 주변을 살피길래 무당벌레를 가만히 들어 작은 몬스테라 이파리 위에 옮겨 주었다.






식물도 파양이 되나요


요즘 한국에선 한창 애완동물을 파양 하는 것에 대한 이슈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최근에는 애완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식물 집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식물에게도 파양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가 길어지고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물을 방안에 들이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렇게 식물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 반대편에선 아마 알게 모르게 식물들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사람들도 늘어났을 것이다.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을 쓰신 우종영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에선 나무를 사고 키우고 심는 것도 유행을 따르는 듯했다. 나무를 심어야 할 땐 한참 심는 것만 중요해서 나무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심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하지 않아 나무는 심어졌지만 아픈 경우가 생겼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예쁘게만 심는 것이지 아프거나 오래된 나무를 돌보는 방법을 몰라 선생님은 남들이 잘 관심 갖지 않던 나무를 치료하는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티브이나 인스타에는 예쁘고 싱싱한 식물들만 나오지만 길가를 걷다 보면, 식물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어렵지 않게 찾아보게 되는 것이 바로 식물을 포기하는 경우이다.


사람들이 단순히 한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을 떠나 직접 돈을 내고 구매해서 집으로 들이는 결정까지 내렸을 때엔 분명 그러한 희생이나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무언가, 기대사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우연히 본 식물 사진 하나에 꽂혀서 찾게 된 경우도 있을 테고, 흘리듯 맡은 향기가 기억에 남아 구매한 특정 식물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하니 나도 갖고 싶어서 찾게 되는 등 각자가 가장 처음 왜 식물을 집에 들여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각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물 하나라도 오랫동안 제 손으로 직접 키워본 사람은 안다. 한 그루의 식물이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하고 한결같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무언가 '꾸준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닌데 여간 귀찮은 일일 수도 있다. 홀몸이면 배가 고플 때 먹고 고프지 않으면 끼니를 걸러도 되지만 식물을 키우게 되면 내가 아프든 귀찮든 피곤하든 일정한 시간에 물이나 햇살이나 바람 등의 일정한 영양분을 식물에게 전달해줘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정함'과 '꾸준함'은 양면의 영향을 식물 집사에게 미치는데, 우울하거나 만성적으로 귀찮음이 밀려올 때 꾸준히 식물들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 오히려 무기력한 식물 집사들은 일상의 작은 움직임과 활력을 찾게 하기도 한다. 반면 식물을 집에 들여만 놓으면 알아서 사진처럼 가만히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루 이틀 무심코 이를 걸렀다 시들시들해지는 식물을 보고 관심도 사그라져 결국 식물을 포기하게 되면, 그게 결국 식물을 '파양'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한 해의 시간을 걸치며 이러한 순간이 몇 번씩 찾아올 때가 있었다. 나의 경우엔 대부분 나의 애정이 사라져서라기 보다는 내가 이렇게 관심과 노력을 꾸준히 쏟는데도 식물들이 시들시들하다 죽어갈 때였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마지막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식물을 살려보고자 했기 때문에 나에게 '꾸준함'이나 '일정함'의 노력은 식물 파양의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정말 이제 이 식물과는 작별해야 하나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벌레'였다.




바늘과 실과 같은 식물과 벌레


식물을 들인 처음 한 달은 벌레가 보이기엔 새로 찾아온 우리 집 손님에 눈길이 한참 빠져있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몇 달이 지나 처음 흙 속에 숨어 있는 벌레를 발견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사는 게 사실 이런 거고 이게 현실인데 내가 또 환상 속에만 있었네.’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식물을 처음 키우는 나는 마치 처음 사랑에 빠지는 사람처럼 예쁜 걸로만 가득 찬 나만의 환상에 빠져있었다. 사실 흙이 있고 물이 있고 게다가 식물까지 자라고 있다면 작은 미생물이라도 하나 둘 생겨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데 나는 그 이치를 거부하려고 했다. 마치 내가 좋아했던 것은 자연의 일부인 식물이 아니라 그저 사진 속 아름답게 피어난 식물 사진은 아니었을까 진지하게 질문도 했다. 얌전하고 싱싱하게만 자란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 화분 속에서 벌레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사진 속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로써의 식물을 키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식물을 키우는 것만큼 자연친화적이고 일상 속으로 그들을 초대할 수 있는 일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벌레를 싫어하거나 심지어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식물을 들이는데 다시 한번 고민하길 추천한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보며 벌레라는 존재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웠던 나는 식물을 들이기 전 벌레의 존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벌레를 발견하고 나서부턴 나에게 신기한 변화가 한 가지 생겼다. 바로 식물을 보고 있어도 벌레가 느껴진다는 것. 식물을 보는 것인지 벌레를 찾는 것인지 식물보다 벌레가 더 눈에 띄는 시간들이 한동안 계속되는데 문제는 식물을 키울 때 만날 수 있는 벌레의 종류는 너무나도 다양한 것이었다.


작은 초파리처럼 혹은 그보다 작지만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들이 흙 속에 알을 낳는 경우도 있으며, 멀쩡하던 이파리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노랗고 갈색으로 변해서 뒤집어보니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작은 점들의 벌레들이 이미 이파리 뒷면을 점령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벌레는 어떻게 가능한지 그 얇은 이파리 면 사이 속, 수분 줄기를 타고 가서 그 사이에 알을 낳는 경우도 있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벌레를 떠올리면 생각하는 진딧물이나 애벌레, 무당벌레까지 정말 다양한 벌레의 종류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사시사철 찾아왔다.


정말 타고난 은혜가 쏟아져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벌레 한 마리 없이, 건강하고 싱싱하게 식물들을 잘 관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 케이스는 아주 극소수의 축복받은 식물 집사님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식물을 키우는 동안 최소한 한 번쯤은 식물들의 진정한 짝꿍은 물과 흙과 햇빛만이 아닌 벌레라는 것을 실감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고, 여러 종류의 벌레와 부딪치면서 아주 처음 심각하게 식물들을 파양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계절 하나를 한 번만 더 보내고 나면 식물만 보이던 시간이 지나듯, 벌레만 보이는 시간도 지나가게 된다. 그렇게 벌레는 싫지만 식물은 키우고 싶은 시간이 찾아오자 나는 어느 정도 나만의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물 전문가들에게 묻는다면 기왕이면 어떤 벌레도 없는 것이 가장 건강한 상태고 바람직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로 완벽하게 습도와 햇빛과 공기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며 사실 그런 완벽한 컨트롤이 자연의 섭리에서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오히려 식물을 키우면 어느 정도, 어떠한 종류의 벌레도 몇 번쯤은 마주할 것이라는 현실을 나의 기본 전제로 바꾸기로 했다. 사진 속 싱싱하고 예쁜 식물들은 호수 아래에서 무던히 다리를 휘젓고 있는 모습을 감춘 우아한 백조의 모습일 뿐이다. 완벽한 관리가 어렵다면 차라리 나의 약점을 알고 그 부분을 관리하는데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물을 더 많이 주는 경우가 많았다면 벌레를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지나친 과습보다는 차라리 가뭄에 비 오듯 건조하게 흙을 관리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도 벌레가 나타났다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벌레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식물에게 해로운 해충이 있다면 식물에게 이로운 익충도 있었다. 해충의 경우,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은 농약을 뿌리면 되겠지만 그건 개인적인 이유로 정말 내키지 않는, 가장 마지막 카드였다.


벌레의 종류가 다양하듯 해충약의 종류도 그 강도의 차이에서 다른 것들이 존재했다. 독일에서는 식물 집사들 사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추천되는 것이 님오일이었다. 님나무에서 추출한 오일과 유기농 세제를 각각 한티 스푼 정도씩을 물 500ml와 함께 섞어 한 달에 한두 번씩 식물들에게 뿌려준다.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치료 전의 예방이듯, 님오일 역시 예방 차원에서 미리미리 대비하는 개념에 가까운 듯했다. 물론 아주 건강한 흙과 식물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이런 예방법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초보 식물 집사이고 우리 집 식물들에겐 생각보다 자주 벌레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예방하는 편을 선택했다.


이렇게 꾸준히 물을 챙기고, 흙을 살펴보고, 햇볕과 바람을 확인하는 하루 일과에 더해 한 달에 한두 번씩 님오일을 뿌려주고 말리는 것까지 식물 집사로서의 일과가 늘어났지만 어떻게 보면 벌레는 싫지만 식물은 키우고 싶은 내 바람의 절충안을 찾은 것도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그냥 벌레가 아닌 해충은 싫고 익충은 고맙다. 그래서 아주 추운 눈이 내리던 날 갑자기 찾아온 무당벌레 여사를 따뜻하게 우리 집 식물 보금처 위에 올려다 주었다.


식물을 키우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벌레라는 식물의 친구 덕분에 어떻게 보면 나는 그동안 싫다고만 생각하던 벌레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싫다고 피하기만 했던 것들을 다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고, 모든 벌레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들을 갖게 된 것 같다. 아픈 식물들을 돌보아 주면 식물들도 조금씩 나아지듯, 나 역시 그들을 통해 나의 아픈 곳이 조금씩 치유가 되는 건 아닐까.



지난 가을 벌레들의 공격에도 꿋꿋이 이겨내준 몬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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