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불어서, 나는 또 화원에 간다

초보 식물집사의 식물들과 함께 보낸 첫 사계절

by 따뜻한 선인장




꽃이 제대로 피기도 전에 말라버린 식물들의 겨울나기



메마른 겨울은 가고 남은 화분은 얼마 없지만


식물들과 처음 함께한 겨울도 지나가고 있었다. 봄이 다가오면서 꽃집에는 튤립 다발들이 나오긴 했지만, 꽃이 활짝 피우기도 전에 그대로 말라버릴 만큼 건조한 독일의 겨울을 보내며 나는 한동안 꽃집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었다. 드라이플라워를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이 건조한 겨울 같았지만, 대부분 열대 우림지역을 고향으로 하고 있는 우리 집 식물들에겐 독일의 겨울은 혹독했다. 지난봄, 여름, 가을에 흙으로 돌려보낸 화분들보다 겨울 한 계절에 떠나보낸 화분들이 더 많을 정도로 우리 집 화단에 남은 화분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세계절 동안 멀쩡하던 아이들마저 겨울이 되자 어떻게든 말라가고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화원에 가기 보다 우리 집에 남은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잘 보살피자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봄여름 가을엔 식물을 키우면서 이 친구들이 정말 살아있구나 싶었는데, 겨울이 되니 정말 살아있나 싶을 정도로 깊은 겨울잠에 빠진 아이들이 되었고, 자연스레 나의 관심도 조금씩 사그러 드는 줄 알았다.




작은 새싹 위에 분홍 하얀 무늬들로 피어난 올해 우리집 첫 식물



날이 좋아서, 봄바람이 불어서


그런데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지하창고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구근 식물은 미리 알아챈 듯했다. 작년 가을 칼라디움 구근 하나를 얻어둔 것이 있었는데, 몇 주를 심어 두고 물을 줬지만 날이 추워져서 인지 절대 싹이 나지 않던 녀석이었다. 혹시 썩은 구근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원래 봄이 시작될 즈음 심는 녀석이라고 하니 그때 한번 다시 시도해보자고 생각하고 지하창고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겨울이 지나고 창고에 꺼낼 것이 있어 내려갔던 차에 보니, 그 주먹보다 작은 구근에 어느새 손톱보다 긴 뿌리를 혼자 틔워낸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느끼기엔 여전히 춥고 건조한 겨울인데 어떻게 이 작은 구근은 이 추운 겨울 날씨 안에서도 봄기운을 스스로 알고 뿌리를 내린 걸까.


이렇게 둔감한 식물 집사를 위해 알아서 뿌리까지 내려준 그 구근을 위해 오랜만에 화분을 꺼내 흙속에 곱게 심어줬다. 지난가을에 싹을 틔우는데 한번 실패했던지라 반신반의했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다시 물을 주고 정성스레 식물을 살피면서, 겨울 내내 잠시 잊고 이 있던 무언가를 키운다는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싹이 하나 올라왔다. 그 싹 위에 하얗고 분홍색의 진한 패턴들을 보니 마음도 다시 뛰는 듯했다. 밖은 여전히 눈이 내릴 때도 있고, 패딩 없이는 밖을 나갈 수 없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올해의 첫 새싹이 피어나던 날, 나에게도 봄날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처음 식물들과 함께 보낸 사계절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방문한 꽃집에서 나는 식물과 함께한 한 해 동안 예전과는 다른 망설임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 내내 생각보다 많은 화분들을 떠나보내며 그동안 나름 가지고 있던 식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얼어버린 듯했다. 지난해 이맘때쯤만 해도 식물들을 보면 식물 스타 그램 속 사진들처럼 내가 키울 식물들도 저렇게 예쁘게 자랄 거라는 기대에 어떤 식물을 데려올까 들뜬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사계절을 한 번 함께 보내본 뒤, 한 해동안 그렇게 예뻐했던 식물들도 하나 둘 시들고 직접 흙으로 보내며 결국 빈자리만 남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많아져서 선뜻 식물을 집에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아 졌다.


연애를 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과 한 해, 모든 계절을 함께 보내봐야 그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았다. 식물들이 가장 잘 자라는 봄부터 초가을을 지나 모든 성장이 멈추는 겨울, 사계절을 모두 보내고 나니 식물에 대한 내 마음이 과연 처음 마음 그대로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앞으로도 계속 식물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예쁘고 싱싱한 식물들만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등등 이런저런 실력과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경험자료들이 축적이 되다 보니 마치 권태기가 온 것처럼 식물에 대한 내 애정도 시들어 간다고 느끼던 찰나, 겨울 내내 잊고 있던 새싹 하나가 틔어났고 그 작은 생명체 하나가 겨울 내내 얼었던 내 마음도 다시 녹였다.


무슨 일을 해도 시간이 멈춘 듯 자라지 않던 겨울의 식물들이 다시 내가 애정을 주는 만큼 싱싱하게 푸른 잎을 내기 시작했고,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난 지난해 봄, 나의 첫 떨림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내가 처음 식물들과 만났던 4월이 돌아와 있었다.



매해 식물들이 얼마나 자라는지 기억하기 위해 기념사진



취미를 찾고 싶던 나에게

코로나가 남긴 뜻밖의 선물


생각해보니 내가 식물들을 키우게 된 이유는 남편의 취미와 코로나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처음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남편과 그의 친구들을 보며 독일 사람들의 취미 생활에 대해 처음 가까이서 관찰하게 되었다. 그들 모두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더불어 꾸준한 취미생활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나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도 정작 이것이 내 취미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독일에 온 초반에는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처음에는 이런 시간은 내 인생에서 잠시 일어날, 새로운 곳에 외국인으로서 적응하고 있는 특별한 기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일도 언젠가 나이가 들어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 일이 나에게 주는 삶의 활력소만큼이나 취미생활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취미를 갖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어떤 취미를 갖고 가면 오랫동안 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코로나가 퍼졌고, 그게 마침 사방천지에 꽃이 만개하던 봄이었고, 그렇게 사람은 만날 수 없고 자연은 그런 사람들을 반겨주던 작년 사월, 나는 어쩌면 꼭 만나야 하는 인연처럼 식물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식물들을 키우게 된 4월이 다시 한번 돌아오는 동안, 내가 처음 생각했던 식물 집사에 대한 그림과 지금 한 해를 식물을 키워보며 알게 된 그림은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한 해 동안 나는 제법 다양한 식물들을 키워봤을 뿐만 아니라 살리기도 했고 또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화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지난해처럼 마냥 가볍지 만은 않게 되었다. 마음에 든다고 해서 무조건 집으로 데려오지 않게 되었고, 이파리가 싱싱하다고 해도 흙 위에나 이파리 뒤에 벌레들이 발견된다면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 멀리 봤을 때 더 현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계절 내내 식물들을 키운다는 것은 내가 식물들에게 쏟는 애정만큼이나 쑥쑥 자라는 계절이 있는가 하면 내 마음은 여전한데도 마치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처럼 쌀쌀맞게 모른척하는 겨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한 해동안 식물들과 함께한 즐겁고 따뜻하고 슬프고 실망스러운 모든 날을 떠올려볼 수 있는 4월, 나는 앞으로도 나의 취미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 초반에 생각했던 어떤 식물이 예뻐서, 내가 잘 키울 것 같아서라는 순수했던 이유들은 사라졌지만 내가 모자란 초보 식물 집사라고 해도, 잘 자라고 시드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하더라고 나는 식물들이 간직한, 살아있다는 증거들을 함께 발견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 상황이 더 좋거나 나빠지더라도 자만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도록, 나를 나로써 무언가를 꾸준하게 보살펴야 하고, 또 무언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식물들의 한결같고 수평한 눈높임이 좋았다. 내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자신감이 가득차든 위축되든 식물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 요구했고, 또 자신들이 나눠줄 수 있는 만큼의 아름다움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여준 것 같았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이렇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오히려 코로나 덕분에 식물들이 더 빛이 난 것도 같았다.


더불어 새싹이 틔어나고,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그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새싹과 꽃이 피어나고 시들 때마다 함께 웃고 아쉬워할 수 있는 남편과의 추억이 쌓이는 것도 식물을 키우면서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지난 사계절을 다양한 색과 추억으로 색칠해준 식물들과 함께 앞으로의 시간들도 가득 채워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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