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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Jan 18. 2021

흰머리 단상

풍수지탄

어린 시절 내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육체적 효도는 부모님의 흰머리를 뽑아드리는 것과 피곤하고 뭉친 근육을 안마해드리고 발로 밟아 드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착함 강박증이 있는 나이지만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나는 효도하는 막내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한가한 시간에 가게에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시면 흰머리를 뽑아 드리고는 했다.
처음에는 개당 1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더 이상 흰머리를 뽑으면 두 분 대머리가 되겠다고 중지를 선언했던 사관학교 1학년 무렵에는 개당 100원까지 인상이 되었었다.

집의 안방 문 앞 마루에 내 무릎을 베고 누우신 부모님의 머리를 족집게로 가르며 흰머리를 뽑아 성냥갑에 가지런히 모으다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올 때쯤이면 흰머리가 수십 개가 모이고는 했다.

"아버지! 오늘은 30개예요. 300원 주세요!"
"엄마! 오늘은 20개예요. 200원 줘요!"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건네주시면 나는 그 돈을 모아 서점에 가서 사보고 싶었던 책들을 사봤다.

밤늦게 가게를 닫고 들어오셔서 씻고 나시면 두 분의 다리와 허리를 요령껏 발로 밟아서 마사지해드리고, 목덜미와 어깨는 이발소 아저씨에게 사사받은 두 손 모아 당수 치기로 두드려 드리고는 했다.

이제는 나에게도 흰머리가 여기저기 나기 시작한다. 그냥 보면 새카만데 들쳐보면 여기저기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보인다.

재작년까지는 샅샅이 뒤져도 20~30개 정도이더니, 작년부터는 약간 회색빛 도는 머리카락까지 뽑으면 쉽게 70~100개가 나온다.

아버지보다 대략 7~8년이 빠른 것 같다.

작년 중반까지는 개당 500원을 부르면 아들과 딸이 아르바이트 삼아 뽑아주더니(대략 시급 30,000~50,000원짜리 고액 알바다.),
작년 말부터는 내 정수리가 훤해지기 시작했다고 "아버지는 두피가 안 보였었는데 두피가 보이고 머리카락이 약해져서 안된다."라고 뽑아주지를 않는다.

그래 봐야 한 달에 한번 100개 정도 뽑는 건데 말이다.

어린 시절 나이 어린 막내인 내가 해드릴 수 있는 효도는 이런 것들과 공부 잘하는 것뿐이었다.
힘들고 귀찮아도 흰머리를 다 뽑고 나서 부모님이 "우리 아들 덕분에 고맙네~ 수고했어"라고 하면서 툭툭 쳐주시면 대단한 효도라도 한 듯 뿌듯했는데
내 아이들은 나와는 또 다른 가 보다.

양치질하고 세수하다가 문득 삐져나온 흰머리를 뽑으려 거울 속의 나를 낑낑거리며 바라보다 문득 아버지를 보게 되니 긴 겨울밤 삭풍이 부는 산속에 누워계실 두 분이 생각나 눈가가 젖어든다.

樹欲靜(수욕정)이나 而風不止(이풍부지)하고 子欲養(자욕양)이나 而親不待(이친부대)하다.
나무는 조용하고 싶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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