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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Dec 15. 2020

겨울밤

새벽 2시.
겨울의 초입을 휩쓸고 지나가는 찬바람에 문풍지가 클라리넷의 마우스피스속 리드처럼 떨리며 운다.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을 깨 쳐다본 안방 문에는 마당의 앵두나무 가지가 모든 잎을 잃은 앙상한 나신으로 마치 숲 속의 악령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보안등 불빛을 뒤로하고 춤추고 있다.

섬뜩한 마음에 누은 채로 동공만 커져가는데, 갑자기 벽시계가 2시를 알리는 괘종을 울리는 바람에 벌떡 일어난다.

옆에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무시면서 잠꼬대로 대화를 하신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운데, 저 삭풍을 뚫고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까지 갈 엄두가 안 난다.
가더라도 화장실 문을 열면 변소 귀신이 나얼 것 같다.

변소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의 밤은 깊어간다.


잠을 자다 소변이 마려워 깼다가 45년 전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연탄난방, 아궁이, 구들장, 요강, 창호지, 이불을 덮어도 코끝이 시리던 방안의 웃풍, 덜컹거리던 유리문, 삐걱거리는 마루, 뭐든지 생명이 깃들어 있을 것 같았던 마당의 나무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 갑자기 눈앞이 흐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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