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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Nov 22.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당신의 스노볼은 누구?


그 후로 일이 잘못됐다 하면 모두 스노볼이 저지른 일이 되었다.
유리창이 깨지거나 배수구가 막혀도 누군가 나서서 밤중에 스노볼이 들어와서 그랬다고 말했다.
-동물농장 7장.



테이블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 나는 만든 이와 제조날짜가 빈칸인 베이스 하나를 발견했다. 아래위로 깔끔히 분리되어 있어야 할 민트 프라페 원액은 하얀 덩어리들과 끈적하게 뭉쳐있었다.


“으!”


시큼하고 톡 쏘는 냄새가 코안을 찔렀다. 옆에 있던 뽀글이도 코를 집게손으로 막으며 내게서 두 걸음 물러났다.


“요구르트 삭힌 냄새야. 완전 쉰내 난다.”

“유통기한 남았지 않아요? ”

“안 적혀있어. 이 정도면 2주는 넘었을 것 같은데.”

“헉. 안 적혀있어요? 그럼 새로 만들까요?”

“누가 만든 건지 모르지?”

“어, 잘 모르겠어요... “


뽀글이는 말 끝을 흐렸다.  


“일단, 날도 추워지고 잘 안 나가니까. 한 잔 레시피로 만들자.”


뽀글이의 입꼬리가 반쯤 내려갔다.


“저기 혹시, 네모씨 아닐까요?”

“응? “

“이거. 민트 베이스요.”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벌써 떠난 지 한 다된 네모씨가 가게에 몰래 들어와 베이스를 만들고 갔을지도 몰랐다.  그건 가능한 일이었다. 맞아. 우리 카페에 근무하는 그 누구도 최근에 이 베이스를  만들지 않았어. 그렇지? 붉어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는 뽀글이를 이해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사장님에게 혼날 것 같자 내 안의 비겁함이 고갤 들었다.  


“A지점에 있을 때 퉁퉁이랑 계속 이렇게 했었어요.”


그래? 사장님은 내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나는 소심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가만히 날 쳐다보는 사장님이 부담스러워 괜히 닦은 곳을 더 닦으며 눈치를 살폈다. 거짓과 사실이 반반 섞인 말을 내뱉었을 때의 긴장감이란.  A지점에서 근무할 당시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길었던  퉁퉁이와 (속된 말로) 야매로  가게 내 규칙을 정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자  우리는 이래도 괜찮구나 결론지었다.

더군다나  A지점 사장님에게 우리가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가게 내 문제를 보고하기가 꽤 귀찮았다.


A지점 사장님이 일관련해서 물으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뭔가를 깨거나 기구 사용법을 모르거나 주문 누락건 등 말하면 무조건 혼날 것 같았다. 우린 그게 싫었다. 처음엔 양심에 찔렸지만 나 ‘혼자’ 그러는 게 아니라 ‘같이’  그런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도 안심되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더는 같이 일하지 않는 퉁퉁이 핑계를 대다니. 급격히 빠져드는 자괴감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럴 수 있지 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사장님은  팔짱낀 채 매장 안을 둘러보며  여긴  이렇게 닦고, 저건 솔로 문지르고 등등 아직 서툰 나의 매장 관리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일이 짚어주었다.

나의 실수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떠난 사람에게 문제의 원인을 떠넘기기란 참 쉬운 일이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는 쓰레기통이 되기도 했다.

그 쓰레기통은 유효기간이 평균 한 두 달 주어진다. 그 기간 동안엔  가게 내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게 하면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됐다.  자잘한 실수들은 떠난 지 얼마 안 된 ‘그 사람’의 몫이었고 , 우리는 주어진 ‘문제’를 바로잡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감정상하는 것 없이, 불편한 것 없이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관리자라면 떠난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을 더 챙겨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당장 내일부터 매일같이 마주해 야한 얼굴들을 외면할 수 없는 나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퇴사한 이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도 관리자의 몫이다.  


카페 매니저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의 나는 어리숙하고 비겁했다. ‘잔소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게 몹시 부담스러워 얼굴 보며 지적하는 대신 단톡방을 방패 삼아 한 사람의  잘못을 모두의 잘못인 것처럼 둘러말했다. 또 실수를 저지른 상대방의 출근시간에 맞춰 (그 사람만 볼 수 있게) 매장에 쪽지를 남기고 퇴근하기도 했다.  이런 나의 관리방식이 좋았다.  지금 당장 껄끄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어 편했고  매니저인 내 말을 잘 알아들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하지 않았나.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란 걸 매일 눈으로 목격했다.  그 잔소리 방식은 내가 편했듯 직원들도 편했다. 직원들은 자신의 잘못을 모두의 잘못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다 같이’  일을 대충 하거나 실수한 것도 모른 척 넘어가기 일쑤였다. 주어진 책임은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쉬웠고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오해는 조금씩 늘어났다. (예를 들면 평일직원들과 주말 직원들 사이 오픈직원과 마감직원 사이에서 말이다.)  그렇게 쌓인 오해들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만다.


어쨌든, 그때의 나는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생각해 보니 함께 일하는 그들의 마음을 빨리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되지도 않는 의무감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상황에 휩쓸려, 혼날 것 같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피하고 싶은 마음. 나도 무수히 경험했고 그렇기에 잘 안다. 자만심이 이룬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렇게 둘러 말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알아주겠지라는 건 없다. 직장 내 실수를 하면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다. 윗사람에게 정확한 상황과 자신의 저지른 행동을 솔직히 알리는 것. 특히 본인의 잘못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나는 작은 일이라 생각해 무마하더라도 생각보다 커져 금전적 손해로 보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신입 매니저일 때, 직장 선배로써 인생 선배로써 내게 보인 사장님의 관대함이 도움 되었다. 그래서 나도 비슷하게 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제는 무작정 두리뭉실하게 지적한다기보다, 직원이 혼자 있는시간에 찾아가 대화를 한다던가 전화를 걸어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고칠 점을 확실히 말했다. 잘 한것에 대한 칭찬은 아끼지 않았고 작은 실수는 별것 아닌 거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자 개개인의 행동이 조금씩 개선되는 게 눈에 띄었다. 컴플레인은 줄어들었고 매장 안은 좀 더 청결해졌다.    커피  맛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정해지고  배달받은 사람들의 칭찬리뷰가 이어졌다.            

대신, 나와 직원들의 사이는 좀 더 멀어졌다. 하하. 뭐 어떤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지 않은가.  ‘떠날 사람들이야. 너는 관리 자니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정거리를 잘 유지하며 행동해야 해. 안 그럼 지적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돼.‘  직원들과 격 없이 친해지고 싶어 하던 내게 브레이크를 걸어준 사장님의 조언.


오늘도 나는 ‘앞으로 떠날 사람’과 ‘이미 떠난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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