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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Nov 14.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안녕하세요. NPC입니다.


오늘따라 대화가 가능한 손님이 고마웠다.


“매일 저기 큰 네거리에서 내려와요. 여기 커피 마시려고.”

“정말요? 그렇게 멀리 서요?”

“그렇게 많이 먼 것도 아니에요. 항상 이 시간에 일하시죠? “

“네? 네, 맞아요.”

“그쪽이 만든 라떼가 제일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손님은 코를 훌쩍이며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코끝을 시리게 하는 날씨와 잘 어울리는 흰 목폴라 니트를 입은 손님은 양손에 쥔 따뜻한 라떼 두 잔을 손난로처럼 들고 자신의 일행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머신 주변을 청소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흰 니트 손님은 우리 가게 단골이 된 지 5개월이 넘었다.


”아니, 그동안 뭐라도 말하고 싶었는데 지난달 까진 말할 틈도 없더라고... “

“하하. 네, 더우면 아무래도 그래요.”

“저기 왔네. 어쨌든!  라떼가 제일 고소해!”


내가 또 다른 감사인사를 전하기 전에 흰 니트 손님은 으아~춥다! 를 연신  외치며 어느새 카페 근처로 온 블랙 소나타에 빠르게 올라탔다. 부리나케 뛰어가는 뒷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렇듯 근무에 찌든 몸이 손님 한 명으로 인해 싹 씻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매번 사람들과 소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순간이 떠나면 그다음엔 안 좋은 순간도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저 지금 집에 가고 싶어요, 매니저님.”


탕탕탕-!


경쾌하면서도 거친 소리가 조용한 매장 안을 울렸다.

뽀글이가 입을 삐쭉 내밀며 포터 필터를 고무 넉박스 위로 몇 번이고 더 내리쳤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러니까요! “







노랗게 탈색한 남자 손님이 음료를 사간 지 약 5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아이스티 리터 사이즈로 주세요.”


약간 의아해하는 우리들에게 재주문을 하며  앞에 어떤 사족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까 그거 X나 맛없어요.”


다행이다. 이럴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아, 네.”

“...”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손님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뒤에서 뽀글이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동그란 눈을 더 땡그랗게 뜨면서 아이스티를 만들었다. 음료가 만들어지는 그 몇 십 초 동안 나는 손님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해 옆으로 비켜선 건 노란 머리 손님이었다.  뽀글이에게 받은 아이스티를 노란 머리 손님에게 전했다.


 “리터사이즈 아이스티 나왔습니다!”


삐딱한 시선으로 비속어를 내뱉던 아까 전의 노란 머리는 없었다. 대신 내 눈을 피하고 어깨를 오므린 노란 머리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음료를 받아 든 그 남자 손님은 도망치듯 사라졌다.


솔직함이 피드백이 되기도 하지만 선을 넘은 솔직함은 무례가 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평가를  곧잘 했다. 자신들의 대화가 남에게 들리지 않을 거란 확신. 하지만 우리는 손님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귀에 담았다.


그 언니야는 영 시원찮더라니까. 맹물이야 맹물./싱겁더라니까! 그래도 이 언니야는 잘 만들어서 내가 사 마신다./

/ 말귀를 못 알아듣네. / 결혼은 했나? 살림을 안 해봐서 그래./ 이거 맛있어? / 아니 아니. 완전 노맛. 지난번에 먹어봤는데 진짜 달더라./ 지난번 그 사람이 아니네. / 사람 바뀌었나 봐. /  저 사람이 만들어주는 거 별로임. /  와, 저건 얼음으로 마무리하네. / 야,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제대로 만들고 있나 보게. “


손님? 저희는 본사 레시피를 지켜 만들고 있습니다만... 따위에 내뱉지도 못할 말을 속으로 삼키며 음료를 만들던 중 옆에 있던 뽀글이가 내게만 들리듯이 중얼거렸다.


“앞에서 말하는 사람 너무 싫어요.”


허허. 들리겠다. 뽀글이는 엠제트 중 제트에 속하는 어린 나이답게 잔뜩 구긴 미간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뚱한 뽀글이에게 괜찮아~.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포장된 두 음료를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에게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지만.


매장을 몇 미터 벗어나지 않는 이상, 매장 안팎에 있는 사람들의 말은 공용 스피커를 켜놓은 것처럼 잘 들린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방문한 노모와 중년 남매는 매장 내 근무자가 나뿐인걸  확인하곤 돈에  얽힌 가족 싸움을  장장 1시간 반 동안 치열하게 했다.

길고 긴 다툼이었다. 내가 선정한 곡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탕! 탕! 탕!

 

테이블을 여러 번 세게 내리친 중년 여성은 몸에 오른 열을 식히기 위함인지 내가 만들어준 아이스 아메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중년 남성은 자리에 앉을 때처럼 말없이 아이스티만 마실 뿐이었고 노모는 본인에겐 며느리 되는 사람을 두둔하며 침 튀기는 반격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가정사를 알게 된 제삼자가 되어있었다.


두근두근. 영업이 종료되기까지 십 분이 남았음에도 오고 가는  고성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슬슬 고민에 빠졌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나는 연락처에 있는 키패드에 112를 누르고 대기했다. 일 분만 더 기다려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눌러버리자. 결심을 하자마자 매장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의자를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는 소리가 들렸다.


바 안쪽에 있던 나는 홀 쪽으로 고갤 내밀었다. 거기엔 노모와 중년 여성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마신 매장용 컵을 내가 있는 쪽으로 정중히 가져다주었다.


“하하. 잘 마셨습니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지요? 미안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1시간 반 동안 내게 보여준 사나운 중년 여성과 노모는 더 이상 없었다. 중년 여성에게 손찌검당한 테이블도 상처하나 없었다. 의자도 제자리에 있었다. 되게 오랜만에 찾아온 정적이 반가웠다. 하지만 나보다 홀을 지키고 있던 군자란이 누구보다 고요함을 반겼으리라.

 






온라인 서치를 하다 보면 엔피시 취급을 당했다는 경험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매일 같은 시간 규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흔히 겪는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교류가 활발해져 그런 건지, 익명이란 이름뒤에 숨어 의견을 표출하는 게 익숙해져 인 건지 아니면 이 둘을 포함해 다른 이유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런 건지. 이런 사회 문제를 분석하는 건 관련 연구를 하시는 분들의 몫이겠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태도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앞에 두고 들려도 상관없다듯 행동하거나 상대방을 투명인간 취급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매일 시간알리미처럼 오는 단골손님에게 우리가 별다른 질문 없이 음료를 제공하듯 사람들도 우리를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 조금만 생각해 준다면,        최소한의 예의 있는 소통이 매일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훨씬 일할 맛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감정 있는’ NP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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