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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Oct 19.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노쇼- 면접 편.

요즘엔 노쇼(no-show)가 유행인가요?


벌써 세 번째다.

약속한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카페 매니저입니다. ㅁㅁㅁ님 되시나요? 면접일정을 잡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괜찮으시다면 00 날 00시 괜찮으신가요? 네. 그럼 00 날 00시에 뵙겠습니다.]


형식적으로 소통한 관계는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끝났다.

돈으로 얽혀있는 일터에서 만난 사이는 이런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약속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다.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면접들을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나와 다른 시간 개념이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열에 네 명정도는 약속한 날짜에 등장하지 않았다.


“MZ(엠제트)라고 하잖아요. 그중에서도 Z(제트)라서!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죄송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벙글씨도 Z(제트) 신데요.

하소연하는 날 위로하는 벙글씨 덕분에 속상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엠제트. 엠제트. 변명으로 들렸다.

과연 특정 세대에만 해당되는 사회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는 걸까?  


“진짜 그렇다니까요? 저도 지금 대학생이지만! 한 학년 차이도 크다고요!

 22에서 23학번 얘네들 개인주의 진짜 심하다 하면서 선배들이랑 얘기했죠! 진짜 진짜.”


이번엔 내가 벙글씨의 하소연을 들어줄 차례다. 벙글씨는 학교 이야기를 하며 요즘 어린 녀석들이

얼마나 개인주의가 심한지를 행동 하나하나 짚으며 제자릴 방방 뛰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한 살에서 많게는 세 살까지. 한두 학년 차이지만 어떤 질문을 하면 돌아온 대답은 네. 이것 하나뿐이란다.

선배로서 궁금한 게 있어 이것저것 물어봐도 후배들의 대답은 (미소 지으며) 네.

과제 때문에 의견을 물어봐도 네. 불편함이 생긴다면 문자로 연락 오거나 아님 한참 뒤(뭔가가 마무리될 시점)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못한다라는 냉정한 한 줄 통보. 그 뒤로 이어지는 얘기는 없다고 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잖아요.”

“오우, 성격이랑 달라요. 작년에도 좀 그랬지만 이번 학년 전체가 너무 심해요!

 졸업반인 선배들도 과회식이나 축제 때 이번 신입들 최대한 빼려고 하겠어요.

 힘들어도 그냥 기존 멤버들끼리 하는 게 맘 편하다고요. 완전 공감.”


아는 사람을 보면 인사하는 게 기본인데 그조차도 안 한다는 사람들.

개인주의를 넘어 극이기주의가 팽배한 제트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근무시간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벙글씨와 얘기하면 할수록 나는 사람 뽑는 일이 처음으로 겁났다. 정말 그런가? ‘그 세대’ 만의 특징?

 

베이비붐 세대인 전국의 부모님. 90년대 초 X세대에서 나온 오렌지족.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M.

모바일이 중심인 Z. 2010년 이후 출생자이며  AI가 일상인 알파세대까지.

문제가 없던 세대가 있던가.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지금의 ‘꼰대’라 불리고 있지 않나?

매장을 한 번씩 방문하며 근무자의 태도나 여러 관리에 대해 잔소리하는 M세대인 나도 매장 근무자들에겐

‘꼰대’로 보일 때가 있다. (어떻게 아냐고?  나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표정에서 잘 알 수 있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김밥가게와 달리 카페에 근무하는 연령대는 상대적으로 많이 어리다.

그래서 나이에 따라 근무자들을 조금씩 다른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건 일찌감치 깨달았다.

혹여나 상처받을까 그들이 잘 못한 것을 최대한 돌려 말하거나 근무 시 해야 할 것들만 얘기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싱크대에 핀 곰팡이를 청소해 달라던가, 옷은 어두운 계열로 입어달라던가,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달라던가, 물류 정리는 바로 해달라던가 등등. 이건 면접 볼 사람을 결정하고 만나 대화할 때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최근 김밥가게에서 부드러운 잔소리를 들었을 때,

나도 윗사람들에게 카페 근무자들처럼 보일거란 생각이 번뜩했다.


사람 by사람.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면 현재 카페 매장에 벙글씨를 제외한 나머지 Z세대에 해당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벙글씨가 흥분하며 말한 Z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본 예의가 있고 벙글씨처럼 자신의 몫을 해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짜인 규격 안에 집어넣고 동그랗게 묶어 판단하게 됐을까. 그렇지만 나도 잔소리할 때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한다.






최대한 친절하게 면접 약속을 잡고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는 일이 하루 더 늘어났다.

면접 노쇼는 가게 내 이슈로 떠올랐다.


-요즘 애들은 못 온다 연락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참나.

-헉. 작년에도 이랬다고요?

-해가 갈수록 심해지네요. 체감상 열에 넷은 이런 거 같아요.

-그래도 문자 하나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있었다. 못 올 것 같다며 연락 준 예의 바른 분.


[지난번 연락 주셨던 ㅁㅁㅁ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 연락을 받아 거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이 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지만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면접 못 온다고 이런 정성스러운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참 지난 일이기에 문자는 이미 지워진 지 오래되었지만, 기억에 남아 비슷하게라도 썼다.)


“이런 건 처음 들어요. 같이 일하던 애가 잠수 탄 건 봤어도.”


근무자가 하루아침에 잠수 타는 것도 문제지만, 면접볼 사람도 그러는 건 답이 없다.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받은 느낌이랄까.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실패한 기분.


그들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장과 매니저들은 사이트에서 그들의 이력서를 보고 고심 끝에 결정한다.

면접볼 날짜와 시간을 최대한 면접볼 사람에게 맞춘다. 그리고 기다린다.

기다림 끝엔 우리 매장과 인연이 될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생각건대 아직은 특정 세대가 아닌 사바사인 것 같다.

적어도 내 경험상 말없이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들은 나이가 다양했으므로.

어리다고 나이가 많다고 철없거나 성숙하진 않은 것 같다.

내가 기다린 시간과 뽑을 사람에 대한 기대는 크레마가 꺼진 새까만 샷처럼 죽어버리기 일쑤지만.


이젠 사람 뽑을 시기가 오면 마음을 비우고 기대를 낮춘다.


‘오면 고맙고 안 와도 하는 수 없고’


그렇기에 미련스럽게도 약속에 대해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 사람 간 기본 예의는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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