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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Oct 05.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명절은 처음이라서요.


명절은 처음이라서요.


호두는 흐트러진 머리를 질끈 묶었다. 그리고 흑미와 함께 내 뒤에 섰다. 조금이라도 계산대와 멀어진 그들은 한결 마음이 편해 보였다. 몰아치는 주문 때문에 정신없어하면서도 호두와 흑미는 어째선지 웃었다. 계속 웃었다. 명절 전날이었던 그날과 다르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난 여러분들이 웃음이 이렇게 많은 분들인 줄 몰랐어요.” 내 말에 호두와 흑미는 또 넘어갔다. 음료를 젓고 있는 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호탕하게 혹은 소녀처럼 웃었다.


겨우 하루 차이일 뿐인데. 

‘명절 전날보다’ 피곤한 기색도 덜 한 것 같았다.

온전히 ‘매니저인 내 시점’으로 봤을 때 말이다.


여기서 소신 발언 하나 하겠다. 매니저인 내 시점은 이기적인 시점이다. 카페 일에 나름 잔뼈 굵다고 생각하는 사장, 매니저, 점장 입장에서 명절은 그저 일 년 중 ‘가장 바쁜 날’ 이지만, 근무자들에게 ‘가장 불안한 날’이다.


명절. 매장에 관리자가 없다면 이 빨간 날은 불안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카페에 오래 몸 담고 있는 나는 빨간 날이야 흔한 바쁜 날 중 하루일 뿐이지만, 근무자들에겐 ‘처음 맞이해 보는 바쁜 날’이다. 만약 관두지 않고 다음 해 똑같은 빨간 날을 맞이한다 해도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처음 겪어보는 날’이다. 아니면 오히려 겪어봤기에 한숨 나오는 빨간 날이기도 하다.


명절이란 단어는 그 전날부터 가게가 자리한 동네의 모든 주문이란 주문은 다 쓸어 모아 오는 힘이 있다.

(아마 다른 카페도 마찬가지일 것.)


지난 추석도 별 다르지 않았다. '추석 전날'에는 늘 그렇듯, 평소의 두 배 돼 보이는 물류와 미친 듯이 들이닥치는 손님, 배달 주문 그리고 딩동 울리는 선결제가 동시에 일어났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드는 커피와 음료만 마시러 온 느낌이랄까. 카페에서 보내는 명절이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몰랐던 호두와 흑미는 말 그대로 깜짝 놀란다.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보내면서도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지 의심했다. 배달은 잘 보냈는지, 누락된 주문은 없는지 불안하고 무서웠고 걱정됐다.


매장에 도착한 물류는 냉장냉동 제품 빼고 다른 건 정리할 수 없어 일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설거지는 쳐다볼 수없을 만큼 쌓이고 자문을 구할 관리자는 곁에 없었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사정상 오후에 출근해야 했던 나는 너무 지쳐버린 호두와 흑미의 모습을 보고 미안했다. 화장실 갈 틈 도 없을 만큼 바쁜 걸 알았으니까. 10분 일찍 그들을 퇴근시켜 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바통터치 하는 것처럼 바로 일을 해내야 했기에 말을 더 걸 수 없었다. ‘역시 세 명은 있어야겠는데.....’하지만 이미 시간은 흘러버린 뒤였다.


미안한 마음에 추석 당일엔 나는 출근시간 보다 더 일찍 매장에 도착했다.

“매니저님이 오셔서 마음의 안정이 들었어요.”

호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웃음 지었다. 옆에 있던 흑미도 미소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둘 다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추석 전날’ 보다 바쁜 ‘추석 당일’ 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이 밀리는 게 없었다. 나와 호두, 흑미 우리 셋은 마치 음료 공장처럼 음료를 제조했다. 척척 합이 잘 맞았다. (나는 전날과 당일에 잘 버텨주고 있는 이들이 고마워 점심을 사주었다.)


“정말 그랬다니까요. 갑자기 막 몰리니까……이거 어떡하지? 하면서 서로 찾아보며 묻고, 그러다가 머리에 버퍼링이 걸리더라고요.” “저한테 전화했어도 됐는데…” “전화걸 시간도 안나던데요.” “불안하더라고요. 뭐 잘못했으면 어쩌지? 하면서요. 하하.”


다른 날도 그렇지만 특히 명절과 같은 공휴일에는 관리자가 꼭 있어야 한다. 현장 상황 대처가 제일 먼저다. 근무자들이 일을 잘한 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권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하나는 반드시 생긴다. 그런데 왜 매장을 근무자들에게만 맡기는 걸까? 관리자가 한 번씩 정산만 하러 오는 매장은 개인적으로 방치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까놓고 말해서, 정해진 월급을 받는 직원들 입장에선 그 한도 내에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질 뿐이다. 성이 ‘백’씨인 분이 조언했던 것처럼 직원들에게 주인의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 건욕심이다. 예를 들어 내 가게라 생각하는 직원이 있다 치자. 그럼 하극상이라 느끼는 상황이 한 번은 생긴다. 그렇게 되면 가게 주인 입장에선 불쾌해져 직원에 대한 제재가 들어가고 직원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혼란을 겪어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져 버린다.


근무자는 실수할 까 두려워지고 어느 정도 해야 하극상이란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는지 고민에 빠진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근무자들은 가게에 최대한 피해를 안 주려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마음이 위축된다. 후에 관리자가 일처리를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묻는다면 근무자 입장에선 그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근무자의 마음에서 몇 미터 멀어진 내게 경종을 울렸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자주 마주치는 나는 그들의 입장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나도 권한 밖의 일이 발생할 땐 ‘이만하면 됐어,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까.


고되고 불안했던 명절은 이제 끝났다. 직원들과 매니저인 나는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그거면 된 거다.새해를 알리는 다른 명절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이번과 같은 불안과 공포는 덜 느끼게 하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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