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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Dec 02. 2023

[매니저와 꼰대 사이] 미온적 이별.



마요씨와 직원들 사이에 소슬한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일과 안 맞으신 것 같은데,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교육 이틀 차에 나는 그녀를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카페라는 서비스직과 맞지 않아 보였다.

안쓰러웠다. 다른 의미로 우리와 결이 안 맞는 사람이었다. 포스를 보고 손님을 대하고 음료를 만들어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들과 자잘하게 청소와 설거지를 신경 써야 하는 마감일들이. 더워서 바쁘면 바쁜 대로, 추워서 한가하면 한가한 데로.

 

주말 마감일을 시작하고 퇴사하기까지 그녀는 ‘카페일’을 적응하려고 애썼다. 카페일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녀는 근무 일 년 동안 긴장상태였고 베테랑인 사람을 만나면 주눅 들었다. 그래서 시키는 것만 했고 혼나지 않으려 애썼고 선을 지켰다.


들어봐요, 마요씨가 이번 달까지 일하게 되었어요. 혹시 다른 할 말은 없나요? 불편한 점이 있었잖아요.


나는 마요씨와 직원들 간의 갈등이란 구덩이를 메울능력이 부족했다.  중간에서 나름 해본다고 했던 ‘말 전하기’도 소용없었다. 근무할 동안 매번 부딪혀야 했던 건 내가 아니라 직원들과 마요씨였다. 내가 중간에 어떤 말을 해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그들의 눈이 진실이었다.


나의 선의가 타인에게 악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성격도 일머리도 서로 맞지 않은 그들을 한 팀으로 끌고 가기란 쉽지 않았다.



손 씻던 물소리가 멈췄다. 케냐씨는 손에 남은 물기를 대충 앞치마에 문지르며 날 쳐다보았다.


“마요씨가 마감하는 거 보면 너무 답답하다니까요!”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프로의식이 강한 케냐씨는그동안 큰 소리를 한 번도 낸 적 없었다.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 케냐씨는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 내게 마감반인 마요씨가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는지 세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할수록 격양되는 케냐씨를 공감하며 달래주었다. 대화도중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마요씨에 대해 좋은 얘길 꺼내면 매니저인 내가 마요씨의 편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돼버려 그만두었다.


케냐씨와 다른 직원 눈에도 보이는 마요씨의 엉성함이 내 눈에도 보였기에 나는 근무한 지 6개월이 넘은 마요씨의 근무태도를 지적해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직원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다른 직원의 잘못된 점을 고치려고 하는 건 언제나 어렵고 낯선 일이었다.


커피를 어떻게 만드는지, 맹물이야. 너무 싱거워!

지난번에 캐러멜 마키아토를 시켰는데 시럽을 어떻게 넣었는지. 안 달아서,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니까.  

적립하는 거 있잖아요. 열 개를 모아서 포인트로    쓰려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왜 그렇게 걸렸던 거죠?


격주로 교정하고 교정했다. 그러나 마요씨의 근무방식과 패턴은 대부분 원점이었다. 초반 몇 달은 그래도 노력해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준 마요씨였는데,이젠 전혀 의지가 없어 보였다.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지?


마요씨의 퇴사일이 가까워지자 나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변하지 않는 우리에게 그녀도 실망했다는 것을.

자신의 일을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도.






2평 남짓한 주방에서 불편한 마음을 숨기기란 어려웠다. 프로들을 만난다는 건 운이 좋은 것일 뿐이다. 대부분은 자기 몫만 해도 충분하다. 사람마다 역량이 다른 거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직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11개월 전의 변명은 이유가 되지 못했다.


직원들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마요씨가 등장하면 입을 다물거나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본인들 얘기에 집중했다. 직원들과 마요씨 사이에 오고 가는 대사는 간단한 인사나 변경된 공지사항뿐이었다.

숟가락 쥐는 법, 스쿱으로 얼음을 퍼내는 자세, 도구들을 씻어 정리하는 모습 등 몇 개월간 동안 이어진  마요씨의 노력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미지근한 물에 파우더가 녹지 않듯 마요씨와 우리들은 분리되었다. 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은 그렇게 방치되었다.


“괜찮아요. 이제 곧  나가니까요.”


마요씨는 바닥에 물걸레질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한 달 전 퇴사를 말하며 미안해하던 그녀는 없었다.


아. 그렇군요. 케냐씨도 다른 직원도 마요씨가 떠난다는 소식에 놀라지도 그렇다고 반기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 별 일 아니었다. 일 년 가까이 마요씨 일한 것이 오히려 놀라운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나는 떠난 이의 빈자리를 치웠다.






마요씨의 사물함은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익숙한 이름대신 낯선 이름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 는것은 수백 번 겪은 일임에도 적응되지 않는다.

시절인연이라 했던가.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별의 순간은 나와 먼 일 같다.

결국 모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데, 왜 한 번씩 쓸쓸하고 서운하고 이상하다 느껴질까.  

사람과 사람사이엔 뜨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나에겐 이런 관계들이 미지근한 걸 넘어 차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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