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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Feb 15. 2024

[카페매니저‘을’의 푸념] 음식


[먹는 걸로

             쪼잔하게 구는 사장님]


“아하하-. 오셨어요?”

잠이 솔솔 불어오던 어느 가을, M사장이 기습방문 하였다.   알바생인 나는 서서 졸던걸 숨기기 위해 평소보다 과하게 웃었고 눈에 힘주었다. 아무리 주방안과 매장홀은 정리해 놓았어도 신경이 곤두서게 되는 이유는  사장이란 존재 때문이었는데, 그 존재는 뭐랄까  ‘제2의 위생관리팀’ 같달까? M사장이 본인 가게에 오는 건 당연하지만 연락 없이 사장이 오면 새가슴인 나는 컥! 하고 놀란다. 평소 아무리 깨끗이 관리해도 M사장은 매의 눈으로 부족한 부분을 잡아낸다.


‘점심 먹었어? 아니면 김밥 먹을래? 어제 많이 샀는데 생각보다 남아서…’


M사장이 이런 나의 노고를 알아준 걸까?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김밥이라니! 때마침 배도 꼬르륵 거려 잘됐다 싶었다. 휴게시간도 점심시간도 따로 없어 눈치싸움으로 간식을 주워 먹는 내게 김밥이라니. 이게 웬 떡이야. 군침을 흘리던 나는 M사장이 작게 흘리는 말을 개의치 않았다.


‘먹어도 괜찮을 거야.’


감사합니다. 아주 머슴처럼 야무지게 먹어주겠습니다요! 헤헤. 매장을 둘러보고난 뒤 자리를 뜬 사장을 향해 다시 한번 감사인사 한 뒤 손님이 오나 안 오나 간 보며 손님 쪽에선 잘 안 보이는 주방 안 뒷 공간에서 김밥이 들어있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


킁킁…킁?


흘러들었던 M사장의 말을 나는 냄새를 맡자마자 단박에 이해했다. 김밥의 김은 좀 눅눅하긴 했어도 멀쩡했다. 그  속에 있는 단무지가 약간. 아주 약간~. 시큼한 듯 아닌 듯 아리까리한 냄새가 내 코안을 간지렀다. 아하하. 이거 어제 샀다고 했었지? 김밥은 보통 길어도 하루 안에 먹는 게 최고인데 말이야.


“푸학. 그래서요? 먹었어요?”

“먹었지. 윗부분만 먹고 밑에 건 다 버렸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간혹 어쩌다 과자나 천 원 하는 젤리를 사주는 M사장에게 뭘 기대한 걸까. 햄버거 세트 하나는 기본으로 해치우는 나와 알바생에게 버거왕에서 단품하나 사 와서 반 나눠먹으라 하질 않나, 미치도록 바쁘게 일할 때도 본인이 먹을 찜닭 한 마리 시키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먹을 리 없는데, 괜히 기대했다가 사장이 집으로 가져가는 걸 보고 우리는 빈정상했더랬지. 대신 우리도 다음날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 떡볶이 거하게 시켜 먹긴 했다만.


주저리 늘어놓은 내 얘길 가만히 듣던 신입은 자기도 그런 일 있었다며 얘기해 주었다.


신입의 전 사장이었던 B 씨는 먹을 것에 있어 괴이했다. 쪼잔함을 넘어 추잡했다. 어느 날 오후에 B사장은 지인과 함께 고깃집에 갔다. 그날 저녁 B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로 돌아왔다. B사장은 은색호일 뭉치를 근무 중이던 알바들에게 들이밀었다.


받아 든 은색 호일을 펼쳐보니 그 안에는 기름에 찌든 식어빠진 볶음밥이 있었다.


‘이게 뭐예요?’

‘고기에 밥 볶아먹었는데 남아서 들고 왔지.먹을래?’


B사장은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B사장은 생각이란게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날 신입과 다른 알바생은 먹지 않았다. 그뿐이랴, 하나당 천 오백 원 하는 핫도그 사주는 것도 굉장히 아까워하는 사장도 있고, 가게 내에서 물 말고는 어떤 음료도 못 마시게 하거나 돈 내고 먹으라는 사장도 있다.


D카페에 내가 매니저로 지낼 당시 같이 있던 알바생들이 죄다 공통적으로 말해준 게 있다.


‘여긴 간식도 있고, 음료도 한 두잔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이런 비슷한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괜스레 뿌듯했다. 먹을 것에 대한 서러움을 다른 사람은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한 달에 몇 번 사비를 털어 알바생을 위한 간식을 구비했다.  간식바구니도 만들었다. 나도 먹었다.


일터에서 먹는 걸로 눈치 보는 게 생각보다 사람을 작게만든다.


어떤 알바생이 나와 일한 지 한 달이 되도록 물만 마시길래 “다른 음료 먹는 걸 본 적이 없네. 원래 물만 마셔요?”라고 물었다. 그 알바생은 작은 목소리로 “아… 제가 카페인이 안 받는 체질인데… 다른데선 커피만 마시라고 해서요…그 외엔 돈내야 하니까…” 답답한 마음에 내가 “물어보죠!”라고 크게 목소릴 높이자 알바생은 약간 움츠러들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어보면… 괜히 언짢아하실 것 같아서요…”


나는 순간 뻥 졌다. 언짢아? 내가 왜?

나는 할 말을 찾는다고 눈을  껌뻑이며 입에선 어-. 음-. 하며 바보 같은 소릴 냈다. 음료 한 잔이 도대체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까지 주눅 들게 만드는 거지? 교육 때 내가 아무거나 한 잔 만들어 마셔도 된다고 말 안 했나? 그런가 봐. 왜 그랬지? 그런데 이게 이럴일이야? 내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알바생이 안타까웠다.


나도 다른 카페에서 일하면 그 카페 규칙을 따른다. 그건 당연하다. 휴게시간을 정해주는 건 사장의 재량이며, 간식과 식사를 챙겨주는 것 또한 그렇다. 사장의 의무가 아니다. 최근에는 털어먹는 수준으로 가게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먹는 알바생에대해 고발하는 기사도 보았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자영업인데 그런 비겁한 알바생때문에 경계하는 수준으로 각박해지는 인심 이해가 된다.


하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먹는 걸로 인색하게 구는 사장들을 보면 일에 대한 의욕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나 카페일에 대해 벌써 실망하거나 백스텝 하긴이르다. 인심 넉넉한 사장님들도 많고 직원 복지와 소통에 엄청 신경 쓰는 사장님들도 많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부족함이 많아 아쉬운 카페 매니저 생활을 했다.


오늘은 겨울임에도 날씨가 상당히 포근했다.

쨍한 햇빛아래서 걷다 보니, 지친 얼굴로 손을 바삐 움직이는 카페 알바생을 보았다. 저분은 점심을 먹었을까? 답을 뻔히 아는 질문을 던지며 나는 길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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