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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Feb 02. 2024

[카페매니저‘을’의 푸념] 얼음

사진 출처-pixabay



[얼음이

          문제가 아니다.]


새초롬한 바람을 맞으며, 액정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시리면서도 손에 쥔 아. 아(일명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쥐고 있는 사람은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제아무리 칼바람 부는 제주 함덕 해변을 걸을 때도  

‘얼음 가득이요’라고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이스커피에 대한 사랑은 정말 대단해. 단전밑에서 화를 끓어오르게 하는 상황이 많아서 그런가? 어쨌든.

오늘은 손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얼음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 카페는 더 그렇다. 얼음 가득. 가득. 가득!

여름 손님 때문에 강제로 레벨업 하게 된

나는 돔 뚜껑  끝까지 채우는 기술이 있다.

(이건 숙련자들의 노하우며 영업비밀인데…)


내가 그린 그림1


하나. 얼음 한가득 담고 물은 반만 채운뒤 샷을 들이.          붓는다.

둘. ‘뜨거운 샷’ 이 들어가면 얼음이 녹아 자연스레          커피물이 생겨 차오른다.

셋. 빈 부분을 얼음으로 ‘가득’ 채운다.

    그때! 한 손(본인이 편한 손)으로 돔 뚜껑을 컵 가까이 갖다 대고 뚜껑을 닫으면서 작은 스쿱으로 얼음을 팍팍 올려준다. (초보인 경우 이때 얼음을 생각보다 흘릴 수 있다.) 뚜껑 닫고 물이 영 부족하다 싶으면 돔 뚜껑 구멍으로 물을 조금 더 채워준다.


그럼, “와~! 얼음 많이 주셨다.” “와하하하!” 더위에 지친 손님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의 작디작은 수고로움이 사람들의 구겨진 표정을 잠시나마 풀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보람찬 일이다.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별생각 없다가도 기분이 좋아진다. 뭐든 웃음으로 돌려받는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날이 올라가는 기온과 함께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도 만났다.


얼음 주세요.


이 글을 읽는 당신.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지나갔나요? 아님 뭐지?라고 했나요?

대뜸 ‘얼음 주세요.’ 라니. 하하하.

말 그대로다. 얼음 달라는 거다.

저 말을 들었을 때 근무하는 우리들의 심정이 딱

이거였다.


  뭐지?


편의점, 마트에 떡하니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 금액의 각각 다른 크기의 얼음컵과 천천히 얼려 깨끗하고 투명한 물을 얼린 돌얼음팩을 팔고 있는데. 그것도 걸어서 삼 분거리에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얼음을 그냥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제일 싼 메뉴 시켜놓고 얼음을 달라는 건 그래, 그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공짜로 달라는 그런 사람이 여기 있다. 동네장사하는 곳이면 더 그렇고, 단골이 아닌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왜냐면, 얼굴에 철 판 한 번 깔면 얼음을 그냥 받을 수 있으니까.


내가 그린 허접한 그림2 (이렇게 한 번씩 매장내 일회용 위생비닐에 담아준 적 있다.)


자녀분과 함께 와서 “나 여기 단골인데, 얼음 얻을 수 있을까? 지난 주말에도 왔었는데.” 온 적 없으시면서 이런 말을 한다던가, 타 브랜드 일회용 컵을 들이밀면서 “이거 한 번 헹궈주시고요, 혹시 얼음 좀 많이 담아주시면 안 될까요?” 라든가, 반려견과 산책 중 들어와서 “어, 거기 비닐 있네! 거기 얼음 담아 줄 수 있을까요? 아 그리고 종이컵에 물 부탁해요. (강아지 가리키며) 얘 물 먹이게.”


땀이 멈추지 않는 계절, 인내심은 짧아지고 몸은 쉽게 지친다.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안 피곤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근무자인 우리도 사람인지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저렇게 요구하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좋은 감정은 들지 않는다. 주변 의식하지 않고 본인 목적만 달성하는 분들! 한 번만이라도 주변에 기다리는 다른 분들도 돌아봐주시길 바란다. 아, 짧디 짧은 인내심이여.


그런가 하면,

문제가 생기면 무작정 휴대폰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도 있다.

혹시 얼음에 곰팡이가 핀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

어? 얼음에 곰팡이??

내가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 얼음에 ‘짙은 흰 부분 보이시나요? 불투명한 부분보이시나요?’ 손님? 이건 ‘아무 문제없는 얼음’입니다. 다시 말해, 위생적으로 문제 되지 않습니다.

송구스럽게도, 365일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얼음의 상태입니다. 어떤 커피를 마시던, 어떤 에이드와 티를 마시던 차가운! 아이스! 이름이 붙어있다면 전국 각지 어디서든 한 번은 마주칠 얼음입니다. :)


라고 그때 말해줬어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느 때와 같이 한창 바쁜 오후 한 시쯤 매장 전화가 울렸다. 받자마자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삼 십 대 남자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한 시간 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간사람인데요. 마시다가, 어? 이거 좀 아닌 거 같아서요. 보낸 사진 보시면, 이게… 얼음에 곰팡이가 있는 거 같은데. 혹시 얼음 상태 확인 해보셨나요? 제가 뭐 질책한다거나 따지려는 거 아니고요. 얼음 상태보아하니 곰팡이 같은데… 제빙기는 청소하시는 거 맞죠?


내 연락을 받은 사장님이 손님에게 다시 전활 걸었다.

-손님 많이 놀라셨죠? 먼저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보내주신 사진 확인해 봤는데요, 이게 곰팡이가 아니라. ‘크레마’가 응고된 것 같습니다. 네네. 전혀 문제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저희가 오래된 걸 쓰는 게 아니라, 주문 들어오면 즉시 만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얼음에 뜨거운 커피가 바로 들어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손님께서 말씀하신 제빙기도 매장 내에서 꼼꼼히 청소하고업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불러서 약품처리도 합니다. 그 부분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네? 과학적인 근거를 정확히 말해달라고요?


그렇게 사장님이 약 삼 십 분에 걸쳐 그 남자손님과 ‘얼음의 일부분이 왜 하얀 것인가’에 대해 토론 아닌 토론을 펼치는 동안, 나와 다른 알바생은 ‘저거 크레마 같은데’ ‘응고된 거 아니야?’ 하며 소곤 거렸지만고군분투하는 사장님께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토막상식-곰팡이 생성 조건)
곰팡이류는 온난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며 최적온도가 30 정도인데, 그중에는 58인 냉장고 속의 육류에 가장 잘 발생하는 카에토스 더리움도 있고, 푸른곰팡이의 어떤 종은 4553에서만 자라는 것도 있다. 곰팡이는 기본적으로 영양분이 많고 수분이 많으며 따뜻한 온도여야 한다.

-나의 얕은 지식에 두산백과 한 스푼을 추가해 본다.


​원두에서 곰팡이가 생겼다면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말도 못 할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런 냄새를 여태 맡아본 적 없으므로, 원두 곰팡이는 아닐 테고. 그렇다면 답은 크레마다.


크레마(crema)란 에스프레소 위에 갈색 혹은 황금빛을 띠는 크림을 말한다. ‘기름’ 성분이며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커피 향이 날아가지 않게 잡아준다. (바리스타 학원에 다닌 것이 이럴 때 도움되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얼음이 뜨거운 크레마를 갑작스럽게 만나면 얼음의 표면이 순간적으로 녹으면서 다시 얼거나 크레마가 얼음 표면에 뭉치면서 굳는다.


내가 근무한 6년 동안 통틀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혹시나 싶어 국민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걸 확인했다. 오오 그렇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오해할만해.

덕분에, 나는 커피와 곰팡이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나마 늘어났다.


만약, 차가운 음료를 마시다가 얼음을 씹었는데 어떤 이물질이 씹혔다. 그렇다면 해당 가게와 본사에 바로 연락해조 치를 받길 적극 권유한다.


나 또한 다른 카페에 가면 소비자 이므로, 내 돈 주고사마신 것에 대해 문제가 생기는 건 불쾌하다.

그래서 근무자들이나 관리하는 매니저나 사장님이 좀만 더 제조과정에 신경 쓰면 별 다른 이슈는 생기지 않는다.


아. 그래서 대형프랜차이즈는 빡세게 관리하나 봐. 사실 그게 당연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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