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은 아직 부족한 거 같아서, 이틀 더 교육해야 할 것 같아요.
평가는 교육을 시작한 후 중간지점에 왔을 때 끝낸다. 하지만 나도 완벽하지 않은데, 누군가를 향한
'평가'는 매번 껄끄럽고 익숙지 않았다. 그럴 땐 역시 말보다 글이 나았다.
나는 M사장에게 교육 중간보고를 항상 장문의 문자로 정리해 보냈다.
누군가에겐 '레시피도 잘 외우고 손이 빨라서 잘 적응할 것 같아요.' 아니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경험이 있어 바로 하시더라고요.'
또 누군가에겐 '부족한 거 같아서' 혹은 '아직 못 따라와서' 등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해 놓고 후에 추가 교육을 정했다.
나와 M사장은 나름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기본 여섯 번에서 여덟 번 하루 세 시간 교육 후 필요하다면 열 번까지. 그러면 배움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신입일 경우 전반적으로 카페일을 할 수 있다.
카페 알바라도 실전에 투입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인내심이 삼 일을 못 넘긴다. 삼 일이 뭐야 하루도 못 간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데, 이 처음을 수용하기엔 세상이 너그럽지 않다.
비교적 쉽다고 생각되는 카페일도 처음 배울 땐 정말이지 어렵고 버겁고 부담스럽다. 내가 그랬다. 카페일을 '처음' 배우는 일주일 내내 도망갈 궁리만 했었다.
이렇게 메뉴가 많은 줄도 몰랐고, 레시피 암기는커녕 설거지는 이렇게 쌓일 줄 몰랐으며 비품정리에 재고 위치 암기도 힘들었다. 한 번 가르치면 단박에 신입이 해내길 바랐다.
하루 네다섯 시간 일하자 체력은 바닥났다. 카페일은 생각보다 더 장시간 노동에 지치지 않는 육체를 요했으며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정신머리를 필요로 했다. 따라가기 바빠 버벅대는 나에게 어린 알바생들이 옆에서 화내고 핀잔을 줘도 괜찮았다. 그건 아마 내가 카페 일에 '무지' 했기 때문이리라.
나와 같이 들어온 신입이 며칠 만에 관두고 떠난 텃세를 '일 배우려면 이런 건 필수인가 봐' 라며 눈치 없이 견뎠다. 밀려들어오는 손님과 버벅대는 나 때문에 정체된 음료들. 손님도 같이 일하는 알바생들도 바닥난 인내심을 가까스로 끌어올리며 날 대하던 무서운 얼굴들.
지금도 어딘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는 중인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너무 친절하시고, 쉽게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화를 안 내셔 가지고... 고마웠어요.'
'매번 물어도 항상 대답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과장 없이 진실로 내가 신입들에게 들은 말이다. 이렇게 듣기까지 자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교육을 받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을 느낀다. 같은 거라도 어렵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잘 가르치지 못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쉬운 것도 어렵게 배운다. 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제일 먼저였다. 그렇기에 쉽게 가르치려 부단히 애썼다.
-일단, 제일 쉬운 메뉴와 매장에서 잘 나가는 거 알려드릴게요.
-많이 헷갈리시죠? 저도 그랬어요.
5mm, 5g 정도는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익숙해질 때까지 10, 100 단위로 끊어서 계량하면 편해요.
그리고 무조건 많이 드리면 특히 여름에 손님들이 좋아하세요.
(사실, 프랜차이즈에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인데 개인적으로는 정석 레시피대로 하면 맛이 싱거운 경우가 많아 '음료량이 많고 진하게'를 추구했던 가게 이미지에 맞춰 레시피 교육을 했다.)
-정신없으시겠지만, 홀 테이블이 있는 매장이니 손님들이 자릴 비우면 한 번씩 테이블 청소 부탁드려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솔선수범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앞장서 행동하지 않으면 교육받는 사람도 똑같이 안 한다. 그러니 교육자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헤매고 이리 쉬운 것도 어렵게 느끼는 가를 고려하며 상냥하게 가르치는 게 좋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잘못된 행동도 했다.
가령, 내 몸이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마지막 교육을 대충 한다던가, 다음에 하죠라며 미루다 결국 가르치는 걸 까먹는다던가, 중요한 순간에 바로 알려주지 못하던가 했다.
후에 놓친 것들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날 찾는 알바생들에게 미안해하며 나는 뒤늦은 후회와 자책에 반성하길 여러 번이었다.
사회는 냉정하다. 사람이 냉정하다.
비교적 손쉽고 빠르게 일할 수 있는 게 카페일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빨리 알바생들이 바뀌는 것도 카페일이다. 카페에 처음 일 배우러 들어가면 대부분 다른 알바생과 일하며 배우라고 하거나 사장이나 매니저가 이틀 삼일 교육 후 바로 현장에 적응하라고 한다. 그 교육이란 것도 레시피북을 주거나 레시피가 적힌 용지를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보면서 음료제조 하라는 식이다.
'이걸 왜 이해 못 하지? 이 쉬운걸 왜 바로 못해?'
'지난번에 한 번 말했었는데 그걸 고새 까먹었더라니까? 나 쉬는데 전화 오고 말이야 어휴.'
이런 소릴 들으면 누구나 주눅 들기 마련이다. 주눅 들고 시무룩한 태도를 보이면 또 그거대로 못마땅해하며 타박한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나만 피곤하다. 이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일부 사장들이나 매니저들은 신입이 일하다 자신을 찾으면 본인의 일상을 방해한다며 귀찮아하고 짜증 낸다. 정말 감정적이다.
한 번 가르쳐놓고 바로 잘하길 바라는 그런 얄팍한 기대는 큰 욕심 아닐까?
기억도 안나는 예전에, 어느 리더십에 관한 책에서 본 적 있다. 상대방의 실력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매장 방식에 적응하길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런 리더 혹은 경영자.
나는 그런 태도를 닮으려 애썼다. 비록 월급 받는 매니저였지만, 날 제2의 사장으로 보는 그들에게 '단호하지만 너그러운' 그런 상사로 보이길 원했다.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신입을 교육할 때부터 은연중에 깨달았던 거 같다. 평가는 교육받는 알바생들이 아니라 교육자인 매니저나 사장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생각한다.
이때까지 만났던 알바생들에게 나는 내가 바랐던 그런 매니저였을까? 그들에게 나는 어떤 상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