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아가씨~. 주문받아요.”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스틱 설탕 세 개를 찾는 이 손님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중년 남자다. 느끼한 목소리의 그는 카페에 등장한 지 일주일 만에 직원들 사이에서 비호감이 되었다. 웬 배불뚝이인 아저씨가 딸뻘인 우리에게 매번 ‘예쁘다, 예쁘시네요.’라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으니까. 그때부터 진즉 알아봤어야 했다. 사실과 다른 말을 자꾸 해대는 걸 보니 입만 열면 헛소리를 술술 하는 사람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한 참 어른이니까 젊은 사람이라고 예의상 그런 말 하는 거겠지, 또 단골손님인데 뭐 어때. 그렇게 무심코 넘긴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카페에 출석도장 찍는 그는, 이 동네에서 꽈배기로 돈깨나 벌었다는 그는, 근무 중인 나와 직원들에게 말 걸기 좋아했다. 카운터 앞에서 자리를 비키지 않고 본인이 주문한 아메리카노에 스틱 설탕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까놓으며 우리의 많은 걸 알고 싶어 했다. 그는 거의 다섯 달에 걸쳐 나와 직원들의 이름, 나이는 물론이요, 퇴근 시간과 주말에 뭐 하는지까지 물었다. 이쯤 되니 우리는 슬슬 불쾌해졌으나, 그저 적적함 때문에 동네 아저씨가 말동무를 찾는 거로 여겼다.
왜 싸한 느낌은 매번 맞을까? 오늘도 카운터 앞에 서있는 그를 곁눈질로 본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일하느라 바쁜 우리를 훑는 눈길이 녹아내리는 설탕처럼 끈적했다. 마스크 안에 가려진 내 입에서 욕이 마구 부풀어 올랐다. 한 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다른 손님들이 있다며 눈으로 말리는 동료 때문에 참아야 했다.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그 사람은 뭐 하는 인간일까. 또 다른 단골인 동네 마트 직원에게 하소연했다. 내 얘길 들어준 마트 직원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 사람, 원래 그래요. 그냥 생까요.” 아, 알고 계셨네. 이 동네에 자리 잡은 지 겨우 일 년 된 신생 카페인 우리만 몰랐구나. 동네 주민들은 동태눈깔을 한 이웃이 평소 젊은 여자를 장난 삼아 집적대는 걸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
가끔 인생은 따끔거린다. 카페 운영을 책임지는 나로선 진상으로 등극한 그 아저씨 때문에 괴롭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직원들은 날이 갈수록 진상에 대한 불만을 쏟았고, 심지어 관두겠다고 말하는 직원도 나왔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 사람 때문에 우리가 힘든 게 억울했다. 손님으로 오는 경찰분들께 자문했다. 그 사람이 이때까지 우리에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불쾌하다고 느낄 때마다 지구대에 신고해 신고기록을 누적시키는 것만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란다.
가슴이 답답했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 속이라도 풀자. 나와 직원들이 구 개월째 겪고 있는 이 깊은 빡침을 누구라도 알아봐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A4용지를 꺼냈다. 그리고 빨간 유성 매직으로 하얀 지면 위에 하고 싶은 말을 대문짝만 하게 써 내려갔다.
-직원을 향한 사적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
‘예뻐요’와 같은 발언도 사양합니다.
듣는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뻘건 문장을 써놓은 용지를 카운터 창문에 보기 좋게 붙여놓았다. 평소처럼 매장에 방문한 그는 붙여놓은 종이를 보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에 다른 손님들이 적힌 문구를 보며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어? 라며 수군거렸다. 어떤 아주머니는 이런 미친 인간이 누구냐며 가르쳐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종이의 효과는 탁월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갤 숙인 채 말없이 있다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후 그는 다시 왔다. 평소와 같은 커피를 주문한 그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본인을 응대하는 내 시선을 피하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입을 다문채 스마트폰만 내내 쳐다봤다. 그 뒤로 또 몇 번 오는가 싶더니, 그는 더 이상 매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제 역할을 다 한 A4용지를 떼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