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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Oct 29. 2023

사람 맞이

우아한 우리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켜고 인스타그램과 인터넷 뉴스를 빠르게 살폈다. 이상하게 읽는다는 느낌은 없고 본다는 느낌만 있다. 마치 캡처해 뇌 속에 차곡차곡 끼워 넣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맹렬하게 타인의 행복 이미지를 탐한다. 내가 욕망하던 삶이 인터넷 속에 있으니 상대적으로 현실은 부스러기 같고, 스카치테이프처럼 결핍들이 달라붙는다. 결핍 그 자체를 생각하는 충실한 성찰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탈출할 수 없겠지.

 핸드폰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직은 매서운 차가움은 없고 기분 좋은 바람이 선선히 불어온다. 창문 바로 가까이 있던 감나무잎이 모두 떨어졌다. 짙은 주황색 감이 여러 개 아직 매달려 있다. 까치밥일까? 처음 누가 감나무 꼭대기의 감을 까치를 위해 남겨두었을까? 그 사건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져서 단어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놀랍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핸드폰으로 하늘 배경으로 감을 찍으려다 만다.

 현실 폭이 넓은 서사를 찰나의 이미지로 가두면 오히려 서사가 사라질 것만 같다. 감나무 주인은 까치밥을 먹는 까치에게 내년에도 꼭 오렴, 이라고 친근하게 말을 걸겠지. 함께 밥을 나누는 사이는 마법 같은 친밀감이 생긴다. 


 다 읽지 못한 소설 뒤 내용이 궁금하다가 잠들었는데, 일어나서는 이상하게 궁금하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는 결론으로 치달을 것이고, 그 결론은 나와 상관없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는다. 이 무용한 이야기들에 왜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 이 의문은 의문으로만 남을 것이다. 내가 답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래, 그렇겠군.

 인정하기 싫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나를 더 살게 한다.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내 존재를 버틴다는 생각이 든다.   

 창문과 문을 다 열고 청소하기 전에 어젯밤에 마시다 잔에 남은 와인을 벌컥 들이켰다. 쓰고 따뜻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훅 치고 올라왔다. 안주로 먹은 청포도 한 알 집어 먹었다. 포도주에 청포도라? 이상했지만, 생각보다 달콤했다.


 오늘 손님이 온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러니하게 함께 있고도 싶다. 혼자 있을 수 있으면서 함께 있는 방법이, 아니 그 반대로 함께 있으면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서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득,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이 엄청 적은 데 그것을 힘들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고, 그래서 생각했다. 왜? 한참 끙끙대다 찾은 답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 너무 일하면 지친다.

 이 말을 다르게 바꾸고 싶다.

 '우리는 함께 하기 위해 일한다.'

 일의 가치는 함께 하기 위한 가치로 변한다. 그렇지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 '우리'를 꿈꾼다. 서로 조금만 지쳤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한 공간에 있으면서 혼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독립적이면서 친밀한 관계로. 사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밤새 방안을 가득 채운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방안에 가을이 가득 찼다. 어젯밤에 전기장판을 켜고 자서 엉덩이만 따뜻하다.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침대보를 바꿨다. 이렇게 많은 먼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청소할 때마다 궁금하다.

  음악을 듣고 싶어 핸드폰을 앰프에 연결하고 유튜브로 어제 들었던 정경화의 G선상의 아리아를 검색했다. 청소하면서 듣기에 좋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았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창밖을 보면서 흐느끼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연주회라고 누군가 댓글을 써 놓았다. 아, 그렇구나. 슬픔과 그리움이 이처럼 아름다운 소리로 변할 수 있구나.

 청소를 끝내고 모든 문과 창문을 닫았다. 차가워지는 것은 순식간인데 따뜻해지는 것은 오래 걸린다.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편안한 자세로 어제 읽다 만 소설을 다시 읽었다. 소설 속 글자들도 참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희미하게 박동하는 것 같아.... 말의 바깥에서....”

 나는 소박하지만 우아한 ‘우리’를 기다린다.


인용문장 - 나탈리 사로트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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