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깨어난 아침
아침에 옆집 아이들이 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랜만이었다.
‘까르르’ 웃으며 집 앞을 뛰어다니는 소리, 그 작은 발들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는 알람보다 부드럽고, 새소리보다 더 또렷했다.
기분 좋게 눈을 떴다.
그 집은 뉴질랜드에서 온 가족인데, 아이는 누나 하나, 남동생 하나.
몇 주 동안 여행을 떠났다가 어제 돌아온 모양이다.
그동안 집이 조금 납작해진 느낌이었다.
딱히 조용하다고 느꼈던 건 아닌데,
오늘 아침 그 소리를 다시 듣고 나니
‘아, 이런 결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층간 소음을 겪어본 적이 거의 없다.
한국에 살 땐 우연히도 늘 꼭대기 층에 살았고,
호주에 오고 나선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에 머무르게 됐다.
말하자면 그 흔한 “위에서 뛴다”는 소리를 남들만큼은 듣지 못하고 살아온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아침에 뛰는 이 소리는 내게 ‘소음’보다는 ‘존재감’에 가까웠다.
한국에서는 층간 소음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특히 아이들이 뛰거나 울거나 하면, 부모가 죄인이 되고 이웃은 이웃대로 분노하며 고립된다.
뉴스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출산율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이젠 아이 하나가 울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져간다.
물론 나처럼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아이가 있는 삶이 사회 전체로부터 그토록 민감하게 치부되는 실상이, 조금 쓸쓸하다.
어릴 때 들었던 동네 아이들 소리가 기억났다.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잊힌 오래된 공용 축구공, 넘어질 듯한 발소리,
“조심해!” 하고 외치는 누군가의 앳된 목소리.
그 시절의 소음은 이상하게도 다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런 기억들이 커튼 틈 사이로 다시 들어왔다.
살다 보면 아주 가끔,
누군가의 소음이 내게는 음악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