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비, 뜨거운 아스팔트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장소를 제하면, 내가 사는 이곳 서호주 소도시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트, 카페, 도서관, 심지어 병원 대기실에서도. 어떤 날은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걷는 아빠가 맨발이고, 또 어느 날엔 커피를 사러 온 여자가 그렇다. 맨발은 그다지 특별한 광경이 아니다.
내게 이 ‘맨발 문화’는 아직도 낯설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을 서호주의 한 소도시에서만 살아왔다. 그래서 처음엔 작은 도시라 그런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동부의 큰 도시들의 사정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나 지인들의 말로 보아, 아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이따금 사람들은 ‘맨발이 건강에 좋다더라’는 말을 한다. 지면과 직접 맞닿는 것이 체온 조절이나 자세 교정에 좋다는 식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없다. 정작 맨발로 다니는 본인들은 대체로 별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냥 그게 자연스럽고, 편하니까.
겨울이면 비가 세차게 내리고, 땅은 차갑게 젖는다.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름엔 아스팔트가 너무 뜨거워, 발바닥이 데일 것 같은 날에도, 여전히 그들은 맨발이다.
오죽하면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 광고 화면에는 “No shoes, no workout”이라는 표어가 꽤 자주 등장한다. 운동복은 입고 오는데 신발은 안 챙긴 채 맨발로 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다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 아예 경고문처럼 반복 재생되는 광고 화면이 붙어 있다.
문화라는 것은 때로 설명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 이들의 맨발도 마찬가지다. 바닥을 직접 밟는다는 감각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라서일까, 이들은 대체로 느긋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으며, 대화할 때도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는다. 다들 발바닥으로 땅을 느끼며, 흙과 아스팔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듯한 태도다.
해변에서도 맨발로 다니는 걸 꺼리는 나도 가끔은 슬리퍼를 벗고 모래사장에 발을 디뎌본다. 잠시나마, 무언가와 직접 맞닿아 있다는 감각이 들 때가 있다. 도시의 시끄러운 구두발소리는 이곳에 없다. 여기는 서두르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