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놀이터
산을 오른다
작은 발을 감싼 스파이크가 달린 축구화는 산을 오르기에 최적화된 신발 같다
-난 어릴 적 도대체 왜 항상 축구화를 신고 다녔는지에 대해 성인이 된 후 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그 신발이 오래가.."
나는 혼자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내내 집으로 돌아오면 병아리 같은 노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앞산으로 향했다
같이 놀 또래 친구도 없고 갖고 놀 장난감도 없던 나에게 산은 있는 그대로 친구였고
매번 새로운 놀 거리를 제공했다
배가 고프면 나를 산딸기 밭으로 안내해주기도 했으니 나에겐 천혜의 놀이터 였던거다
숲 속에서 나는 달리고 소리치고 뛰고 뒹굴며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가끔 내가 멍하니 먼곳을 쳐다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건 숲 속을 말없이 주시하던 어릴 적 습관 때문인 것 같다
그 속에서 어느 자살한 사람의 교수대를 만났고 목을 메달 았던 줄은 나의 그네가 되었다
그 속에서 숲에서 낙사한 아이들의 무덤을 만났고 봉분은 나의 등받이가 되었다
숲 아래에는 도립병원의 시체실이 있었는데 호기심에 열려진 그곳을 들어간 적도 있었다
절대 잊지 못하는 그 발가락들은.. 아직도 가끔 눈앞에 스치듯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렇게 뛰어 놀던 숲은 외롭던 유년시절을 그대로 응축하며
가파른 숲 속을 뛰다 내뱉던 나의 밭은 소리처럼 문득 문득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숲에서의 놀이가 슬슬 지루해지고 숲이 내뱉는 기침 소리에 떠밀려지고 있을 때 즈음..
나는..
바다를 만났다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없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해양 소년단"이란 단체에 나를 밀어 넣어 주셨는데
바쁜 부모님을 둔 덕분에 피서한번 못 가본 나에게 펼쳐진 바다는
내 짧은 평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다
파도 소리와 모래 사장의 사박거림은 숲 속의 하늘거리던 바람소리와 버석거리던 흙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 잎과 잎 사이로 올려다보던 하늘이 거칠 것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파도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모래사장처럼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친구도 생기고
바다도 알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마치....
숲 속에서 자다 일어나 행복한 소리에 부스스 산을 내려온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 나에게
유년 시절의 산과 바다에서 느꼈던 감정은 그대로
어느 골목에서, 어느 나라에서 은연중에 나를 다시 깨운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과 내가 찍은 사진에 추억 묻듯 드러나곤 한다
산을 등지고 바다로 갔다고해서
산이 싫어지고 바다를 사랑하게 된건 아니다
그저....
지금도 울창한 숲을 들어가면 말이 없어질 뿐이고
바다를 바라보면 미소를 짓게 된다
그리고 어릴 적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