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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fuel Sep 28. 2015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

특별하고 따뜻한 수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외면한다고 느끼고 있을 때

나는 오키나와 구석진 곳의 내가 좋아하는 마룻바닥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아늑한 거실에 도라에몽이 환하게 웃고 있는 그곳을




나에겐 이런 여행이 필요했다는 걸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지만

스스로의 면역력으로 자연스레 편해지는 여행




목이 늘어진 티를 입었고

신발의 끈은 여느 때와 달리 헐거워져 있었다

주의 깊게 찍던 사진도 눈길 가는 대로 셔터를 눌렀고

계획 따위는 그저 식당 두어 개가 전부인 여행

게스트하우스 창 너머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는 그런...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거렸고

마음이 요동치며 가라앉지 않는 흙탕물 같던 나에게

한없는 편안함이 찾아왔다




뒹굴거리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해먹거나

차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다 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맘에 드는 동네가 나오면

카메라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 다니기만 했는데 말이다




가끔은 내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집이나 동네 공원에서는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다

술을 먹으며 높은 톤으로 수다를 떨어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기실 비싼 비용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멀리 와야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공식은 없는 거다

카메라에 담을 멋진 풍경이 가득해도 쓸모없는 여행이 될 가능성은 항상 높다

그러니 기대 없이 그냥 떠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과 마주하며 내 속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고

내 스스로 다독이는 순간이 오고 만다

아이러니하게 그걸 기대하는 거다



오키나와의 게스트하우스가 그러했다

그저 조용하게 쉴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고

무겁던 머리나 가볍게 하자고 출발했다

그곳에서 어떠한 것도 예상하고 기대하지 않고 말이다




그곳에서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있는 힘껏 늘어져 있었고

마음속에 가득 찼던 것들을 천천히 뺄 수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며

그들은 노래를 불러주었고

같이 요리하며 내 어깨를 툭 쳐주었다




특별하고 따뜻한 수프를  대접받는 황홀한 기분의 여행이었다



그날의 여행 일기-

난 보스한테 "꼭! 다시 올게요!"라고 약속하고 차에 올랐어

차를 돌려 언덕을 나오는데 뒤에서 계속 손들을 흔들고 있더라

나도 창문 너머로 손을 뻗은 채 흔들었지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뭔가 코끝이 찡한 거야

눈물이 난 건 아니야......

그냥 생강 사탕 먹은 것처럼 찡했을 뿐이야



한국에 도착 후 얼마 후 그곳의 따뜻함을 그대로 품은 메일을 받았다

.

.

JUNさんですよね?

.

.

また来て楽しく呑みましょうね♪

.

.

남기고 온 술을 마시러 다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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