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01화

프롤로그

비오는 날의 부고

by young

나는 카페에 앉아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본다. 의자에 기댄 채 내 앞의 우진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삼십 분째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자기가 만난 사람들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를 내게 지난하게 설명하고 있다. 매번 바람피운 전 연인에 대한 억울함으로 마무리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젠 머릿속에 그와 만났던 아홉 명의 여성의 이미지도 떠올릴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든다. 혼자 쿡쿡 웃으니 우진은 “왜?”하고 고개를 기울인다. 적당한 말로 얼버무렸다. 굳이 얼굴을 뜨겁게 만드는 말을 하며 서로 민망해질 필요는 없다. 어쩌다 보니 대화가 대학 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그 시절 초록의 계절이 떠오르려 한다.


“걔 죽었대.”


펼쳐보려 했던 맑은 추억이 우진의 말 한마디에 찢어졌다. 커피잔을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목구멍에 말이 걸렸다.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언제냐고 물으니 그는 “작년 겨울에. 나도 어제 알았어.”하며 대답했다. 우진은 담담하게 테이블에 놓인 망고빙수를 푹 떠서 입에 넣었다. 두 사람은 전혀 접점이 없으니, 동기의 죽음에 저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나도 그를 따라 망고빙수를 한입 먹었다. 씁쓸하다는 내 평가에 그는 눈썹을 올렸다. 구시렁거리는 우진을 두고 창문으로 몸을 돌렸다. 여전히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는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궁금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친구로 남기로 했던 건,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그 순간 문득, 스물 셋 즈음 들었던 사주쟁이의 말이 떠올랐다. ‘너는 남자가 많겠다.’ 그때는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몰랐다. 봄비에 흔들리는 꽃나무를 가만히 바라본다. 사랑을 오게 하는 계절이 올 때마다 나는 열일곱 살로 돌아간다. 교복 치마가 바람에 날리던 그 봄, 처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던 그때로.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 이렇게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허기이고 때로는 집착이며 때로는 포기라는 것을.






비오는 날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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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