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02화

열일곱, 민준

#농구공

by young

점심시간이 20분 남짓 남은 시간. 고개를 돌리며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을 바라본다. 운동장 가운데 축구를 하는 남학생들. 그들을 둘러싸고 마치 회전초밥마냥 빙글빙글 트랙을 따라 도는 여학생들. 강당 쪽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는 남학생들. 근처 밴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학생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연어초밥이다. 윤서는 계란초밥쯤 되려나. 우리는 운동장을 두 바퀴쯤 함께 걷고 있다. 회색 철제 철봉이 요즘과는 어울리지 않게 투박하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가 제각각인 세 개의 철봉을 지나치면 보랏빛 꽃나무가 우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보라색부터 진보라색, 가끔 하얀색도 섞인 작은 꽃들이 조밀하게 모여 포도송이 같은 꽃이 주렁주렁 열렸다. 달콤하면서도 상쾌한 꽃향이 바람에 날리자 윤서는 와, 하는 감탄을 뱉었다. 우리는 라일락의 잎사귀가 하트모양 같다 아니다로 논쟁을 시작했다. 어떤 것은 하트모양이었고, 어떤 것은 스페이드 같기도 했다. “스페이드도 하트와 닮았다 아이가, 그니까 라일락 잎도 하트모양이 맞다.” 결국, 하트모양이라고 주장한 윤서가 이겼다. 손에 든 라일락 잎을 버리면서 윤서는 내 이름을 불렀다.


“정현.”

“왜.”

“니 박민준 좋아하나?”

“아니. 왜?”

“좋아하는 거 같은데. 가만 보면 니 자랑 이야기할 때만 표정이 다르다. 목소리도.”

“뭔 소리고. 내 표정이... 뭐 어떤데”


퉁명스러운 내 답에 윤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아무튼 다른데? 니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아니겠지.”

“싱겁노. 매점이나 가자.”


우리는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으로 가는 길에 이어진 넝쿨에는 아직 아무것도 피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날 때쯤엔 이 길엔 장미가 가득할 것이다. 교감 선생님은 입학식 때, 왜 우리 학교에 꽃이 많은지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설명했었다.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은 5분짜리 설명이었다. 긴긴 설명의 요약은 결국 우리 학교가 여학교였다가 공학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학교라고 꽃을 많이 심었다는 것은 우습지만, 나는 계절감을 꽃으로 느낄 수 있는 이 교정이 마음에 들었다.

매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농구장의 민준이 보였다. 방금 전 김윤서가 내게 지껄인 말 때문에 오늘따라 그의 키가 더 훤칠해 보인다. 늘 보던 얼굴이 좀 더 잘생긴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시선으로 민준을 계속 좇았다. 그의 손에서 농구공이 바닥으로 밀려나고, 다시 튀어 오르고. 두 번 반복하고 민준은 농구공을 두 손으로 잡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딱 세 걸음. 쿵쿵쿵 발걸음을 내딛고 그는 가볍게 뛰어오른다.


쿵, 쿵, 쿵.


내 마음도 함께 뛰어오른다.







다운로드 (3).jpg 라일락, 출처는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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