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03화

열일곱, 민준

#작은 어른

by young

덜컹, 농구공이 골대를 지나 추락했다. 바닥으로 툭 떨어진 공을 이름 모를 남학생이 주워 들었다.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민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오른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자기 눈과 내 눈을 번갈아 가리켰다. 아마도 방금 전 자신의 멋진 모습을 봤느냐는 뜻일 것이다. 민준도 자기가 멋지다고 생각했을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눈엔 멋졌다. 평소라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씩 웃어 보였겠지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이상하게 달아올라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윤서의 팔을 끌고 매점까지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아직 점심시간 많이 남았는데, 하며 윤서는 내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띠부씰이, 든 빵을... 사야 된다. 띠부씰. 귀여운, 스티커 모으는 거 있잖아.” 대충 생각나는 대로 얼버무렸다.


“니 방금 박민준 봐서 그러제?”


젠장, 눈치 빠른 김윤서.


“... 아인데”

“아니긴, 야. 니 얼굴 벌겄다 지금.”


윤서는 눈치가 빠르다. 눈치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늘 나보다 빨리 성숙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김윤서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니 혹시 생리대 있나?” 친하지 않은 반 친구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생리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는 초경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답을 했다. “... 나 아직 안 하는데?”


“진짜?” 윤서는 놀란 표정으로 큰 소리를 냈다.


자신이 낸 소리에 놀라 그녀는 입을 틀어막았다. 윤서는 다시 목소리를 죽였다. 내가 또래에 비해 키가 컸기 때문에 당연히 초경을 시작했을 거라 생각했다고 속삭였다. 나는 얼떨결에 내 사적인 부분을 윤서에게 알려주었다.


“울 엄마는 중 3 때 했다 카던데, 카이까 나도 늦을지 모른다. 생리하면 키가 안 크니까, 늦게 하면 좋지.”

“나는 작년부터 했는데. 근데 우리 아빠는 나 생리하는 거 모른디.”

“왜?”

“할머니만 안다. 아빠한테는 부끄러워서 말 몬했다.”

“엄마는?”

“엄마는 이혼해서 같이 안 살아.”


윤서는 말끝도 흐리지 않고 담담하게 답했다. 열두 살의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 사이에는 껄끄러운 침묵이 카펫처럼 내려앉았다.


“맞나.”

“응. 신경 쓰지 마라.”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윤서를 내 마음속 작은 어른으로 삼고 따랐다. 키는 작지만 나보다 많은 이별을 겪은 윤서. 나보다 빨리 사랑을 겪은 윤서. 그녀는 내게 나침반 같은 친구였다. 가끔은 맞고, 가끔은 틀린 고장 난 나침반.








새해 불꽃.jpg 불꽃놀이, 출처는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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