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와 사랑
중학교 2학년. 김윤서는 사랑에 빠졌다.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그것이 윤서의 첫사랑이었다. 상대는 한 학년 위의 선배였는데, 영어학원에서 같이 보충숙제를 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여러 학년이 모여 보충숙제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두달 쯤 지나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다. 윤서는 그 선배에게 정말 푹 빠졌다.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내 친구를 보면서, 사랑은 ‘빠진다.’는 표현이 꼭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윤서를 통해 본 ‘사랑’은 끝을 알 수 없이 추락하며 상대에게 매몰되는 감정이었다. 사랑을 모르는 내가 보기엔,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윤서는 내게 PC 메신저에 들어오라며 문자로 채근했다. 우리는 긴 대화 끝에 ‘3시에 굿모닝 앞에서 보자’는 결론을 냈다. 꽤 후덥한 대구의 여름. 집을 나서자마자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윤서와의 약속을 후회했다. 지금이었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 ‘야, 다음에 보자. 너무 더워.’라고 무책임한 통보를 했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전화를 걸 ‘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실체도 본적 없는 동그란 요금을 원망하며 나는 집에서 1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문방구까지 걸어갔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윤서가 보였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키득거리며 길 건너에 있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에 들어갔다.
“나 오빠야 집에 갔다.”
윤서는 자랑스러운 것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겐 윤서의 말이 ‘나 민정이 집에 갔다.’와 다를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팥빙수를 먹는 내 시야에 그녀의 손이 휘적거리며 나타났다. 서그렁거리는 얼음과 말랑한 팥을 씹으며 “왜?”하고 물으니 윤서는 얼굴을 붉혔다.
“오빠야 집에 갔다니까?”
“근데? 어쩌라고?”
“아이씨, 진짜. 귀 좀 대봐.”
내 귀에 흘러들어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저 헐, 헉, 응, 등의 감탄만 짧게 짧게 뱉으며 윤서의 첫경험을 경청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 선배가 원하니까 했다, 는 것으로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콘돔의 질감에 대한 감상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에는 생경한 정보가 쏟아졌다. 섹스는 생각보다 아프다는 것. 키스가 더 기분 좋다는 것. 그리고 하고 나니 선배가 자길 더 좋아해주는 것 같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햄버거 매장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할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우리는 어렸고, 나는 윤서보다도 더 어렸다.
아니, 나만 여전히 어렸다. 윤서는 열다섯 여름에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