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바나나 우유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이 뭐가 웃기는지 윤서는 크게 웃었다. 먹을 걸 나눠먹으며 친해져야 된다, 이번엔 윤서가 나를 매점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이미 친해. 어떻게 더 친해져? 바보 같은 내 질문에 윤서는 입을 살짝 벌리고는 눈을 치켜들었다.
"정현. 니 박민준이랑 평생 친구할 거가."
"그러면?"
내 대답에 윤서는 팔짝 뛰며 매점 한 구석 전자레인지 옆으로 나를 데려갔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피자빵을 데운 듯 달짝지근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김윤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였다. 내가 박민준을 좋아하는 게 우리가 친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나. 누군가를 좋아하면 꼭 연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내 감정은 아직 끓지 않았고, 겨우 보글거릴 듯 말듯한 타이밍에 김윤서가 이 이름 모를 감정을 우연히 먼저 발견한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이 감정의 이름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알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찾아낸 감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아하면 사귀는 거다! 참나, 내가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꼭 사귀어야 하나. 나는 잘 모르겠는데."
"답답하네."
윤서는 자기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한숨을 쉬는 척 고개를 저었다. 이 작은 어른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앞으로 박민준을 더더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스스로 알게 될 때 더 커진다나. 계속 박민준 생각을 하게 될 거라는 것.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쓸 거라는 것. 오늘 내가 산 단지우유도 핑계가 될 거라는 것. 나는 윤서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단지우유 하나를 사서 박민준의 반으로 향했다. 새 학기의 절반동안 익숙하게 올랐던 2층 계단이 낯설었다. 발걸음이 무거운 듯 가벼운 듯 떨어지지 않았다.
어색한 계단의 얼룩. 어색한 복도 냄새. 어색한 내 발걸음. 익숙하던 것들이 모두 어색했다. 제일 어색한 것은 박민준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야! 박민준! 매점 가자!"하고 복도에서도 우렁차게 부를 수 있던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들고 있던 단지우유에서 물방울만 똑 똑 떨어졌다.
단지바나나우유일 뿐인데.
단지, 바나나우유 하나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