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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Jan 10. 2023

사계에서

시로 쓰는 제주도

사계에서


해안선 따라 한 지점 골라 서서 발끝으로 

파도가 닿는 지점을 예측해 본다


오랜 시간 표류한 바다의 골칫거리가

하얗게 부서지며 발끝에 닿는다

바짓단을 적신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꼴을 한 산에게

바다는 오랫동안 도전해 왔다

파도를 산에 닿게 하려는 수 없는 도전을 보아뱀이 지켜봐왔다


떠다니는 것은, 부서지는 것은 가벼워서 

닿기 전에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바다의 오랜 염원

내 발에 적셔

내일은 산에 올라보련다



사계리에 위치한 산방산. 처음 봤을 때부터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해변 근처에 우뚝 서있는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뜬금없는 장소에 암벽 덩어리 하나 놓인 것처럼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설화에 따르면 제주도를 창조한 설문대 할머니가 뾰족한 한라산 정상 부분을 손날치기(혹은 넥슬라이스)로 잘라 내어 여기다가 던져놓았다고 한다. 한라산 정상부와 산방산의 모양을 대조해보면 얼추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작년 가을에 학교에서 워크숍으로 사계해변에 쓰레기를 주우러 갔었다. 시민 의식이 많이 개선되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지는 않았다. 쓰레기를 많이 모은 그룹에게 포상이 주어진대서 쓰레기를 찾으려고 모래사장 저 밑까지 내려갔었다. 장난을 치다가 파도에 신발과 바짓단을 적실 뻔했다.  


'산이 좋냐 바다가 좋냐'라는 질문처럼 대체로 산과 바다는 대비되는 장소로 표현되는데 사계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가깝게 구경하고 느낄 수 있다. 이에 더해 한적하기도 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섬의 최남단에 위치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 남쪽의 바다에서부터 달려온 파도가 마치 산에 닿고 싶은 것처럼 거세게 치고 부서진다. 해변을 사이에 두고 산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바다는 산을 올려다본다.   



산방산을 삼킨 보아뱀
저 멀리 뒤에 보이는 한라산의 뚜껑이 사실은 산방산일 수 있다


올레 안내소에서 클린 올레 봉투를 수령할 수 있다. 클린하우스에 무료로 배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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