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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Jan 09. 2023

곶자왈

시로 쓰는 제주도

곶자왈*


인적이 끊겨버린 숲 속으로 들어서자

오랜 시간 몸 담가왔던 세상과 단절된다

숲 그늘처럼 순식간에 나를 삼키는 낯선 자유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 서둘러 출구를 향해 걷는다

축축이 밟히는 흙, 몸에 붙어대는 풍뎅이,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 선명해지는 에메랄드빛

걸음이 느려지고 곧 멈추고 만다


단절되고 고립되었지만 외롭지 않다

그 어떤 인위적임도 없는 숲 속에서

비로소 나의 사람다움을 느낀다

허황된 상상마저 실체를 갖추는 공간에

휩쓸려 오솔길을 벗어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 등 떠미는 바람,

꽃을 찾는 풍뎅이, 굳어버린 흙

걸음을 재촉해 숲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암괴 숲지대를 일컫는 제주어




영어교육도시가 위치한 대정읍은 본래 곶자왈 지대다.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상당한 면적의 곶자왈이 손실되었음에도 여전히 일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영어교육도시 내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곶자왈은 독특한 숲이다. 용암류를 지반으로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공존해 우거진, 아름다운 숲이다.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도 많아서 얇게 갈라진 잎들을 관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옛날 사람들은 숲을 미지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험하고 어두우며 야생이 들끓는 위험한 지대. 그런 숲이 이제는 정복되어 출입구가 만들어졌다. 단절과 고립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현대 사회에서, 숲은, 이 두 가지가 사실 우리에게 어느 정도 필요해왔음을 일깨워준다.




신평 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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