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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Mar 10. 2023

창작으로서의 번역

Wind-Up Bird Chronicle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이자 동시에 번역가이다. '소설가로서 안 좋은 점은 쓰기 싫은 데도 써야만 한다는 점인데, 때로는 쓸 내용이 없어서 괴롭고 배가 아파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창작의 고통을 잊기 위해 번역을 한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본인이 번역을 하다 보니 다른 번역가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 하루키는 본인이 쓴 작품은 다시 들여다보지 않지만 영어로 번역된 작품에 대해서는 훑어보고 번역가들에게 감사를 표하곤 한다."

-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문학인생 반세기, 조주희 저



다음 달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문으로든 영문으로든 서둘러 번역이 되어 올해 안에는 내 손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모두 영문로도 출판되어 있다. 나는 그의 장편 중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는 영문판으로도 읽어 보았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일부러 국문판은 안 읽고 영문판으로만 읽었다. 일본 소설을 영문으로 읽는 것은 유럽권 소설을 영문으로 읽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The Wind-Up Bird Chronicle) 영문판을 얼마 전에 다시 읽어 보았다. 군복무 중에 읽었으니 약 9년 만이었다. 재완독 후 작품론을 읽고 싶어서 찾아본 위의 비평서로부터 번역가로서의 하루키에 대한 면모를 알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인 '태엽 감는 새'는 주인공의 집 근처에서 들리는 태엽 감는 소리로 지저귀는 새를 지칭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주요 소재가 되는데 흥미로운 설정은 이 태엽 감는 새의 소리가 주인공에게만 들리고 주변 인물들은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태엽 감는 새'라는 표현을 처음 'Wind-Up Bird'라고 칭한 번역가에 대한 언급이 책의 서두에 적혀 있다. 이 작품의 초안이 되었던 단편작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Wind-Up Bird and Tuesday's Women)'의 번역가란다. 제목 번역가와 본문 번역가가 다른 셈이다.

 

나였으면 이 제목을 '시계태엽 오렌지 (Clockwork Orange)'처럼 'Clockwork Bird' 혹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따라 'The Bird Winds Up the Clockwork'라고 번역했을 것 같다. 하지만 'Wind-Up Bird'가 훨씬 간결하고 어감이 좋다. 새를 능동의 주체로 보고 피동의 대상인 태엽이라는 목적어를 생략함으로써 가상의 새에게 멋진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하루키가 언급한 창작의 고통은 글감을 찾고 쓰는 행위로서의 창작을 말하는 것이긴 하다만, 이런 양질의 번역문들을 보면 번역 작업도 창작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서두에 적힌 해당 번역에 대한 언급에서도 "그가 'wind-up bird'라는 표현을 만들었다.(coined the term 'wind-up bird)"는 표현을 써서 출처를 분명히 하는 것을 보면 이는 창작 활동의 결과물이 맞다고 본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외에도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 영제도 꽤 멋들어진다. 해변의 카프카 (Kafka on the Shore),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Colorless Tsukuru Tazaki and His Years of Pilgrimage), 양을 쫓는 모험(A Wild Sheep Chase) 등. 직역이 되지 않은 영제들인데 애초에 번역가이기도 한 작가 본인이 영제도 짓는 것일까. 다음 달에 출간된다는 신작의 제목은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고 영제는'The City and Its Uncertain Walls'이란다. 



우리 학교에는 통번역 부서가 따로 있지만 업무 편의를 위해, 서로를 위해, 내가 번역을 하는 것이 나은 경우들이 있다. 주변에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일상에 있어 통번역을 꽤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대부분 나를 위해서라기보단 누구를 도와주기 위해 통번역을 한다. 업무 이메일을 번역하는 것은 어렵진 않지만 번거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번역 업무도 창작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멋진 대체어를 찾는 창작 활동.



Alfred Birnbaum coined the term 'wind-up bird' in his tran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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