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학 Mar 17. 2023

없는 사람 / 장옥관 (제주문학관 북토크 후기)

시 읽기

없는 사람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가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없는 게 아니라 꽉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과 거실을 메우고 복도와 엘리베이터와

이웃집 문틈으로 스며든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

단지 그는 갑갑했을 뿐이다

갑갑함이 저 스스로 몸 부풀려 이웃집 현관문을 노크한 것일 게다

경계를 벗어나 공기를 장악한 그는 원래부터

바람이었다

오십이 넘도록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공간을 확장하고 저를 부풀렸다

미처 따라가지 못한 뼈는

화장실 문턱에 가지런히 누워 스멀스멀 구더기를 불러들였다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였다

견디다 못해 이웃들이 문 따고 들어가니

낡은 소파 밑에서 그가 키우던 포메라니안이

꼬리 흔들며 기어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무얼 먹었는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제가 본 것들을 끝내 다 말하지 않은 영특한 개였다


세를 준 주인이 서둘러 개를 안고 나가도 그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미 집의 일부가 된 것이다

벽지와 바닥은 물론 콘크리트 뼈대만 남기고 뜯어내도

그는

결코 그 오피스텔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상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소문을 막은 거라 속단해선 안 된다

사려 깊은 이웃들이 선택한 최선의 의례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는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의 비강에,

공중에 새겨져 불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제주문학관에서 장옥관 시인 초청 북토크가 있어서 다녀왔다. 평일 오후에 진행되어서 휴가를 내야만 했다. 시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계명대 문예창작과에서 교수로 지내고 정년 퇴임을 한 장옥관 시인은 오랜 시력과 교단 경험 덕분인지 뛰어난 달변가이기도 했다. 에피소드를 재밌게 잘 풀어내고 이를 시와 글쓰기에 잘 연결 지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지루한 틈 없이 흘러갔다. 대담을 진행한 장이지 시인도 장옥관 시인이 워낙 말을 잘해서 본인의 역할이 많이 퇴색된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10년 만에 발간된 그의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로 장옥관 시인은 김종삼 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출간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그는 포천에 있는 김종삼 시인의 시비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후배 문학인으로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고. 시상식은 다음주.


신작 시 낭송과 해설을 더불어 시인은 현대 사회에서 퇴색되어 가는 시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왜 시를 쓰는가?' '시인은 누구인가?' 오랜 시간 문단에 몸 담으며 깨달은 장옥관 시인의 시에 대한 가치관은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열반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신간 시집이 나오는데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이런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시집이 무분별하게 출간되는 것은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말이 이 깨달음을 함축한다. 문예인이라면 신작 출간 욕심을 낼만한데 그는 나무라는 따뜻하고 겸손한 핑계를 대며 오랜 시간 시를 써왔다.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를 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시는 끝없는 자기 성장의 매개체이다. 죽을 때까지 시를 쓰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셈이다. 시가 어려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끝없는 사유를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시집에 사인을 받았다. 내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시인은 나를 선뜻 시인이라고 불러주었다. 내가 등단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이라는 호칭은 역시 낯간지럽다. 시인은 시인에 대한 정의를 제도권과 문단의 권위자로서 넓게 허용하는 관대함을 갖추고 있었다. 어제 등단하고 오늘은 시를 안 쓴 사람보다 오늘 아침에 시 한 편 쓴 사람에게 시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고.




제주문학관 3층 문학살롱에서 진행된 북토크. 좋은 행사를 주최해 준 제주문학관에 감사할 다름.


시인이 나보고 시인 이랬으니까 나는 시인이다!



없는 사람


제목이 된 구절을 제공한 이 시집의 표제시 ‘없는 사람’은 분당의 한 오피스텔에서 고독사를 한 남자의 사연을 강한 모티프로 채용하여 쓰여 졌다. 건물 복도까지 악취가 흘러나오자 집주인이 경찰을 대동하여 문을 따고 들어갔다. 화장실 앞에 새하얀 시체가 누워있었다. 잠시 후 거실의 소파 밑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는데 살이 포동포동 쪄있었다. 죽은 주인을 곁에 두고 무엇을 먹었길래 강아지는 살이 쪘을까.


시체를 치우고 도배를 다시 해도 집에서 시체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집 값이 떨어질까 봐 이웃들은 이 사연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신문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체 냄새는 남아 있었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지워진 사람이 불멸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의 흔적을 지우려 한 그 건물엔 ’ 사람다운 ‘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시사는 사회의 문제로 내버려 둔 채 대상을 불멸의 경지로 끌어올린 훌륭한 작품이다. 이 시집의 표지 색은 오묘한 하얀색인데 시인은 이 색을 백골의 색에서 가져왔다고 얘기했다. 하얀빛이 결코 죽음과 멀지 않다는 것을 은유한다고.


이렇게 소재가 분명한 시에서는 기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실제 일어난 사건인 만큼 대상과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는데 상황을 담백하게 묘사함으로써 소재와 메시지를 살렸다. 





 



작가의 이전글 창작으로서의 번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