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의 우정 이야기
나는 누군가와 인연이 닿아 친구의 관계로 나아갈 때마다 고민에 빠지는 날이 있다. 친구의 생일날이다. 관계가 1년, 2년 정도 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 친구의 생일날 함께 만나 축하해주고 재밌는 시간도 보내고 싶지만 막상 생일이 다가오면 만나자는 말이 입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친구에게는 더 축하받고 싶은 오래된 지인들이 있을 것만 같다. 친구의 특별한 날에 함께할 만큼 내가 친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긴가민가하다. 그래서 다른 지인들과의 약속 사이에서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 약속 때문에 거절당하는 작은 속상함도 조금 두려워 생일날의 만남을 선뜻 제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1년, 2년 친구의 생일이면 생일날을 피해 선물 정도만 전해주고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관계가 훨씬 오래되어도 생일이 다가오면 친구는 늘 다른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놓는다. 처음에 내가 모른척했던 것은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미리 약속을 잡아놓는 친구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껴버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책한 적도 몇 번 있다. 몇몇 친구들에게는 생일날 같이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운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그렇게 눈치부터 볼 필요 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면 내가 이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기가 힘들다.
그러다 얼마 전 친구가 몇 년간의 고생 끝에 취직에 성공해 기념할 겸 여행을 가게 되었다. 친구는 늘 주변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인기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보다 더 주변의 눈치도 많이 보고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었다. 낯을 많이 가려서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는 가려고 하지도 않고, 선도 잘 긋는 편이었다. 그런 어려운 선별과정을 거쳐서인지 친구는 소수의 사람들만 곁에 두며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선별과정에서 낙방한 사람들은 계속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고 친해지고 싶어 했다. 주변에 친구도 많고 인기도 많은 사람들도 말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친구가 참 부러웠다. 낯도 가리고, 자기랑 조금만 맞지 않아도 거리부터 두는 친구 놈이 오히려 인기 있는 것이 배 아프기도 했다. 나쁜 남자의 매력 인가하는 허튼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여행을 가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니 친구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같은 독서실을 다니던 사람인데 이번에 같이 합격을 하게 되었나 보다. 축하한다며 다음에 술 한잔하자며 끊는 친구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들은 바로는 통화의 상대는 친구가 절대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을 성격의 사람인 데다 그런 사람과 절대 술 한 잔 할리 없는 친구인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새에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가 있었는지 어쩐 일인지 궁금해진 것이다.
친구의 대답은 두 사람에게 그런 계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구는 여전히 그 사람과 가깝게 지낼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에서 왜 그렇게 사람들이 이 친구를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친구는 그 사람과 당장 친하지도 않고 앞으로 가깝게 지낼 생각도 딱히 없지만 그래도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으로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면 그 사람의 기분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각별함의 정도와 앞으로 얼마나 관계가 지속될지를 떠나 지금 당장 가볍게 알고 지내는 사이라도 전화 한 통으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 줄 수 있다면 전화 한 통쯤 못해 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한 내가 참 한심해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도 ‘다음에 밥 한번 먹자’라는 말도 해본 적이 없다. 새로 만나게 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으레 예의상의 인사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 번도 내가 해본 적은 없었다. 그 사람이 내켜하지 않을까 봐, 혹여나 거절당할까 봐 하는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었다. 생일날 만나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보다 낯도 가리고 남도 더 의식하는 친구는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행동했다. 내가 남들이 싫어할까 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친구는 남들이 무얼 좋아할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니 사람들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에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배려만 있다면 누구의 기분도 좋게 만들 수 있다. 배려는 관심과 관찰력에서 나온다. 소심이들은 상대에 대한 관심은 충분하지만 늘 마음의 눈이 자신의 행동에 가있다.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폐가 될까, 싫어할만한 행동일까 하는 걱정에서다. 그래서 상대방을 살피지 못한다. 상대와 관계의 걸음을 맞추지 못해 늘 엇나가기 일쑤다. 그러니 상대의 가려운 부분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장인이 빚은 효자손이든 바닥에 나뒹굴던 파리채든 가려운 등만 긁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상관없듯이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에는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를 위하는 배려만 있다면 소심이도 누구에게든 좋은 기분을 선물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