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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Feb 03. 2020

사랑을 시작할 즈음에...

소심이의 사랑 이야기

 우리가 살면서 겪고, 느끼는 것들 중 사랑만큼 어렵고, 사랑만큼 아프고, 사랑만큼 달콤한 것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상대에게 거절당한 짝사랑을 할 때면 세상을 원망하기도, 자신을 원망하기도,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는 슬픈 저주에 빠져든다. 지나고 나면 그만큼 찌질하고 볼품없는 내가 정말 나였나 싶은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을 시작할 때에 우리는 가장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힌다. 이제 막 호감을 가지고 상대에게 다가가고자 할 때 한 발자국 앞으로 가는 것이 절벽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아찔하다. 뒤로 물러나기에는 디딜 땅이 남았는지 보이지 않아 두렵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동시에 숨기고 싶다. 상대의 마음은 궁금한데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고 상대가 시원찮은 반응이라도 보이면 안달이 나 밤잠을 설친다. 소심한 마음에 연락 한번 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만남의 기회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상대의 마음을 모른 채 사랑을 시작할 때면 드라마 같은 우연히 일어나길 바라게 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둘이서 엘리베이터에 갇힌다면, 둘만 같은 강의를 듣게 되고, 옆집으로 상대가 이사를 오고, 회사의 다음 프로젝트 협업 팀으로 상대방의 회사가 선정되는 식의 드라마 같은 우연을 기대하게 된다. 잘못된 첫 만남으로 서로를 싫어하던 주인공들도 계속 마주치다 보면 결국 정이 들던데 나는 호감도 가지고 있으니 몇 번의 마주침만 있다면 사랑이 술술 풀릴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드라마 같은 우연이, 단 한 번의 우연이 기어코 일어나지 않는다. 믿지 않던 신에게 기도도 해보고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심지어 상대가 자주 가던 카페나 식당에 괜스레 들려도 보지만 어쩐 일인지 단 한 번의 우연도 일어나지 않는다. 야속하다. 세상이 야속하고, 일부러 나의 기도만을 외면하고 시련을 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결국 세상을, 나를, 나아가 상대까지도 원망하게 된다. 


 특히나 우리 소심이들은 더욱 이런 드라마 같은 우연이 일어날 거라는 운명론에 기대기 쉽다. 나 또한 매번 일어나지 않는 다는 걸 알면서도 괜한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사실 용기가 부족한 소심이들에게 우연만큼 달콤한 유혹은 없다. 다가가려다 상대에게 부담을 줄까 염려할 필요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냥 우연일 뿐이니까. 거기서 무언가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니 나를 욕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더욱 우연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연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이성과 걷고 있는 짝사랑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우연 정도는 가끔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연이 아니라 용기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많은 우연을 겪는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막바지에는 결심을 내리고, 용기를 내고, 수모도 감수한다. 근데 좋은 우연과 맞닥뜨릴 기회도 없는 우리가 용기조차 내지 않으니 늘 연애의 시작이 고된 것이다. 


 90년대 노래 중 지금도 노래방에서 자주 들리는 노래가 있다. 자자가 부른 ‘버스 안에서’라는 노래인데 가사 중에 ‘네 눈빛만 보고 네게 먼저 말 걸어 줄 그런 여자는 없어.’라는 부분이 있다. 다가가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데 마음이 전해지고 관계가 발전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듯 행운만을 기대하고, 용기 내지 않고, 기다려보자는 마음을 갖는 건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기적 같은 우연이 자신에게도 기필코 일어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그런 자신감이 있다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못 가질 것도 없지 않은가. 어떠한 경우라도 전자의 자신감이 더 근거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니 자신감이 없어도 좋다. 그냥 용기 한번 내보는 것이다. 한 발자국 다가가 보고 내 감정을 표현 한 번 해보는 것일 뿐이다. 용기 내서 내 마음을 보여주고 상대도 나와 같은 감정인지 확인해 보는 잠깐의 순간이다. 같은 감정이라면 그 작은 용기로 사랑을 가꾸어 나갈 수 있고, 혹여나 아니라도 속앓이의 시간을 줄인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물론 내가 상대에게 호감이 없더라도 말이다. 서로의 감정이 다르다면 상대에게 그런 자신감과 좋은 기분을 선물했다고 생각하자. 드라마 같은 우연도 일어나지 않는데 ‘단 한 사람’ ‘모든 걸 다 걸어도 오직 한 사람’ 따위의 마음은 드라마에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다음의 인연이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용기를 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 

 자 이제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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