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가 해야 할 일, 사명감과 사업성의 기로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래전에 네트워크 마케팅을 부업으로 삼아볼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이 네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기? 그 대답을 찾기보다는 이 질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그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데 바로 이렇게 답을 내게 건넸다.
“당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보다 상대방은 당신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질문의 의도가 제대로 와닿지 않았지만 그의 이 말은 네게 큰 충격으로 전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착각에서 깨어나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얘기였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착각에서 깨어나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그때 이 질문과 대답을 해줬던 이는 서른을 갓 넘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청년이었다. 그때까지 그렇게 정면으로 내게 ‘너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그 얘기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적으로 살아왔기에 ‘너는 잘한다’라고 하는 얘기는 들었어도 ‘똑바로 해라’하는 식의 얘기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다 나를 잘 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가 마흔이 넘어서 지금의 상호로 사무실을 막 열었을 무렵이니까 이것저것 불안해하던 시기였다. 원래 성품이 해야 할 일을 되도록이면 반듯하게 하고 머리를 숙일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너가 되어 일을 만들어야 하고 돈을 받기 위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게 느껴졌다.
그 당시 처음 시작하는 내 일에 대한 두려움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함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고 나도 주변에서 권하면 심하게 그를 나무랐던 ‘그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부여가 되었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그 일은 이전에 내가 싫어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기에 그 사업을 권하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정신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두려움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함을 가지게 한다
‘그래.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다 벗어버리면 그만인 옷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서 남들이 싫어하는 그 일에 대한 얘기를 근 2년 동안 스스럼없이 남들에게 전하면서 밤을 낮처럼 새벽까지, 일요일도 쉬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렇게 나를 낮추는 연습을 했던 덕분일까? 불안해하며 시작했던 오너 자리가 익숙해지고 부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이 돌아가게 되면서 그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어차피 그 일은 건축을 제대로 하려고 선택했던 것이기에 사무실이 궤도에 오르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렵게 되었다.
‘나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무한경쟁 시대에 사무실을 꾸려가면서 새삼 나와 내 일에 대한 정의를 자주 생각해 본다. 건축사로서 자존심을 지킨다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일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돈을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는 돈이라는 명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내게 내리는 질문에서 스스로 머리를 끄덕일 수 있는 시원한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돈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돈에다 맞추어 원가를 줄이는 작업을 할 때 다시 건축주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답은 내릴 수 있다. 일에다 중심을 잡고 최선을 다할 때 다시 새로운 일이 기약될 수 있고 돈은 그 뒤에 해결이 될 것이다. 돈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자존심은 아직 미지수일지라도 일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가야만 일의 가치만큼 돈도 평가가 되는 그날이 올 것이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에 중심을 잡고 최선을 다할 때 다시 새로운 일이 기약될 수 있고
돈은 그 뒤에 해결이 될 것이다
“건축사님의 작품을 제가 만들어 본다고 애를 썼는데 기대치에 얼마나 도달했습니까?”
오래전에 준공을 한 어린이집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현장소장이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그분은 도면에 나와 있는 대로 공사만 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일에 임했기에 좋은 평가를 기대하면서 물어왔을 것이다. 그 질문은 내가 가져야 할 건축사의 본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좋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마음은 어떤 건축주라도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주의 그 마음을 건축사가 구체화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능력 있는 시공자라고 해도 좋은 집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을 기다리는 건축주와 시공자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자존감이 걸린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집을 기다리는 건축주와 제대로 일 하는 시공자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자존감이 걸린 설계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설계비 앞에서는 마음이 상하는 것을 참아내야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마음을 잊어버릴까 봐 오늘도 심지를 다져나간다. 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이게 되지만 그 일의 결과에서 자존감이 구겨져버린다면 내가 제대로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일을 시작할 때는 설계비가 많이 책정되었다고 아까워하던 건축주가 있었다. 집이 준공되면서 결과에 대해 고마워하며 감사패를 만들어주고 직원들과의 저녁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좋은 평가를 해줄 때 일에 대한 자존감을 지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일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는 것은 그때만 참으면 되지만 결과가 부실해서 머리를 숙이게 되면 사람을 잃게 된다.
아직은 건축사라는 직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면서 일을 하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다. 그렇지만 좋은 집이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희망이 보인다. 많은 건축사들이 머리는 숙이지만 자존감은 굽히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좋은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에게 설계비도 후하게 주어질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원가를 줄이는 작업으로 돈에 욕심을 내는 건축사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으려고 애쓰는 건축사가 많아질 때 설계비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건축사는 자신의 작품으로만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결과로만 자존감도 지켜낼 수 있고 훗날 머리를 숙이는 모습마저 아름다울 것이다
건축사로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써야만 우리 사회도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애써 마음을 달래 본다. 스스로 자신의 일에 대해 혹평을 하며 자존감을 버린다면 누가 나를 좋게 봐줄 수 있을까? 건축사는 자신의 작품으로만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때 자존감도 지켜낼 수 있고 훗날 머리를 숙이는 모습마저 아름다울 것이다.
이제 그때 그분을 만나면 이런 대답을 해주고 싶다.
“내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지만 지어진 집으로 그 결과를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