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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an 03. 2022

니가 처마를 알아?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 2022. 1,2월 호 게재

“건축사님, 주택층의 상부에 빠져나온 이 부분을 무엇이라고 표기해야 합니까?”


 지금 설계 중인 건물의 최상층 주택에서 외벽 밖으로 바닥을 50cm 뽑아낸 부분의 명칭을 담당 직원인 김 대리가 물어온 것이다. 주택은 2개 층으로 되어 있고 최상층의 바닥과 층과 층 사이도 외벽에서 차양 역할을 하도록 50cm를 돌출시켰다. 경사지붕을 연장해서 외벽에서 돌출시킨 부분을 처마라고 하는데 그 역할을 중간층에서도 하게끔 설계 작업 중이었다.


 “그것도 처마지 뭐라고 하나?”

 “처마라고요? 처마가 맞습니까?”


 김 대리는 내 얘기가 수긍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선뜻 동의해 주지 않는 듯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아, 내가 처마 신봉자인데 그렇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뭘 망설이는가?”


 김 대리의 떨떠름한 반응에 내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압박의 감정이 실려 나왔다. 그래도 김 대리는 그렇게 하겠다는 동의를 하지 않는 듯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미심쩍어하니 사전에 나온 정의를 찾아 확인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면서 김 대리는 또 질문을 이어갔다.


 “캐노피는 어떤 걸 말하는지요?”

 “캐노피? 출입구 앞에 비를 피하는 용도로 기둥 없이 빠져나온 캔틸레버 덮개지. 그것도 몰랐어?”


 캐노피에 대해 묻는 것에는 타박 비슷하게 감정까지 묻어 있었다. 대학교의 건축학과는 5년제이므로 타 전공보다 일 년 더 수업을 받는 데 이런 것도 몰랐느냐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그렇게 얘기하는데도 승복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처마로 검색한 결과는 의외였다. 


 ‘처마는 지붕이 도리 너머로 돌출된 부분이다. 비나 눈을 막는 기능과, 햇빛이 들어오는 양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다. 처마 아래'라는 뜻의 첨하(檐下)가 그 어원이다’


 어, 처마의 사전적인 정의는 내가 생각하는 넓은 영역이 아니라 지붕과 이어져서 돌출된 부위에 한정해서 쓰이는 용어였다. 처마 없는 집은 생각할 수도 없다며 단독주택을 수십 채 설계하면서 처마를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그런 처마를 내가 용어의 정의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그럼 캐노피는? 다시 사전을 검색해서 캐노피의 정의를 살폈다.


 ‘캐노피는 천개(天蓋), 차양, 현관, 문턱, 창문, 니치(龕), 침대, 제단, 설교단, 능묘 등의 위쪽을 가리는 지붕처럼 돌출된 것을 말한다’


 아, 이럴 수가 캐노피를 현관 앞에 빠져나온 지붕뿐 아니라 중요한 곳을 덮는 덮개를 광의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단순히 건축적인 용어로만 생각했던 캐노피가 이렇게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비행기의 조종석 위를 덮는 덮개도 캐노피로 부르고 있었다.


 이렇게 처마와 캐노피에 대해 사전적인 정의를 확인하고 나니 김 대리에게 쏟아부은 내 말을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일단 사과하는 표현으로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시하듯 얘기한 점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방금 전까지 내가 했던 말은 김 대리에게 갑질을 한 셈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가 알게 된 엄연한 사실을 놓고 김 대리에게 즉시 사과를 해야 했던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오늘만 이렇게 했던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가 아닌 회한이 몰려왔다. 내가 이런 에고이스트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했던 말에 상처를 입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닐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대학생이었던 지난날, 4학년 때 졸업 작품을 하면서 교수님께 무시당했던 일이 있었다. 서울의 유력한 건축전문지에서 주관했던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교수님께 작업 과정 중간에 몇 번을 검토받기 위해 연구실을 찾아갔었다. 교수님은 우리가 그 공모전에 출품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던지 제대로 봐주지 않으셨다.


 작업을 했던 그 해 여름은 몇 년 만의 더위라고 할 정도였는데 선풍기 한 대로 진땀을 흘리며 작업을 마쳤다. 제출 날짜를 앞두고 서울로 가기 전에 교수님을 찾아뵈었는데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야 했다. 교수님은 작업 결과를 아예 펼쳐보지도 않고 꼭 제출을 해야겠느냐고 반문을 하셨다. 


 졸업을 앞두고 4년 공부를 결산하는 마음을 쏟아부어 여름방학 동안 작업한 제자의 노력을 살피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시다니 기가 막혔다. 작업하는 중간에 몇 번이나 크리틱을 받으려고 찾았을 때도 정말 일언반구도 없었던 분이었다. 옆에 계셨던 노교수님께서 후배인 그 교수님께 화를 내며 꾸짖으셨다. 


 “A교수, 그게 학생에게 할 말입니까? 정관아 방학 동안 작업하느라 수고했다. 출품 잘하거라”


 그날 이후로 나는 그 교수님을 외면하고 살았다. 

 이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고 그 교수님과 내가 오버랩되면서 자괴감이 밀려왔다. 사십 년이나 지난 그날의 일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일을 마치 원한을 진 것처럼 아직도 기억의 한쪽에 묻어두고 있었으면서.


 제대로 아는 이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몰라서 물어오는 사람에게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모르니까 묻는 것인데 왜 모르느냐고 타박을 한다면 알고 있다는 것으로 갑질을 하는 것이 된다. 모르던 사람도 알게 되면 위아래가 없어지는데 나는 아는데 너는 왜 모르냐고 몰아세운다면 우격다짐하는 꼴이 되고 만다. 


 지식이 적고 많은 것으로 위아래를 나눌 수는 없다. 내가 처마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김 대리의 질문에 답하는 내 태도는 윗사람의 모습에 걸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윗사람이라는 지위를 내세우며 갑질을 해댄 꼬락서니라니. 


 니가 처마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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