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로 살 ‘우리집‘의 얼개 짜기 -’우리집‘과’손님‘
아파트를 기성품 집이라고 한다면 단독주택은 맞춤집이라 할 수 있다. 기성품 집에서는 우리 식구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내는데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식구들만의 우리집’에서 살기 위해 맞춤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 식구의 삶에 딱 맞는 맞춤집으로 ‘우리집‘을 지을 수 있을까? ‘어떤 집이라는 모양새’는 전문가가 해결해 주겠지만 ‘어떻게 살 집이냐는 쓰임새‘는 건축주가 조목조목 잘 정리해내야 한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우리집‘의 얼개를 잘 짜서 건축사에게 전달해야만 온전한 맞춤집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한옥의 설계자는 집을 짓는 대목이 아니라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이 집을 어떻게 쓸 것인가 구상이 끝나면 대목은 그 구상에 맞추어 한옥의 조영 법식에 의해 지어내었다. 한옥의 외관은 비슷해 보이는 건 집을 짓는 재료와 조영 법식에 따르기 때문이었다. 건축주가 의도하는 가풍家風, 대지의 여건에 따르다 보면 집마다 다른 공간 구성이 되지만 대목은 능수능란하게 백년가가 아니라 천년가로 지어냈다.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받게 되면 먼저 건축주에게 ‘이 집을 지어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없다. 집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모양새에 관한 것일 뿐 쓰임새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도 아파트 생활에 길들여져 살다 보니 ’우리 식구들만의 우리집‘이라는 생각을 해내기 어렵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단독주택을 짓는 분명한 이유는 ‘전문가의 어떤 모양새로 지어내느냐?’가 되기보다 ‘우리식구가 어떻게 살 쓰임새로 지어야 할까?’로 찾아야 하는 건 분명하다. 집집마다 달라야 할 ‘우리집을 지어 살고 싶은 이유’를 필자의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 보려고 한다. 지금부터 ‘모양새’는 뒤로 돌려두고 ‘쓰임새’를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자.
자식들이 집을 떠나는 이유, ‘우리집’이 아니라서?
누가 뭐라고 해도 아파트는 부부의 집이지 아이들까지 배려된 ‘우리집’이라고 보기 어렵겠다. 아무리 큰 면적의 세대 평면이라고 하더라도 부부 위주의 얼개에다 아이들 방을 끼워 넣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파트를 자신이 포함된 ‘우리집’이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정황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타지로 유학을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요즘은 집이 있는 지역의 대학에 입학을 하더라도 대학가에 있는 원룸을 구해 집을 나가는 건 어떤 이유일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수고를 무릅쓰고 집을 나가는 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처지에서 아파트는 ‘우리집’이 아니라 부모의 집이어서 생활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일 테다. 아이들이 편히 쓸 수 있는 공간은 세 평 남짓의 방 하나일 뿐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생활은 고등학생 때와 다른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의 작은방 하나를 쓰는 더부살이처럼 사는데서 독립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다. 결국 아파트는 부부 이외의 식구를 수용하는데도 한계가 있는 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파트가 식구 모두의 집이 아닌 ‘부부의 집’이라고 걸 부정할 수 있을까? ‘우리집’이라고 하면 아이들까지 함께 만족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단독주택을 지어서 산다면 부모를 떠나 사는 자식들도 오고 싶어 하는 집으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집
언젠가부터 우리가 사는 집에 손님이 들지 않는다. 요즘은 남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건 고사하고 방문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타 지역을 가게 되면 하룻밤 정도는 의례히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서 묵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 자식 사이에도 왕래하려면 사전에 알려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면 가세가 기운 집이라 여겨 손님 대접에 정성을 다했던 것이 우리네 풍습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식구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와는 별도로 사랑채를 두어 연중무휴로 손님을 맞이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의 손님은 안방을 비워서 잠자리로 내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집에 드는 손님을 융숭하게 모셨던 우리의 미풍 양식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말았다. 심지어 아파트는 며느리와 사위도, 부모도 하룻밤 같이 지내기도 쉽지 않다. 그런 세태는 손주까지도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갯소리로 알 수 있다.
아파트에서 사위 며느리가 묵어가기 어렵다 보니 손주도 얼굴을 익힐 시간이 없으니 조손 관계祖孫關係마저 서먹하게 되고 만다. 삼대三代가 떨어져 살게 되면서 가장 큰 손님은 자식인데 그마저 시간을 자주 가지지 못하니 이를 어쩌나? 자식이 결혼을 하면 며느리와 사위가 새 식구가 되는데 이제는 일 년에 몇 번이나 보는지 늘 서먹서먹한 사이로 지내니 기가 막힐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집’이라고 짓는 단독주택은 손주를 위해서 손님이 찾아와도 불편하지 않은 집이 되어야 한다. 사위와 며느리가 편안하게 묵어갈 수 있는 집이라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이니 자식들이 제 집처럼 자주 와서 편안하게 묵어가게 되니 손주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 우리 식구가 된다.
단독주택 얼개 짜기의 두 가지 키워드
두 가지 키워드 중 하나는 '내 집'이 아닌 ‘우리집’이다.
아파트에 들어 있지 않은 아이들의 영역, 이 영역은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이 쓰게 된다. 부부만이 아닌 우리 식구의 행복한 삶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어야만 ‘우리집’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우리집’이 되어야 우리 식구들이 행복할 수 있다. ‘우리집’이 되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 그건 당연히 행복한 삶이라는 인문학적 의지가 접목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손님도 행복한 집’이다
삼대三代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우리 식구 모두를 위한 ‘우리집’을 지어야 단독주택을 짓는 목적에 부합된다고 얘기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을 지키고 아버지 어머니와 손주들이 기꺼이 찾아올 수 있어야만 ‘우리집’이다. 찾아오는 손님도 제 집처럼 편한 ‘우리집’, 자식도 출가하면 손님이 되기 마련이니 누구라도 며칠씩 머무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 자주 오게 되는 집이 ‘우리집’이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합쳐보면 손님까지도 ‘우리집’으로 여길 수 있는 집이라면 생기가 넘치는 일상이 된다. 손님은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늘 신선한 우물과 같은 집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손님이 아예 오지 않으면 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집과 같은 탁한 분위기가 되고 만다. 손님이 자주 오는 집은 자주 청소를 해서 청결하기도 하지만 활기가 넘치게 되어 맑고 밝은 에너지가 집안에 쌓이게 된다.
'내 집'이 아니라 '우리집'
'우리 식구만 사는 집'이 아니라 '손님도 즐겨 찾아오는 집'
부부만 사는 ‘내 집’이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함께 지낼 수 있는 ‘우리 집’, ‘우리 식구만 사는 집’이 아니라 ‘손님도 즐겨 찾아오는 집’이 되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우리집의 얼개 짜기’의 근간이라 하겠다. 이제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녹아든 세부적인 ‘우리집의 얼개를 짜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