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2022년 4월 7일 오전 7시 40분에 어머님을 여의고 내뱉는 넋두리

by 김정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월의 봄날, 지난 목요일에 제 어머님이 아흔셋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내용처럼 이 세상을 훌훌 털고 가시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님도 늘 입버릇처럼 자는 잠결에 숨을 거두기를 바라셨지만 오랜 병석의 끝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여섯 자식을 두었지만 둘을 먼저 보냈고 빈소를 지켰던 자식은 셋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이 살았던 시대에는 세상이 여자에게 요구했던 三從之道삼종지도라는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요. 일찍 지아비를 여읜 어머님을 자식들이 모신다고 애를 쓰기는 했으나 말년 십 년을 병상에 계셨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당신의 성품이 너무 깔끔하셨고 可否가부가 분명하신 분이어서 자식을 거두는 품이 넓지 못했습니다. 슬하에 손주를 열이나 두셨지만 할머니 품을 찾아드는 아이들이 없었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제 손녀는 어머님께 증손주가 되는데 아이도, 증조할머니도 相面상면하지 못하였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엄격했었던 지아비와 노년을 함께 하지도 못했으니 열 효자보다 낫다는 부부의 정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잘 모시려고 애썼지만 당신의 정갈한 성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로운 노년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나마 막내를 딸로 두어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을 것이라 마음의 위안을 삼아봅니다.


제 위로 의붓형 두 분이 계셨지만 며느리 노릇은 제 아내 혼자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며느리가 없다고 했지만 부모가 받아들여야만 효도라서 아내는 답이 없는 자식의 도리를 묵묵히 다했습니다. 오랜 병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며느리 노릇 하느라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부부가 되고, 부모 자식이 되는 것이 다 전생의 인연이라고 합니다. 금슬이 좋은 부부, 효자를 두는 부모가 요즘은 흔치 않아 보입니다. 그건 아마도 서로 바라는 게 많고 배려하고 감싸 안아주는 마음이 모자라서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바라는 게 적을수록 만족함이 크다고 하는 小欲知足소욕지족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삽니다. 자식들의 모자랐던 효성도 어머님이 바라는 마음을 조금만 낮춰주셨으면 형제간의 우애도 나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을 감싸기만 해도 형제들의 다툼은 없는데 그러지 못하는 집안은 분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를 며느리가 모시는 집과 딸이 챙기는 집은 형제의 우애가 크게 다릅니다. 부모를 큰아들이 모시는 집과 아래 자식이 거두는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아들 집에서 부모가 며느리와 잘 지내는 집은 원만한 분위기에 형제의 우애도 좋습니다. 어머니를 제가 계속 모셨으면 그나마 우리 집안도 편안하셨을 텐데 동생네로 가시면서 어머니의 노년이 편치 못하셨고 형제들도 소원하게 지냈었지요.


지금은 부모와 자식도 종적 질서가 무너져서 부모의 가정과 자식의 가정으로 따로 위치가 정해지지요. 아들이 부모를 모신다는 건 아예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며 부부가 화목하고 자식들도 잘 살면 됩니다. 지금은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내리사랑만 있을 뿐 효도는 고전에서 읽을 수 있는 덕목이 되고 말았습니다.


효도를 바라는 부모, 그 부모를 잘 모시려고 애쓰는 자식으로 사는 마지막 세대가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에게 한 없이 베풀고 오로지 자식이 잘 되면 그만인 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살면 자식의 손길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 자식은 또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자신의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자식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정성은 할 수 있는 그만큼인데 부모가 바라는 게 많으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맏이가 부모를 모시면 그 아래 자식들은 힘을 모아 뒷받침을 해주어야 원만한 집안이 됩니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은 한결같은 정성을 다하기 어려운데 다른 자식들이 입으로 효도를 내세우면 되돌릴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 집이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고 어머님의 말년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보내는 마음이 편한 자식이 있을 리 없을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십여 년을 병원에서 보내고 삼 년은 침상에서 지내시다 임종하셨으니 여한을 얼마나 안고 가셨을까요? 그나마 어머님의 오랜 병원 생활 중에 형제들이 우애를 회복하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코로나 역병으로 오랫동안 제대로 뵙지도 못하였으니 어쩔 수 없는 불효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환갑을 지난 노년에 접어드니 제 여생도 어머님의 말년에 비추어 보게 됩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나이를 먹으면서 얻어진 직업의 연륜과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쓴 알량한 평판이 전부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은 가엾은 중생인지라 노욕이라는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지 경계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임종 때도 그랬었고 지금도 밤마다 금강경을 독송하며 이승에서 못다 한 바람을 내려놓고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빌고 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시구를 되뇌어 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렇게 고달프고 애달픈 삶을 사셨기에 쉬 숨을 거두지 못하셨지만 이제는 지난 삶을 툭툭 내려놓고 다음 세상에는 좋은 몸을 받으시길 빌고 또 빕니다.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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