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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Apr 22. 2022

나와 보이차

지치고 고단한 삶에 심신의 평정을 가져다주는 차

2006년, 그해는 제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정부는 부동산 금융을 묶는 정책을 쓰는 바람에 건축 관련 일은 올스톱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짓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제 일은 아예 끊어져 버렸습니다.


일이 없는 사무실을 지키는 건 참 힘들었습니다. 직원을 줄이고 긴축 경영을 했지만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지요. 기약 없는 일을 기다리며 보내는 하루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보이차가 제 힘든 일상으로 들어왔습니다. 일 없이 보내는 깨어 있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도 녹차를 마신 지 십 년이 되었지만 오후에 한번 마시는 차였지요.


이때부터 보이차를 하루에 3리터 이상 마시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온라인 동호회로 카페 활동을 하면서 그 해 결성된 부산지역 차모임인 다연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연회에서 만난 다우로 만나게 된 고등학교 선배님을 멘토로 모시게 되었지요.


처음 접하게 된 보이차를 하루 종일 마시니 일없이 보내는 시간도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는지 기억하기도 싫지만 보이차는 제 곁에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차모임에서 처음 접하는 다양한 차를 마시면서 꾸준히 알아지는 만큼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태껏 글로 써서 인터넷에 올린 글이 1500 편이 넘으니 논문을 썼으면 박사도 될 수 있었겠죠? ㅎㅎ 알아지는 만큼 글을 쓰면 읽는 사람에게 나눌 내용이 없으니 차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그만큼 알게 되다가 시간이 지나니 아는 만큼 차에 대한 편견이 줄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졌던 보이차에 대해 가장 큰 오해는 생차는 묵혀서 마시는 차로 철석같이 믿고 숙차만 십여 년을 마셨습니다.  하긴 제가 보이차를 접하게 되었던 2006년에는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었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숙차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잔 하고 하루 종일 생차를 마시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제가 숙차의 별명을 茶中布薩이라 지었으니 아직도 숙차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입맛이 생차로 돌아서게 된 건 보이차를 알아가면서 편견을 버리게 된 결과라고 해야겠습니다. 보이차 산지마다 다른 향미를 알게 되면서 보이차가 가지는 너르고 깊은 세계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차를 마시면서 보이차에 입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숙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을 정도로 설왕설래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숙차의 모차로 쓰는 차엽부터 저급이었고 발효환경도 비위생적이었는 데다 숙미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고수차가 다크호스로 보이차 시장을 주도하게 됩니다. 고수차는 보이차의 가치를 끌어올리게 되고 덩달아 숙차도 고급 모차를 써서 지난날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생차는 고수차로, 숙차는 고급 모료를 써서로 출시되며 보이차는 싼 차라는 인식을 벗고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습니다.



보이차와 16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제 삶도 '차 마시는 건축사'로 이미지 메이킹이 되었습니다. 업무에서도 보이차를 매개체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마도 제 노후는 차를 알리고, 차를 접하려고 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어려운 때가 있고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지라도 잘 이겨내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제가 겪었던 견뎌내기 어려운 시간과 함께 했었던 보이차는 이제 제 삶을 기름지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를 돌아보는 자리에서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동반자는 차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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