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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Sep 06. 2021

우리집에 없는 '남편의 방'

백년가로 살 '우리집' 얼개 짜기- 제1 영역 부부 공간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아내의 남편인 한 남자, 그가 쓸 ‘남자의 공간’은 ‘우리집’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거실의 소파’라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혹시 방 하나를 서재로 쓰고 있는 남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선시대 옛집에는 사랑채를 남편의 영역으로 아내의 영역인 안채와 구분해 생활했었다.     


 아내의 어원이 집의 안쪽이라고 하는데 안채의 주인이라고 보면 되겠다. 옛날에는 남편은 주로 사랑채에서 기거하고 안채에는 아내의 허락을 구해 잠을 잘 때만 머물렀다. 아파트는 옛집으로 보면 안채의 영역과 다름없어 보이니 남편은 자신의 공간이 없이 집에 얹혀사는 신세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한옥의 사랑채에 빗대어 아파트에 남편의 공간이 있니 없니 얘기하는 게 어떨지는 모르겠다. 남편의 입장에서 은퇴 전에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의 공간으로 아이들이 쓰던 방 하나를 차지할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면 안방에서 쫓겨난 처지로 머물게 된다.     


 아파트는 분양받는 주체가 아내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쪽으로 맞춰서 기획되어 설계된다. 아파트의 진화는 아내의 영역인 안방과 주방에서 많이 이루어져서 남편의 공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부의 성평등性平等이 이루어진 집일수록 남편은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다. 이 시대의 남편들이여, 어느 곳에다 그대의 몸을 기대고 사는가?     


 단독주택의 얼개를 짜면서 배려해야 할 첫 번째 공간은 남편의 영역이다. 아내가 주체였던 아파트 평면의 틀을 깨고 남편을 위한 공간이 들어가면서 부부 두 사람에게 평등한 집이 된다. 그러면 남편의 공간이 포함된 부부의 영역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단독주택의 제1 영역을 Master Zone이라고 부르자. Master Zone은 부부가 잠자는 침실과 파우더 공간이 갖추어진 욕실, 서재로 구성된다. 집 전체의 구성에서 공간을 음양陰陽으로 나누면 제1 영역-Master Zone은 음陰이 바탕이 되는 사적 공간-Private Space이다. 이 영역에 침실, 욕실과 함께 서재라는 ‘남편의 방’을 를 꼭 만들어 남자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옛 집에서 사랑채는 그 집의 가세를 엿볼 수 있는 장소였다. 관가정이라는 당호도 들판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랑채의 이름이랄 수 있으니 남편의 공간이 곧 그 집의 위세라 할 수 있었다

   

 1영역-Master Zone의 위치     


 보통 집의 얼개를 짜면서 일층에는 거실과 주방, 객실로 공용공간을 두고 이층에 안방을 포함한 침실로 사적 공간을 구성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공간의 분위기로 봐서 동적動的 공간을 일층으로 하고 정적靜的 공간을 이층에 둔다는 개념을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활하는 중에 일시적이거나 나이가 들어 다리가 불편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이층에 부부 침실이 있으면 불편한 다리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을 것이다.     


 주택을 지어서 사는 연령대는 보통 50대를 넘기는 나이가 대부분이다. 집을 지을 당시에는 걷는 데 불편함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계단은 장애물이 되고 만다. 살다 보면 다리를 삐는 등 일상에서 부상을 입어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층에 일상에서 쓰는 공간을 두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심지의 작은 대지에 짓는 협소 주택은 엘리베이터를 두지 않고 계단만으로 수직 동선을 해결하고 있다. 이 경우에 계단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려해야 하며 다리를 다치게 되면 회복될 때까지 집에서 지낼 수가 없다. 단독주택은 일층에서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도록 해야만 오랫동안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제1 영역이 무조건 일층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한 집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다리가 불편해지면서 집을 다시 지어서 옮겨 살거나 아파트로 되돌아가야 한다면 이를 어쩔까?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 안채와 바깥채 개념으로 채 나눔 해서 지었다. 안채인 침실동의 일층이 부부 영역이며 침실과 서재가 있다.

 음양陰陽으로 보는 제1영역     


 동서남북의 방위로 보면 북쪽은 음이며 동東은 음에서 양이 일어나는 영역이며, 남南은 양이며 서西는 양에서 음으로 기우는 방위이다. 그래서 실의 기능으로 보아 정적 성격의 공간은 북과 동에, 동적인 공간은 남과 서에 두면 방위와의 관계가 어울린다고 보았다.     


 Master Zone은 부부의 사적私的 생활을 영위하게 되므로 공간의 성격은 음陰이라 하겠다. 이 영역에서는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욕실을 쓰는 등 움직임은 조용해서 정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밤이 이슥해지면 아침이 오듯이 동쪽은 음에서 양의 기운이 돋아난다. 조용해야 좋은 수면, 휴식, 독서나 사색 등의 홀로 있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생활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하니 북쪽이나 동쪽에 배치하는 게 좋다.     


 음陰의 자리인 북쪽에 침실이 있으면 좋겠고 양이 일어나는 동쪽에는 정신이 깨어나는 서재가 알맞겠다. 제1 영역이 전체적으로 조용하지만 서재는 양陽의 기운이 함께 해야 깨어 있게 될 것이다. 침실은 언제든지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여건이 유지되어야 하니 빛의 변화가 없는 북쪽이 좋을 것이다.     


 1영역-Master Zone의 각 공간     


 -부부 침실     


  부부가 쓰는 침실은 오로지 잠만 자는 기능을 가진다. 안방은 침실의 기능과 함께 거실과 식당의 역할까지 다목적으로 썼을 때 쓰던 용어이다. 거실이 일상생활의 주공간이 되고 있는데도 아파트는 아직 남향에 안방이라며 주침실을 고집하고 있는 건 생각해 볼 일이다.   

  

 부부 침실은 숙면에 들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하며 방위를 고려해서 시간을 불문하고 편히 쉴 수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수면 습관이 달라지므로 트윈베드를 쓰는 부부가 늘어난다는 점도 고려해서 방의 크기도 여유를 두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부는 남녀가 아닌 친구가 한 방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안방이 아닌 부부 침실은 잠을 자는 공간으로 최적화되도록 만든다. 공간의 위계를 따져 최상위 자리인 남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우리집'에는 공간의 위계를 따지기보다 어느 방이든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도록 한다.

   

 -부부욕실     


 욕실은 아파트에서 쓰던 고정관념을 벗어나 쓰임새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파트 욕실에 익숙해져서 대변기, 세면대, 샤워기가 일렬로 놓고 쓰면 되는 것일까? 생리적인 처리를 위해 볼 일만 보고 나오는 공간으로 한정하지 말고 어떤 쓰임새를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욕실을 영어로는 Rest Room이라 쓰니 말 그대로 휴식하는 방이라는 의도에 맞는 구체적인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욕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몸과 맘을 푸는 시간을 가지는 공간으로 쓰면 좋겠다. 욕조가 놓이는 자리를 샤워하는 공간과 별도로 밖을 볼 수 있으면 편안히 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욕실 영역의 면적을 여유 있게 두어서 화장을 하고 양치질을 하는 자리는 건식 공간으로 만든다. 변기와 욕조를 놓는 공간도 구분해서 목욕이나 배변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어야 하겠다. 목욕을 통해 몸과 맘을 이완시키고 배변 또한 몸 안의 노폐물을 느긋하게 내보내면 최고의 기분이 되리라.  

   

 -서재이거나 차실茶室이거나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서재를 둔다는 건 남편들의 큰 바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권력을 잃은 외로움은 이 시대의 남자들이 가지는 풀기 어려운 화두라 할 것이다. ‘우리집’을 지으면서 서재라 해도 좋고 차실이라 해도 좋은 남편의 개인적 공간을 두고 그 화두를 풀 수 있도록 제안해 본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는 그보다 더 편할 수 없는 친구라 할 것이다. 은퇴 이후 생활에는 남편은 '삼식이'라고 불리며 구박을 받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각자의 공간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아파트가 아내의 집이었기에 단독주택을 지어서 산다면 좋은 자리에 ‘남편의 방’을 한 칸 들여 주면 좋을까 싶다.     

 

 만약 전원에 집을 짓는다면 남편의 서재는 전통 구들을 들인 한실로 만들면 좋겠다. 입식立式 생활로 바뀐 주거생활에서 좌식 공간을 두는 건 우리 주거의 전통을 잇는 중요한 해법解法이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유전자가 원하는 주거 습성은 퍼질러 앉고 드러눕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다. 온수온돌이지만 바닥 난방을 하고 침대나 침상에 난방이 되도록 해서 쓰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밖에는 없을 것이다.


심한재의 서재, 연못이 있는 작은 정원으로 툇마루를 통해 드나들 수 있다. 전통 구들을 들인 韓室로 조상에게 물려받은 좌식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구들 들인 한실韓室 서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원하는 몸의 습성이 바라는 방이 된다.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는 '우리집'만 가지고 있는 공간일 수도 있다

    

심한재의 전통 구들 들인 한실 서재, 겨울이면 이 방에 이불을 깔고 드러누우면 몸으로 전해오는 따끈한 온기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 버린다


 구들을 들인 한실로 꾸민 서재는 굳이 ‘남편의 공간’이라 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장작을 넣어서 불을 들여 따끈한 방바닥에 앉아서 차를 마신다. TV 없는 방에서 차를 나누며 밤늦도록 나누는 얘기가 끝이 없으리라. 방 안 가득한 훈기가 저절로 잠을 부르니 뜨거운 방바닥에 요를 깔고 단잠을 잘 수 있다면 선택받은 노후를 보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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