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정체불명의 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이차의 정체 파악을 위해 차의 종류부터 알아보자. 차를 크게 나누면 여섯 가지로 구분하는데 육대차류라 부른다. 녹차, 백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가 그것이다. 엄밀하게 보자면 산화인데 발효의 정도에 따른 여섯 종류로 구분한다.
이 여섯 종류의 차에도 제다 방법에 따른 차이, 산지별로 다른 차이 등으로 차의 종주국인 중국에는 하늘의 별처럼 다양한 차가 있다.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은 녹차가 가장 많고, 전 세계로 보면 홍차가 차의 주류가 된다. 그렇지만 녹차나 홍차는 보이차처럼 복잡하고 말이 많을 일이 없다.
보이차에 입문하면 가장 어려운 게 종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 종류를 열거해보면 생차와 숙차, 대지차와 고수차, 노차와 신차, 소수차와 대수차, 중소엽종 차와 대엽종 차, 건창차와 습창차, 교목차와 관목차, 봄차와 가을(곡화)차, 첫물차와 두물차 등등 얼마나 배워야 다 알 수 있을지 혼돈 속에 빠지고 만다.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 할만큼 보이차의 정체 파악은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이다.
보이차라는 이름 외의 수많은 별칭
보이차가 다른 차류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후발효차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발효는 말 그대로 차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도 계속 발효(산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차는 오래 묵힐수록 가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홍인이라는 보이차는 357g 한 편에 1억을 호가한다고 하면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1930년대 차라고 하는 호급차는 골동품처럼 경매로 거래된다니 보이차는 신비롭기 이를 데가 없다.
홍인, 이 한 편에 억대를 호가하지만 돈이 있어도 구경 조차 하기 어려워서 홍인을 보는 것을 친견한다는 표현을 쓴다
또 산지별로도 차의 가격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올해 만들어진 보이차가 한 편에 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하고 몇 만 원에 그치는 차도 있다. 가장 비싼 빙도차가 그 주인공인데 포장지에는 ‘빙도’라고 적혀 있는데도 몇 만 원이면 살 수 있으니 초보자는 선택할 근거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름만 보고 살 수도 없고 판매처를 다 믿을 수도 없으니 또 좌절해야 하나?
또 숙차는 생차보다 발효라는 공정이 더 필요한데도 찻값은 더 싸니 왜 그런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보이차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毛茶모차는 찻잎을 따서 조금 말렸다가 솥에 덖어 비빈 다음 햇볕에 말려서 만든다. 이 모차를 그대로 成形성형하면 생차가 되고 악퇴발효 과정을 거치면 숙차가 되는 것이다. 이 발효공정을 더해서 만든 숙차가 생차보다 싸다는 말이다. 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보이차는 다른 차류와 차이를 보이는 게 채엽시기와 관련이 있다. 보이차를 만드는데 쓰는 찻잎은 운남성에서 나는 차나무에서 채엽되는데 거의 일 년 내내 따낸다. 봄에는 첫물, 두물, 세물까지 따고 여름에는 夏茶하차, 가을에는 穀花茶곡화차, 겨울에도 잎을 따기도 한다. 첫물차가 가장 비싸고 여름차가 제일 싸며 곡화차가 중간 가격인데 포장지에 표시된 차가 잘 없으니 알 길이 없다.
보이차 나무와 녹차 나무?
보이차의 산지인 중국 운남성은 차나무의 원생지라고 할 수 있다. 보이차를 만드는 차나무는 주로 대엽종인데 잎이 다 자라면 손바닥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차나무는 소엽종인데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차나무의 생육에 알맞은 최적지는 아열대인데 추운 지방으로 갈수록 잎의 크기는 작아지고 두께는 두터워진다. 차나무가 생존하기 위해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차나무가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은 중국은 청도, 우리나라는 강원도 고성이다.
보이차를 만드는 대엽종과 녹차의 원료인 소엽종은 잎의 크기만큼 성분도 차이가 난다. 찻잎의 주성분은 폴리페놀(카테킨)과 아미노산인데 대엽종은 폴리페놀 성분이 많고 소엽종은 아미노산이 많다. 폴리페놀은 쓰고 떫은맛, 아미노산은 시원하고 감칠맛이니 녹차는 감칠맛이 좋고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이 많다.
차나무 잎으로 어떤 차를 만들지는 바로 폴리페놀과 아미노산의 성분으로 판단할 수 있다. 대엽종으로도 녹차를 만들기도 하지만 아미노산 함량이 적고 폴리페놀이 많으니 인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엽종으로는 녹차, 대엽종은 녹차를 만드는 것이 좋다.
차를 만들어서 시간이 지나면 폴리페놀 함량이 줄게 된다. 물론 만들어진 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분 변화가 일어나지만 폴리페놀이 줄어들면 맛이 심심하게 된다. 폴리페놀의 양이 적은 녹차는 풍미를 잃게 되지만 보이차는 독특한 향미로 변화가 일어나 노차라는 별칭을 가지면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보이차라는 이름은 하나, 마시는 차 종류는 무한대
-소엽종과 대엽종, 신차와 노차
일부 중소엽종이 있기는 하지만 보이차는 거의 대부분 대엽종으로 만들어진다. 폴리페놀 함량으로 보이차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유통기한 무한대의 특별한 차가 종류도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또 쓰고 떫은맛의 폴리페놀이 바탕이 되면서 단맛과 쓴맛의 조화로움이 산지마다 다른 향미를 가지게 한다. 노차는 차의 주성분인 폴리페놀이 변화되면서 독특한 풍미가 생겨나게 된다.
-생차와 숙차
봄부터 가을까지 채엽하는 찻잎의 특성, 산지마다 다른 향미, 보관 환경과 기간과 복합되어 차마다 다른 향미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오래 묵혀서 폴리페놀의 쓰고 떫은맛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숙차가 1975년에 개발되었다. 쓰고 떫은맛 때문에 인기가 없었던 보이차를 숙차가 나오면서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차로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다원(대지)차와 고수차
쓰고 떫은맛 때문에 숙차가 아니면 마시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던 게 고수차의 등장이다. 문화혁명 시기에 오래된 차나무가 베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대지(다원)차를 심어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런데 심심산골에 있어서 베어지지 않고 살아 남았던 고차수, 2010년을 기점으로 묵히지 않아도 녹차에 뒤지지 않은 향미를 가지고 있는 古茶樹고차수 찻잎으로 만든 고수차가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첫물차와 그 이후 차
첫물차는 겨우내 축적된 차 성분이 찻잎에 응축된 봄 잎을 따서 만든다. 첫물차는 쓴맛도 많지만 감칠맛이 풍부해서 그 이후에 따는 찻잎과는 크게 다른 향미를 가진다. 첫물차는 잎을 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므로 생산량이 적어 일반적인 유통경로로 거래되기가 어렵다. 그러니 내가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소수차, 중수차, 대수차, 고수차와 단주차
차나무의 수령에 따라 구분하는 차 이름이 있다. 수령으로 따져서 小樹茶소수차는 30년 이하, 중수차는 50년 이하, 대수차는 100년 이하, 고수차는 100년 이상이다. 또 300년 이상된 차나무 한 그루에서 잎을 따 만들어 單柱茶단주차라고 부르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차산지마다 다른 향미로 産地산지가 이름인 차
맹해차구의 노반장, 임창차구의 빙도를 필두로 산지마다 다양한 향미의 고수차가 보이차 열풍을 불러 일어키고 있는 것이다. 묵히지 않아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고수차가 보이차의 기존 인식을 바꿔놓게 되었다. 2010년 이전에 비해 빙도는 백 배, 노반장은 오십 배의 가격차를 보이고 다른 산지도 찻값이 폭등하면서 보이차의 르네상스가 열리게 되었다.
수많은 보이차 종류를 추천할 수 있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樹齡수령 백 년이 넘은 고수차여야 하며 채엽시기는 첫물차라야 한다. 그 다음은 찻잎의 産地산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만 포장지에 표기된 차산지 중에 피해야 할 이름은 빙도나 노반장 등 유명한 곳이다.
정리해보자면 수령 백 년 이상 고수차, 찻잎의 산지를 살피고 채엽시기는 첫물차라면 차 가격만 잘 따지면 후회하지 않은 보이차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해도 좋다.
보이차는 다양성으로 그 넓이를 알 수 없고, 2000년 이상된 수령의 차나무의 신비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게 하고 있다. 차 중에서 가장 싼 차도 보이차이고, 억대에서 경매까지 가격이 결정되는 차도 보이차이다. 군웅할거 시대라는 춘추전국시대처럼 보이차도 누구나 마실 수 있지만 아무나 마실 수 없다는 정의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에 들고 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