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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Sep 07. 2021

어렵게 구한 보이차, 이렇게 마신다

노차를마시던 선배님의 보이차 생활을 지켜보며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제게 보이차를 가르쳐주시던 선배님의 보이차 사랑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좋은 보이차를 찾는 노력만큼 소장하고 있는 보이차를 대하는 정성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렵사리 구한 보이차라도 취향에 맞지 않으면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선배님은 숙차는 마시지 않았다. 체질에 따르기도 하지만 숙차의 숙미가 맞지 않아 생차만 마시는 사람도 많은데 선배님의 경우에 해당되었다. 선배님이 보이차를 시작했을 때는 보관이 잘 된 노차를 구하기는 어려웠다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숙차를 억지로 마시려 했지만 숙미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서 힘들지만 노차를 찾아 마시고 있다고 하셨다.     


 그때는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소통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그 노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괜찮을 것이라며 구한 차도 한쪽에 밀려나 쌓여있는 양도 적지 않았다. 선배님 입맛에 맞지 않아서 비켜나 있는 차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조금씩 건네주셨는데 내 입맛에는 맞아서 초보 입장에서는 고맙게 마실 수 있었다. 


    

귀한 차를 대하는 선배님의 차생활을 글로 옮겨 보자면 이렇다.


소형 차호나 잔이 있어야 하는 건 귀한 차를 우리기 위해

     

 우선 선배께서 주로 쓰는 자사호의 용량인데 100cc 차호茶壺도 용량이 큰 편이라며 그보다 더 작은 호를 쓰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차를 큰 자사호에 우리면 차맛을 음미하는데 지장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구하셨는지 20-30cc 정도 되는 자사호를 쓰고 있으셨다. 

    

 찻잔도 초미니라 그렇게 작은 잔에다 마시는 것도 처음 보았다. 중국차는 대체적으로 큰 잔보다 작은 잔을 많이 쓰는데 엄지손톱만 한 잔으로 마시기도 한다. 주로 노차나 아주 진하게 우리는 농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잔이 필요하다고 한다. 커피도 에스프레소는 작은 잔으로 마시는 걸 보면 되겠다. 잔이 작을수록 차를 입안에 넣어서 혀로 굴리고 쩝쩝대기도 하면서 온전한 차의 향미를 음미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보이차는 혼자 마셔도 두세 시간은 금방인데 몇 명이 같이 하면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간다. 찻자리를 가지면 거의 너덧 종류의 차를 마시게 되는데 큰 잔을 쓰면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한다. 너무 작은 잔으로 마시면 감질나기도 하지만 보이차를 마시려면 맘에 드는 작은 잔은 꼭 필요하다. 


노차는 엽저도 함부로 처리하지 않는데

    

 이렇게 마시고 난 차이파리는 별도의 그릇에다 모으는데 한꺼번에 버리기 위함이 아니다. 귀하게 대접받는 보이차는 우려 마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날 그 이파리를 주전자에 넣어서 끓여서 마시게 된다. 원래 후발효차 종류는 우유나 생강 등을 넣어서 끓여서 마시기도 하는데 유목민들이 밥보다 더 챙겨 마시는 수유차가 그렇다. 그렇게 끓이면 수십 번이나 우린 상태에서도 차색이 진하게 나오고 맛도 우린 상태와 다른 맛을 낸다.     


 이 정도 대접받는 보이차는 어떤 수준일까? 특급 대우를 받는 보이차를 소개해 볼까 한다. 흔히 골동 보이차라고 부르는 몇 년이 되었는지 가늠이 되기 않는 귀한 보이차가 있다. 사실 이런 차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가 없으니 그 차를 가진 분과 함께 마시는 기회에 접하게 된다. 고수들께서 마시는 자리에 끼었다가 마시고 난 이파리를 얻어 오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한번 마실 분량을 얻어오는 행운이 따르기도 한다.

     

 덩어리 져 있는 차는 억지로 부수지 않고 차호에 넣는다. 선배님은 차호에 차가 든 상태로 아침저녁 한번씩 한 달 정도 마신다고 한다. 여름에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좋은 자사호를 쓰지 않나 싶었다. 거의 차색이 우러나오지 않을 때까지 마시는데 차맛이 계속 달라지면서 맹물에 가까워져도 차맛이 나온다고 한다. 후발효차가 가지는 차맛이 놀랍다. 

    

 후발효차로 분류되는 보이차는 시간이 만들어가는 가치로 다른 차와 구분한다. 1950년대 차인 홍인은 한 편에 억대를 호가한다고 하니 이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차이다. 이런 보이차는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기호음료인 차를 대하는 마음이 이렇듯 애틋할 수 있을까 싶다. 


고인이 되신 차사부 세석평전님


보이차는 보이차일 뿐이니 다른 의미를 붙이지 말라

    

 차는 차일뿐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차를 하찮게 대한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래된 보이차가 돈이 된다며 투자를 한다든가 약처럼 광고하는 상술을 경계하는 얘기이다. 보이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새로운 향미에 반하게 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보이차는 보이차일 뿐이니 다른 의미를 붙이지 말라.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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