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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Sep 17. 2021

주말마다 며느리가 올 수 있는 집

백년가로 살'우리집'얼개 짜기-제3영역 거실 공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부터 거실이라는 공간을 얻게 되었다. 아파트에 살기 이전에는 안방이 주인의 침실이자 거실이고 식당이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손님이 와서 묵어가게 되면 어머니는 안방을 손님에게 양보해야 했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의 생활 방식이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입식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식탁에서 밥을 먹는 생활의 대변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거의 불행도 이때부터 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우리 주거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 거실과 주방 공간이 우리 주거생활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거실은 TV를 보는 쓰임새 정도이고 화려한 주방은 빛나는 인테리어로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온 아파트, 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많으니 어떤 연유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아파트 생활에 대해 돌아보면서 이 시대의 집은 어떠해야 할지 주거의 정체성을 돌아보고자 한다. ‘집다운 집’이란 무엇일지 돌아보면서 특히 ‘우리집’의 거실 영역을 아파트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는 전제로 얘기를 해볼까 한다. 거실과 주방 공간이 바뀌면 우리 주거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설계 도반건축사사무소, 시공 니드하우스)-거실동이 사랑채 개념으로 침실동과 채나눔되어 독립적인 공간으로 쓰인다

    

 엄마와 아내는 주부가 아니다     


 거실은 사전에 ‘개인 공간인 침실과는 달리 공동생활 공간으로 서로 상대적인 개념을 갖고 한 가족 공동체만의 공간 이외에도 손님 접대 장소로도 이용된다 - 위키백과’로 정의하고 있다. 거실이라는 공간이 있음으로써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라는 얘기이다.    

 

 거실은 저녁이 되어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가끔 손님이 찾아와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사람이라면 우리집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따뜻한 정서가 살아 있는 ‘우리집’인데 이렇게 살고 있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거실은 개인 공간인 침실과는 달리 공동생활 공간으로 서로 상대적인 개념을 갖고 한 가족 공동체만의 공간 이외에도 손님 접대 장소로도 이용된다

    

 주방도 잘 살펴보자. 이제는 주부만이 아니라 식구 모두가 주방을 쓰는 추세이다. 그래서 주방은 이제 단순하게 음식을 조리하는 곳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겨 쓸 수 있도록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등을 돌려쓰던 싱크대와 화구火具를 아일랜드 타입으로 거실을 바라보도록 설치한다. 조리나 설거지를 하면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싱크대의 상부장을 없애 주방에서도 밖을 볼 수 있도록 큰 창을 설치한다.     


 요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라는 의미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저녁 시간이면 식구들이 하루의 일로 얼굴을 마주 해서 얘기를 나누고 밥 먹는 일상이 다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여서 우리집에 손님도 기꺼이 청할 수 있는 소확행의 자리가 되는 거실과 주방의 영역을 생각해 본다.


심한재의 주방과 테이블 - 아일랜드 조리대가 식구들과 마주 보게 되어 있다


 Public Zone으로서 거실 공간의 위치     


 예전에는 우리 옛집에는 거실의 개념이 따로 없었다. 한옥에서 안채는 안방에서 식구들이 모이고 사랑채에서는 손님 접대가 이루어졌다. 안팎의 공동영역을 아내와 남편이 서로 나누어 썼다고 볼 수 있다.   

  

 일반 민가에서는 사랑채와 안방을 따로 나눌 수 없어서 안방이 그 역할을 수행했었다. 지금은 거실이 있으니 안방의 역할이 필요가 없는데도 부부 침실이 남향을 차지하고 있다. 부부 침실은 잠만 자는 공간인데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니 아이들의 방은 밀려나 있는 셈이다.     


 거실 영역은 침실 영역에서 떨어져 있을수록 공간적인 활용도가 높아진다. 사적 공간인 부부 침실만 잠을 자는 단일 기능이고 아이들의 방은 수면 이외의 복합적인 생활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식구들의 개인 영역인 방과 공동 영역인 거실은 뚜렷하게 구분되어야만 ‘부부의 집’이 아닌 ‘우리집’이 된다.    

 

거실은 음악실이 되기도 하고 영화감상실이 될 수도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모여 큰 소리로 떠들어도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아야 한다.


 거실 영역이 사랑채처럼 독립되어 있으면 식구들과 함께 하는 일상뿐 아니라 식구 각각의 손님도 기꺼이 청할 수 있게 된다. 거실은 음악실이 되기도 하고 영화감상실이 될 수도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모여 큰 소리로 떠들어도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야 한다. 독립된 사랑채 거실은 ‘우리 집’에서 못할 일이 없는 식구들의 공적인 영역이 된다.     


 앞서 얘기한 부부 영역-Master Zone과 손님 영역-Guest Zone은 층으로 나누어 정적인 공간으로, 거실 영역-Public Zone은 동적인 공간으로 쓰게 된다. 따라서 공간의 독립성을 위해 영역 구분이 되면서도 사용 편의를 위한 동선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나누어지고 이어짐을 매개하는 중간영역이 있으면 공간 효율이 높아지게 된다.     

심한재의 계단홀과 거실 - 이 공간에서 거실동과 침실동이 나누어져서 거실 공간의 독자적인 쓰임새가 보장된다


 테이블이 있어야 얘기를 나누지요     


 집밥이 세간의 관심이 되고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광고카피가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는가 보다. 이 광고 카피가 일상의 용어로 쓰이고 있으니 집에서 밥을 먹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반증이 된다. 여기에서 밥은 돈만 주면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니다. 엄마가 해주는 마음까지 채울 수 있는 밥인 ‘집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상품으로 파는 음식이 어떻게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줄 수 있을까?   

  

 최신식 주방기구가 화려하게 갖춰져 있으면 뭐하나? 아침밥은 고사하고 잘 시간이 되어야 불이 켜지는 집에서 주방은 장식 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나마 조리가 즐거울 수 있도록 배려해서 공급되는 주방가구 때문에 밥을 해 먹는 집이 늘어났기를 빌어본다.     


 그런데 주방가구가 좋아졌다고 해서 안 하던 밥을 해 먹을까?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식구들이 있으면 주방은 쓰임새를 발휘한다. 결국 식구가 많은 집은 어떤 음식을 해도 맛있으니 사람이 북적대는 집이 길택吉宅인 건 확실하다. 집에서 뭐 하냐며 밖으로 나도는 요즘 세태를 보면 길택吉宅의 요건은 집보다 사람이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는 무엇일까?


 집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는 무엇일까?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침대, 맛있는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주방가구, 즐거운 TV 시청을 위한 소파 중에 하나일까? 그보다 식구들과 마주 앉을 수 있는 가구, 테이블이다. 테이블은 식사도 하지만 차를 마시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볼 수도 있다.     


 테이블은 앉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식구 모두가 마음에 꼭 들어하는 가구라야 한다. 테이블의 상판은 손에 닿는 촉감을 위해서 유리를 깔면 안 된다. 테이블에 앉아야 식구들이 마주 보게 된다. 밥 먹고 차나 와인을 마시면서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자리는 테이블에서만 가능하다. 혼자 앉아도 좋고 둘이 마주 보고 앉으면 더 좋고 손님과 함께 앉으면 일어서기 아쉬운 자리가 된다.     


 그러면 쓰임새가 너무 중요한 이 테이블이 있는 자리는 어디가 좋을까? 주방가구에 덧붙인 식탁 자리가 아니다. TV만 보는 소파보다 더 비중 있는 가구인 테이블을 놓을 자리는 심사숙고해서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테이블은 주방가구가 아니다. 테이블은 거실에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테이블은 식구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임을 담당한다.       


  

심한재의 Public Zone - 주방괴 테이블, 거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면서 각 공간의 쓰임새가 영역별로 나뉘어 이루어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식구들이 함께 하는 모든 일상을 담을 수 있고, 누구의 손님이라도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우리집’의 거실 영역-Public Zone은 소확행이 샘솟아 나는 공간이 된다.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만 ‘우리집’은 보금자리가 된다. ‘집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많아야 바깥일이 끝나는 대로 곧바로 귀가歸家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산다. 바깥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 집에서 지내다가 잠깐 밖으로 나간다. 바깥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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