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을 오는 사람이면 꼭 다녀가야 할 장소 중 한 곳으로 부산 원도심의 보수동 책방골목을 꼽는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 전쟁 당시 파란민들이 헌책을 팔고 사면서 형성된 근대부산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는 70여 곳이나 되었던 서점들이 이제는 서른 곳 남짓 남아있는데 이마저도 폐업하거나 휴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부동산 개발 열풍이 일면서 큰 길가의 건물은 매각되고 있어 책방골목의 정체성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책방골목 안내 입간판이 세워진 골목 입구의 건물이 팔려 서점 몇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골목 안의 가장 큰 서점이 있던 건물이 헐리고 신축 건물이 들어서 책방골목의 원형이 무너지고 있다.
책방골목의 원형이 크게 훼손될 위기라고 할 만한 큰 건물이 매각되면서 뜻있는 분들이 책방골목을 지키는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보수동 책방골목 보전과 미래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발기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이 자리에 그 건물을 매입한 신양건설 김대권 대표가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김 대표는 오피스텔 신축사업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책방골목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고 나서 일여 년의 시간이 지나 낡은 건물은 책방골목의 새 명소가 될 리모델링된 아테네학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의 5층 건물은 거대한 다섯 권의 책으로 모습을 바꿔 책방골목의 상징물로 세워졌다. 그 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와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일층에 입점해 있던 세 곳의 서점은 그대로 살리고 2층에서 4층까지 내부는 대수술에 가까운 리모델링을 거쳐 카페로 단장되었다. 3개 층은 거대한 계단실로 하나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계단실 4층의 천장에는 아테네학당이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아테네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주제가 된 초대형 카페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테네학당 카페를 방문하게 되면 아테네의 철학자들의 학문의 향기에 흠뻑 젖어들게 될 것이다. 3층에는 곳곳에 아테네 학자들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어 분위기가 고조된다.
이제 아테네학당이 보수동 책방골목에 카페로 등장하면서 김대권 대표의 용단이 실현되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 의미로 가득한 특색 있는 건축물과 대형 카페가 그의 뜻대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테네학당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여야만 그가 개발 사업을 포기하고 부산 원도심을 살리고자 한 큰마음이 채워지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그의 큰마음을 채워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해 보인다. 책방골목에는 셔터를 내린 서점이 점점 늘고 있으며 아테네학당 카페를 찾아올 사람들도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용주차장이 없어 차 없이 아테네학당을 찾아올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걱정된다. 카페 내부는 완전 열린 공간이라 층을 나누어 행사를 하는데도 어려운 분위기라서 어떤 영업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내가 3개 층을 합쳐 백여 평 규모로 카페를 운영해 본 경험을 지켜보았다. 장사를 잘해서 손님이 많아지면 음식점은 회전율이 높고, 주점은 테이블만 채워지면 매상이 올라가니 정해진 시간의 이윤이 확보된다. 그렇지만 카페는 한번 주문으로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테이블을 차지한다. 흔히 카페 운영이 음료 원가를 기준으로 이윤을 따져 땅 짚고 헤엄치는 듯이 생각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장사가 아니라는 걸 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아테네학당이 출범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항구를 떠날 땐 환송객들이 잘 다녀오라며 배웅하지만 바다로 나가면 어떤 일을 맞닥뜨릴지 알 수 없다. 풍랑을 만나 헤쳐 나가는 건 오로지 선장과 항해사의 몫일뿐 환송객의 박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테네학당이 카페 운영이라는 바다를 잘 헤쳐 나갈 수 있길 빌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