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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Mar 21. 2023

보이차는 묵혀서 마시는 차가 아닌데

다연회 2023년 3월 다회 후기

벌써 3월이 허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절기에 꼬리를 내리고 매화를 시작으로 봄꽃이 피어나고 있네요. 속절없이 간다는 말처럼 벌써 4월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3월 다회는 노차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노차는 오래 묵은 차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겠고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환상과 같은 차입니다. 호급차, 인급차로 노차를 떠올리지만 그 진미를 제대로 맛보았다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다연회 3월 찻자리에서 노차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누었을까요?


     

3월 다회에는 일곱 분의 다우가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상희님과 백공님은 다른 일정이 겹쳐서, 묵향님은 근무 중이고 산수유님은 치료 때문에 참석치 못했습니다. 우리 다우들이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다 모이는 자리를 기대해 봅니다.     


다회 장소인 에피소드인커피에서 제공하는 김밥과 허니브래드, 총무 서영님이 준비한 맛있는 빵과 떡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제 노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를 마셔봅니다. 마셨던 차는 1993년 7542, 대평 판매 ‘97 홍인과 대평 90년대 노황편차입니다.     



먼저 노차만 판매한다는 가게에서 구입했었던 ‘93 7542를 마셨는데 다우들은 하나같이 창내와 곰팡이 냄새가 난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이 차는 그 가게의 개업기념으로 원가라며 판매를 했었습니다. 가게 주인과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두 편을 구입했다가 한편은 반품을 했었던 차입니다.     


그다음은 대평 판매 ‘97 홍인을 우렸습니다. 저는 이 차를 아주 흡족하게 마시고 있는데 다우들은 썩 마음에 드는 호감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93 7542보다는 좋다고 하는데 노차의 풍미를 맛보기에는 부족했나 봅니다. 우리다 만 엽저는 따로 제가 마시려고 챙겨 두었는데 이만한 90년대 차를 찾기가 어렵다는 걸 알아보지 못하는 다우들이 안타깝습니다.     


이어서 90년대 노황편을 내었더니 다우들은 좋다며 만족해합니다. 숙차에 익숙한 다우들의 입맛에는 노황편이 더 좋나 봅니다. 생차 위주로 차를 마시는 저와 다우들의 취향 차이라고 봅니다. 

   

대평보이 판매 '97 홍인, 90년대 노차로 이만한 향미를 즐길 차가 흔치 않다고 여긴다



찻자리를 마무리하면서 고수 숙차를 우렸는데 다우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그런데 7542 세대인 다우는 ‘97 홍인에 긍정적인 반응을 했습니다. 고수 숙차보다 ’97 홍인을 더 좋아한다면 차생활을 한 지 꽤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7572보다 7542를 더 선호하며 숙차는 천출, 생차는 적자라는 생각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사실 오늘 다회의 주제인 ‘노차 알아보기’에 맞춰 80년대 노산차와 진기 50년 고수 죽통차까지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노차는 짧은 시간에 우리기에는 아까워서 다회 때마다 대장차로 내려고 합니다. 90년대 노차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노차는 후발효차로 분류되는 보이차와 흑차류에만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차라고 구분해서 마시게 된 건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후발효차의 특징은 유통기한이 따로 없다는 점이며 긴압차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긴압차-덩이차로 만드는 이유는 운송과 보관의 편의를 위해 부피를 줄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전이나 보이차는 값싼 차에 속했으며 소비층은 주로 티베트 등의 유목민이었습니다. 차마고도를 통해 흑차가 티베트로 운송되었다는 건 알고 있다면 말에 싣고 먼 길을 가려면 덩어리차로 만들어야 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유목민들은 흑차로 수유차를 만들어 마셨고 오래 된 차는 불쏘시개로 썼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들도 아마 신선한 차를 더 선호했을 것입니다.     


보이차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대에 만들어서 손자 대에 마신다는 월진월향이라는 말은 아마도 묵힌 차를 비싸게 팔기 위한 상인들이 만든 이론이 아니었겠는지 추정해 봅니다. 물론 오래 보관된 차를 마셔보니 묵힌 보이차에서 독특한 향미를 즐기게 되었고 노차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차의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른 시기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월진월향이 보이차의 특성이었다면 보관된 차가 운남에도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상인을 통해 구입하는 노차는 거의 작업차라고 봐야 하니 진정한 노차의 珍味진미를 맛보려면 소장가와 함께 마셔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호급차와 인급차를 여러 차례 마신 적이 있었지만 흡족한 느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대구의 동경당에서 마셨던 남인, 경주 아사가 차관에서 맛보았던 노차는 만족스러웠지만 부산 대연동 도림원에서 마셨던 홍인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홍인을 마시면서 왜 노차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어쩌다 진품 노차'를 만났던 것이지요.


노차에 대해 저의 이런 생각을 다우들과 얘기를 나누고 고수 숙차를 마시며 3월 다회의 찻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보이차도 다른 차류처럼 지금 마셔서 좋은 차를 구입하는 게 좋으며 후발효차의 특성이 있어서 시간을 두고 마시며 변해가는 향미를 즐기는 것도 좋지요. 지금 마셔서 마음에 들지 않은 값싼 차를 잔뜩 구입해서 훗날에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평보이 고수숙차 문답, 고수차를 모료로 써서 만든 프리미엄 숙차이다. 응관님이 산수유님의 쾌유를 빌면서 선물로 전했다


보이차 브랜드 오운산의 경영 이념이 當年好茶 經年新茶-그해에 만들어 그해에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차,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차로 다시 태어나는 차입니다. 이 말이야말로 보이차를 표현하는 올바른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차는 지금 마셔도 좋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향미를 즐길 수 있기에 저도 이런 매력에 홀딱 빠져 있답니다.


보이차도 여타 차류와 같이 지금 마셔서 좋은 차를 내 경제적 여건에 맞게 구입해야 합니다. 값싼 차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세월이 지나 노차가 되면 비싼 값에 되팔 수 있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보이차도 양보다 질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차를 구입해야 하며 많은 양을 소장하는 자랑보다 지금 즐겨 마실 수 있는 다양한 차가 있어서 행복해야 합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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