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단독주택에 담장 없이 지어진 경우가 많다. 단독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아예 담장을 설치할 수 없도록 지침으로 정하는 곳도 있다. 아마도 아파트 단지처럼 마을 전체 분위기를 공원화시킨다는 의도로 그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게 싫어서 단독주택에서 살아 보려고 하는 건 아마도 마당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담장 없이 개방된 마당이라면 과연 바라던 단독주택의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염려된다. 마당을 밟고 사는 주거생활이라야 할 텐데 담장이 없으면 거실의 프라이버시가 확보될 수 없으니 어떤 단독주택을 지어 아파트보다 낫게 지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분양하는 단지를 보면 쌍둥이처럼 꼭 같은 집인 데다 담장이 없어 길에서 거실 안이 들여다보인다. 미국 영화를 보면 길을 따라서 정원, 건물이 이어지는데 이런 도시 경관을 연출하고 싶은가 보다. 그렇지만 마당도 쓰지 못하고 거실 안이 길에서 들여다보일 테니 그 집에서 사는 건 영 별로일 것 같다.
정원과는 다른 마당
마당은 기능성 외부 공간이다. 한옥을 살펴보면 안채에는 안마당, 사랑채에 사랑마당이 있다. 이 두 마당은 안채의 대청과 사랑채의 사랑마루와 하나의 공간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밖에 정지 옆에 정지마당이 있어 장독대나 우물이 있고 사당 앞에도 제례를 지낼 수 있게 마당이 있다.
마당은 마땅히 비워져 있어야 한다. 백토를 깔아 다져 잘 패지 않고 물이 잘 빠지도록 했다. 비워진 공간이라 관혼상제 등의 집 안 행사를 치를 수 있고 가을이 되면 추수한 곡식을 말리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담아낸다.
우리나라 집만 가지고 있는 고유한 외부 공간이며 마당은 담장을 벽 삼은 지붕 없는 기능적 공간이다. 마당을 집의 내부 공간과 연계해서 쓰게 되므로 건물은 터 가운데 배치하게 된다. 방의 출입구도 툇마루를 두어서 마당에서 바로 드나든다.
우리 한옥의 마당, 백토를 깔아 정갈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낮은 담장으로 경계를 두며 마당의 영역과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안에 나무를 심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한자의 口를 집의 영역이라 보면 나무木을 심으면 빈곤할 困이 되므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뒤뜰에 나무를 심어도 지붕보다 높이 자라지 않도록 해서 집에는 양명한 기운을 잃지 않도록 했다.
마당을 이루는 담장
담장이 없으면 마당이 될 수 없다. 또 담장으로 터를 둘러야 집의 和氣화기를 담을 수 있다고 보았다. 대문도 안으로 여닫고 마당을 쓸어 나오는 낙엽이라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담장의 높이는 사람 키 정도로 했는데 길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고 대청에 서면 밖을 볼 수 있다. 담장에 붙어 서서 까치발을 하면 서로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으니 안팎에 서로 응대를 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허락 없이 담장 너머 머리를 내밀면 그 집을 훔쳐보는 일이 된다.
아마도 집을 쓰는 범위를 실내와 마당까지 아우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방에서 마루, 마루에서 마당으로, 마당은 또 담장을 경계로 공간의 쓰임새가 중중무진으로 이어진다. 내외부가 이어지면서 한 공간이 역할을 달리하게 되는 게 우리 한옥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장독이 가득한 뒷마당, 장을 담궈 그 집만의 음식 맛을 유지했던 가풍이 여기에서 나왔다
담장의 역할은 집의 경계를 지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기능이 부여된 마당이라는 외부 공간으로 만드는 데 있다. 거실 앞의 큰 마당, 주방 근처에는 정지마당, 테이블이 있는 자리에는 안마당, 서재와 이어지는 작은 마당 등으로 실내외를 하나의 공간 체계를 주면 좋겠다. 이렇게 마당은 지붕 없는 또 하나의 기능 공간이 될 수 있으니 담장이 그 영역을 있게 하는 요소가 된다.
마당을 있게 하는 낮은 담장, 대청 마루에 서면 밖을 훤히 볼 수 있지만 길이나 마당에서는 안팎이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담장이 없어 마당을 쓰지 못하는 집은 우리집이 아니다
건물이 배치되고 남은 외부 공간으로 두는 건 우리나라 집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아파트에 사는 주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단독주택을 지어 살면서도 외부 공간을 쓰는 즐거움을 모르고 산다. 그러다 보니 마당의 의미나 쓰임새를 잘 알지 못하고 건물을 대지의 한쪽으로 배치하고 큰 잔디밭을 두는 집이 많은 것 같다.
집의 내부와 이어지는 작은 마당을 곳곳에 두면 단독주택이 아니면 못 살겠다는 얘기를 절로 하게 된다. 거실 앞의 큰 마당만큼 주방으로 이어지는 뒷마당이 필요하다. 장독대도 두고, 텃밭도 가꾸고 외부 공간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이런저런 소품도 두는 장소가 뒷마당이다.
마당이 그냥 외부가 아닌 기능이 부여된 공간이 되면 집 바깥과 담장으로 막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집은 집 바깥과는 다른 세상인데 담장 없이 열어 놓을 수 없지 않은가? 거실에서는 담장 밖으로 시선이 넘어갈 수 있고 마당에서는 집 안만 볼 수 있어야 한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그때부터 우리 식구들만의 파라다이스가 우리집이 되어야 한다. 담장의 높이가 2미터 이상 높으면 세상과 절연하게 되지만 1.6미터 정도면 좋겠다. 이 정도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은 답답하지 않으면서 우리집을 和氣滿堂화기만당한 분위기로 만들어 줄 것이다.
담 허물기가 행정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비싼 땅값에 큰 집을 짓고 살지도 못하는데 마당까지 쓰지 못하게 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길에서 거실 안이 보이는 집에 살 수 없는데 담장을 치지 못하게 하니 이를 어쩌나.
양산시 단독주택 택지에 지어진 독특한 외관을 가진 집들, 담장을 설치할 수 없는 지침으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해 고민한 건축사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경남 양산시 물금에 조성된 택지는 담장을 치지 못하게 한 지침 때문에 독특하게 지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일층에는 현관만 있고 이층에 거실이 있는 집, 중국의 사합원처럼 억지로 중정을 만들어 시선을 가리려고 하는 집, 거실 안을 들여다보든 말든 담장 없어도 일층에 거실을 둔 집 등으로 어색한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단독주택을 지어 살고 싶은 이유는 일층에 살면서 마당이 있는 삶을 누리려는 게 아닐까? 택지의 이상한 지침 때문에 억지로 3층 집을 짓고 거실을 이층에 들여서 살아야 한다면 왜 단독주택이 필요할까? 이 동네의 집들은 별난 디자인이 참 많은데 그 집에 사는 분들은 얼마나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