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을 만든다고 영국의 정치가 처칠이 말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어서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家門가문의 정서라고 할 수 있는 家風가풍도 종갓집에 가보면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지금은 가문이라는 말도 무색해졌고 따라서 가풍은 찾아볼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아파트에 살기 전에는 도시에 살아도 어느 마을에 산다는 ‘우리집’처럼 우리 동네라는 소속감이 있었다. 동네 어른에게 예를 갖추며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면 집안 어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니 부끄럽게 여겼다. 이런 관습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 집이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파트라는 집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건 아니다. 아쉽게도 아파트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건 거의 없고 부정적인 삶으로 영향을 주고 있으니 안타깝다. 아파트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이제는 단독주택을 지어 살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를 어쩌랴.
가문과 가풍을 읽어낼 수 있는 우리 한옥-양동 마을 관가정
가문과 가풍
경주 양동마을은 경주 손 씨와 여강 이 씨 두 가문이 한 마을에서 세거해 살아왔다. 이 두 가문은 대외적인 문제에는 하나의 공동체로 협력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쟁을 벌여왔다. 특히 마을 내에 세워진 집을 보면 두 집안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두 집안의 가풍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대상은 소종가인 관가정과 향단이다. 양동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바라다 보이는 두 집의 인상은 극히 대조적이다. 관가정은 향단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지만 깊이 들어앉아 있고 집의 높이도 높지 않을 뿐 아니라 단순화하여 마을의 다른 집들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다.
반면에 향단은 집터는 낮은 자리에 있지만 집의 규모나 높이가 있어서 눈에 바로 들어온다, 특히 박공이 세 개나 노출된 형태는 한옥으로서는 파격적인 형태를 가져 시선을 집중시킨다. 논리적이고 규범적인 관가정에 비해 향단은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집의 모양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관가정은 외부적으로는 폐쇄적이고 소박하지만 내적으로는 개방적이면서 대단한 경관을 끌어들인다. 반대로 향단은 외적으로는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내적으로는 갑갑하고 폐쇄적이다.
관가정의 주인인 손중돈은 정이품의 관직인 우참찬까지 지냈지만 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에 드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경주 손 씨의 소종가인 관가정에서 잘 느낄 수 있다. 동생을 위해 향단을 지어 살게 한 이언적은 중종이 그를 위해 내린 집인데 아흔아홉 칸으로 지었다고 한다. 같은 마을의 두 세가가 경쟁을 하며 살았기에 이런 규모로 가세를 드러낸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삼대가 한 집에서 살지 못하게 되었고, 두 번째는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으며, 세 번째는 손님이 찾아들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집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면서 이산가족처럼 가족 구성원은 뿔뿔이 흩어지고 삶의 방식도 낱낱이 흩어지게 되었다.
아파트는 철저히 부부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얼개가 짜져 있는 집이다. 아이들도, 부부의 부모도 아파트에 살기에는 불편하다. 부부가 쓰는 안방은 방도 크지만 드레스룸이나 붙박이장, 파우더룸에 욕실까지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다른 방은 싱글 침대 하나만 있어도 여유 공간이 별로 없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그렇게 된 건지 세태가 그런 건지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침은 거르고 저녁도 귀가 시간이 다르니 밖에서 해결하는 집이 많다. 이렇게 되니 식구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고 날을 정해서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희한한 가족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손님은 이제 글이나 드라마로 볼 수 있는 옛날 사람이 된 지 오래다. 손님을 청하지도 않거니와 내가 남의 집을 찾아가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집으로 찾아가지 않으니 가족 간의 교유도 없어져서 밖에서 가족들의 지인을 알아볼 수도 없다. 모르는 사이로 시비가 붙어도 아버지의 친한 친구를 아들이 함부로 대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세계 속의 도시 해운대를 채우고 있는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일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0%
아파트가 불러온 우리 주거 문화의 삼난은 가족을 낱낱이 흩어버렸다. 아이들은 대학생만 되면 집을 나가 학교 근처 원룸에서 산다. 홀로 된 노부모가 자식들과 살지 못하고 따로 지내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이다.
홀로 살던 노인이 명을 다한 지 한참 지난 뒤에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난 아파트에 빈 방이 두 개나 되는 데도 왜 노부모는 자식들과 한 집에 살지 못하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야 하는 걸까? 아파트는 사람의 관계를 끊어내는 무서운 집이다.
일인가구의 집으로 쓰고 있는 원룸이라는 집은 사실 집이라는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통풍도, 채광도 제대로 되지 않는 집이 많고 외부 공간은 발코니마저 없으니 감옥이나 진배없다고 하면 과언일까? 원룸이라는 집은 방을 세 놓아 수익이 많이 나오면 그만이라며 지은 부동산이다. 그런 집인 원룸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사람의 삶의 질은 어떠할까?
일인가구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의 30%가 넘었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적 상으로는 몇 명이나 자식도 있고 손주도 있지만 쓸쓸하게 삶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혼자 살면서 큰 집이 무슨 소용 있느냐고 하지만 아무리 작은 집이라 해도 집이라 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집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부부가 사는 집이라고 해도 각방을 쓰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니 결국 혼자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우리네 삶의 그림자는 너무 어둡고 적막하니 우리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