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우리집'이 되는 키워드 하나
아파트는 누구를 위한 집인가요? 이 말은 우리 식구 중 누군가 아파트에 대해 불만이나 불평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아파트에 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집에다 나를 맞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발코니 불법 확장에 대응한답시고 정부는 발코니 확장을 합법화시켜 놓았다. 이 웃기는 법이 시행되고 나니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신축 아파트는 아예 처음부터 거실 앞 발코니 없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발코니 없이 살아보니 불편하고 답답해서 불평을 넘어 불만이 제법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가 몰라도 발코니를 둔 아파트가 슬슬 다시 공급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집 안에 화분 하나 두기도 어렵고 창문 열어두고 외출했다가 비가 오면 들이치는 빗물 때문에 황당했던가 보다.
아파트에 발코니 없는 건 새발에 피
‘아파트를 집이라 할 수 있을까?’라고 명제를 던지면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파트가 집이지 그럼 호텔인가?’라고 다시 되묻는다면 그 말 한번 잘했다며 그렇다는 답을 주고 싶다. 소파에서 TV 보고 잠잘 때 침대에 눕는 거 말고 아파트에서 더 뭘 하냐고 덧 붙여 묻는다.
밤이 이슥해 달이 중천에 떠있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자꾸 느는 걸 보면 아파트는 숙소 기능 말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오피스에 숙소 기능을 덧붙인 용도인 오피스텔도 집이라 하고 이제는 호텔에 주방 기능을 가미한 생활형 숙박시설도 집으로 분양하는 게 현실이다. 이래도 아파트가 숙소 수준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오피스텔을 집으로 쓰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주거형 오피스텔이라며 합법화시켜 버렸다. 생활형 숙박시설을 집으로 쓰는 건 불법이라며 대대적인 단속을 한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그렇지만 아마도 곧 생활형 숙박시설도 주거 용도로 합법화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파트 형 주거시설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아파트에 오래 살다 보니 집에서 하는 것이라곤 잠자는 거 말고 따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 맞아 집에서 잠만 자면 되지 뭘 더할 게 있는데?
아파트에 누가 사나요?
아파트는 부부만 편히 살 수 있도록 얼개가 짜져 있는 집이다. 삼대가 한 집에서 살았던 그 시절은 오래전 얘기이고 아이들마저 대학생만 되면 독립하는 건 왜 그럴까요? 그다음 문제는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면서 안방을 쓰지 못하는 쪽의 집에 대한 호감도는 어떨까?
우리 사회가 종적 구도에서 횡적으로 변화되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아파트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방은 더 넓어지고 전용 욕실에 드레스룸, 파우더룸까지 있는데 그 나머지 방은 더블베드도 들어가지 못한다.
아이들이 중학생만 되면 체구는 이미 성인이 되는데 싱글베드에 책상 놓고 나면 큰 옷장은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 좁은 방에서 잠자고 공부만 하라는 것이니 아이는 숨이 막힌다. 부모님 방과 비교하며 불평등을 얘기할 수 없으니 집을 나가 살 수밖에는.
각방을 쓰는 걸로 합의를 본 부부가 누가 안방을 쓸 건지 가위바위보를 해야 할까? 이 게임에서 진 한쪽은 상대적 박탈감 없이 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 사람은 스위트룸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공용욕실을 쓰는 여인숙방을 쓰게 되는 형국이다.
우리집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 식구들은 밖을 나돌고 있으니 밤이 늦었는데도 불이 꺼져 있는 것이다. 밤이 늦었는데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을 ‘우리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안방이 없애면 ‘우리집’이 된다?
아파트에 방은 보통 세 개인데 어떻게 쓰고 있는지 살펴보자. 거실은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삼대가 함께 살아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수납공간은 턱없이 모자란다. 풍족한 살림이면 뭐 하나 세 철을 나야 하는 옷도 보관할 공간이 없는데. 사실 부부의 옷만 하더라도 붙박이장으로는 수납하는 게 벅차다. 그런데 아이들 옷이라고 적을까?
안방을 없애고 방 세 개를 같은 크기로 만들면 일단 식구들이 집을 쓰는 데 있어 평등해진다. 그다음은 큰 드레스룸을 두고 욕실과 화장실을 구분해서 쓰면 구태여 욕실을 두 개나 둘 필요가 있을까? 욕실도 여유 있는 크기로 만들고 화장실도 넉넉한 면적을 주면 좋겠다.
그다음은 다용도실을 더 키워보자. 집이라는 곳이 숙소가 아니라면 밥을 먹는 즐거움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시대에 사라진 용어가 주부라는 말이다. 이제 집안 살림은 식구 모두가 다 같이 참여해야 한다. 넉넉한 크기의 다용도실에는 온 식구가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생필품이 구비될 공간이 된다.
안방을 없애면 집의 얼개가 달라진다. 방의 위계가 사라지고 나면 식구들의 일상을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될 수 있다. 부부의 집이 아니라 ‘우리집’이 되면 어둑해지는 시간에 불이 켜지게 된다. 아파트에 안방이 없어지니 비로소 ‘우리집’에 된다는 걸 아파트 공급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온 아파트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 지금에 와 있을까? 4층으로 시작해서 백 층으로 키를 키운 건 괄목할만한 변신이지만 그렇게 변신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행복한 주거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 투베이 구축아파트에서 읽어내는 '우리집'의 냄새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가지게 되는 아련한 지난 시절의 추억 같은 것일까?
아파트에 살기 싫다는 사람들은 아마도 사각박스 안에서 구속받는 걸 힘들어하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아파트 생활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한다면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하다는 의미일까? 이 시대 사회적 병증이라고 하는 외로움은 우리나라를 자살률 세계 1위로 유지하게 하고 있다. 단 둘이 사는 부부마저 각방살이로 내모는 우리의 서글픈 주거 문화를 아파트에 전가시키는 건 편협한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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