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요리는 토마토 계란 볶음으로 정했다. 지난주에 아내가 딸네에 다녀오면서 토마토 한 상자를 가져왔는데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아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서 메뉴를 정하는 게 쉽지 않지만 토마토 계란 볶음은 맛있게 먹는 걸 떠올렸다.
주말과 휴일 여섯 끼를 무얼 해 먹어야 할지 메뉴를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정년 퇴직하는 사람들은 삼식이로 불리면서 구박받는 걸 걱정한다고 한다. 김치만 가지고 끼니를 때울 순 없으니 매일 남편 밥상을 차려야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구박이 아니라도 푸념은 할 만하다 싶다. 외식도 어쩌다 하는 것이지 매 끼니를 사 먹을 순 없으니 주말 밥상 메뉴는 어느 집 할 것 없이 주부들의 고민거리일 것 같다.
내가 주방과 친해지게 된 지는 서너 해가 된 것 같다. 집안 살림에 이골 난 아니냐며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 없어서 주방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풍월을 읊는 서당개의 실력으로 내가 만든 음식을 아내가 접시를 비워준다. 사실 그동안 라면은 내가 아내보다 잘 끓인다고 인정을 받아왔었다. 그러다가 내친김에 유튜브를 스승 삼아 이런저런 요리에 도전해 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우리집의 정식 메뉴로 등록시켜 주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장손 며느리로 살았던 아내의 시집살이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세월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시어머니께 요리 솜씨를 물려받은 걸 늘 고마워한다. 내가 아내라면 혹독한 시집살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를 칠 텐데 나는 천사와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랫말만큼은 아닐지라도 내 아내의 일생도 이에 못지않을 것이다. 스물다섯에 시집온 아내는 일 년에 아홉 번의 제사와 시아버지 병시중, 철없는 시동생을 건사하며 힘겹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환갑이 지난 지금 안 아픈 데 없다고 할 만큼 아내의 몸은 다 망가져서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데도 아직 아내의 손이 필요한 일이 남아있으니 이를 어쩌랴. 그 일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뒷바라지인데 곧 세 돌이 되는 손녀 재롱에 힘든 줄도 모른다며 달려간다. 더 이상 팔을 쓰면 안 된다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아직 남아 있는 당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무심하게도 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내가 제대로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 집에 같이 살기만 할 뿐이지 남편이라는 작자는 그야말로 제 엄마 밖에 모르는 남의 편이었다. 아내가 장손 며느리로 혼자 감당해 온 세월에 맺힌 응어리는 얼마나 될는지 가늠할 수 없다.
수필 전문지 월간 에세이, 문예지가 이렇게 예쁜 책이라니 너무 놀랍다. 필자로서 이런 멋진 옷을 입혀준 편집진이 너무 고맙다.
쉰을 넘기며 비로소 철든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부터라도 집안일을 줄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내의 몸은 이미 망가졌지만 응어리진 마음이라도 풀어주면서 살아야 하겠다며 시작한 일이 바로 요리이다.
주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끼니마다 밥상을 차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주말 휴일 이틀을 집에만 있는 날이면 돌아서면 밥때가 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아침을 거르는 걸 탓할 수 없다는 걸 밥을 준비하는 사람이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로 사는 부부라면 아침밥을 누가 챙겨야 할까? 토스트 한 조각에 우유 한 잔이라도 먹고 갈 수 있으면 다행이라 하겠다.
우리집에서 아내가 하는 일과 남편인 내가 하는 일이 나누어져 있다. 아내는 내가 하면 못 미더운 일인 빨래와 욕실 청소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다 내 일이 된다. 식자재 구입은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아내의 몫이지만 조리는 나누어서 한다. 아내가 집을 비우는 일이 잘 없지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내가 무엇을 먹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자랑이란다.
이번 주말과 휴일의 아침으로 차린 토마토 계란 볶음을 먹으며 아내는 내게 엄지 척을 보냈다. 여태 먹었던 남편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며 내 요리 솜씨를 추켜세워 주었다.
아내의 칭찬이 고운 심성에서 나온 립서비스라고 하더라도 나는 다음 주말 식탁을 애써 준비할 것이다. 아내에게 바치는 내 작은 정성이 여태껏 무심하게 살았던 죄를 얼마나 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